한나라당은 어제(16일) 대변인 논평에서 'FTA를 반대할 핑계거리만 현미경으로 찾는 민주당의 행태'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의 글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기발한' 내용이 가득하다. 이 같은 입장이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이라면 이는 한나라당은 국회의 입법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협상상대방인 EU 측의 법질서조차 전혀 모르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하나씩 뜯어보자.
첫째, '문제 있는 구두합의'에 왜 EU 의회가 압도적으로 찬성했겠느냐고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자. EU의회의 찬성은 '문제가 없다'. 합법적이다. EU 법질서가 정한 절차에 의한 EU 집행위원회의 '구두합의'였기에, 자문 및 감독기관인 EU 의회는 협정문에 대한 찬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외교통상부, <EU 정책 브리핑>(2010년 2차 개정증보판), 134면).
우리나라로 치면 행정부에 속하는 EU 집행위원회는 '조약의 잠정발효 시기'에 대해 합의할 권한이 없다. '잠정발효 시기 결정권한'은 대외통상정책에 있어 'EU의 최고 입법기구이자 최종 정책결정기구'인 EU 외교이사회에 있다(같은 책, 133면). 이에 따라 EU 외교이사회는 지난해 9월 16일 '잠정발효 시기를 7월 1일로 결정'하여 EU 집행위원회에 정식서명할 권한을 부여했다. 따라서 EU집행이사회의 '잠정발효' 합의는 문제가 없다.
둘째, 한나라당은 '국회의 동의 없는 행정부의 독단적 합의'인 김종훈 본부장의 '구두합의'가 왜 문제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정부에서도 인정하듯 한EU FTA가 잠정발효는 '협정문의 90%를 발효하는 효력'이 있다. 하여 잠정발효 시기는 곧 국회의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의 사실상 마감시한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입법권에 대한 제한인 '잠정발효 시기'를 결정한 바 없다. 사전에 정부로부터 어떤 보고도 받은 바 없다. 김 본부장이 임의로 '구두합의'한 이후 10월 4일 국회 외통위에서 서면보고 했을 뿐이다. 국회의 비준동의가 없으면 잠정발효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가 간의 약속인 '잠정발효 시기'에 대해 입법부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은 헌법위반인 동시에 무효임은 물론, 대단히 큰 문제다. 그럼에도 김종훈 본부장은 자신이 독단적으로 합의한 구두합의를 시한으로 못박고 국회에 FTA 속도전을 사실상 종용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셋째,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은 '한-EU FTA 대응을 위한 컨설팅'에 나서는데 왜 민주당이 반대하느냐고? 송영길 인천시장은 FTA 체결 이후 기업과 국민이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 지자체장의 임무다. 반면 정부는 어떠한가? 한글본 오류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물론이요, 구제역 이후 붕괴된 축산농가에 대한 대책은 모두 손을 놓고 있다. 국회의 입법권을 포기한 한나라당보다는 인천시민과 기업들을 위해 컨설팅이라도 하는 송 시장이 백배 낫다.
넷째, 기업과 경제단체가 찬성하는데 왜 국회가 반대하느냐고? 이게 공당인 한나라당이 입법권을 바라보는 태도인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0조에서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 입법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기업과 경제단체가 찬성만 한다면 국회는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는 것인가? 부자감세로 국가재정을 파탄낸 것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한나라당다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민주당이 아마추어적이라고? 아마추어는 통상교섭본부와 한나라당이다. 한EU FTA 잠정발효에 있어 EU 의회의 동의는 필수적 절차가 아니다. 외교통상부의 발표자료를 보자. 통상교섭본부는 15일 언론해명자료에서 '한 EU FTA 잠정발효와 정식발효'라는 참고자료를 실었다.
유럽의회 동의를 우리 국회의 동의와 동등한 지위로 부여한다.
"(잠정발효를 위한) 각자의 내부절차로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와 유럽의회의 동의 필요"
작년 9월 16일자 외교통상부 보도참고자료에서 중요한 부분이 다르다. 바로 이 부분이다.
"한·EU FTA 잠정 적용 조항에 따라,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 완료와 EU 각료이사회의 승인으로 협정의 잠정 발효 가능"
그리고 굳이 이 부분은 덧붙였다.
"리스본 조약상 한 EU FTA 잠정발효에 유럽의회의 동의는 요구되지 않으나, EU 집행위는 정치적 고려에서 한EU FTA에 대한 유럽의회의 동의 확보 후에 한EU FTA를 잠정발효하겠다는 입장."
통상교섭본부가 한나라당을 기망해서 보고한 탓도 있겠지만, EU 의회의 압도적 찬성을 이유로 반박하는 한나라당의 아마추어리즘이 참으로 안타깝다. 굳이 어느 부분이 다른지는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한나라당, '편집된 보고자료'에 속는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길
한나라당의 '기발한' 논평에 대한 반박이 너무 길어졌다. 이제 마무리하자. 한나라당의 성명 중 맞는 부분이 딱 하나 있다. "정당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 정당은 그리고 국회는 국민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행정부의 거수기 노릇을 하기 위한 국회가 아니요, 기업과 경제단체만을 위한 국회가 아니다.
집권 경험도 있고, 현재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더 이상 아마추어처럼 외교통상부의 '편집된 보고자료'에 속지 말고, 헌법이 부여한 입법권을 포기하지도 말고,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국회의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2011.03.17 17:35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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