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1.5평 청춘기다카노 히데유키 저, 2007년 출간
책이좋은사람
감동을 주는 책, 즐거움을 주는 책, 재미와 웃음을 주는 책, 슬픔을 달래주는 책,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책, 지식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책 등 다양한 책이 있습니다.
그중 다카노 히데유키의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재미와 웃음'이 먼저 다가옵니다. 도쿄 와세다 대학 앞 노노무라라는 낡은 자췻집에서 별난 인물들과 살면서 겪은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주인공 다카노는 화장실, 부엌, 거실 등이 공동사용 임에도 무엇보다 가격이 싸고 부모님의 간섭을 피해 떨어져 살기 위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주인공의 방은 1.5평입니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누워 자면 옆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공간입니다.
1989년, 몇 개월만 살다 나오려고 한 주인공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는 무려 11년이 걸립니다. 그는 스물두 살에 들어가 서른세 살에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 노노무라 자췻집에서 청춘을 온전히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빈방에 들어와 사는 도둑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정 많은 주인아줌마, 대학시절 운동권에 빠져 있다 사법고시에 10년째 낙방을 거듭하고 정의에 사도인 양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겐조, 세상에 둘도 없는 왕소금 마쓰무라, 신종 마약실험과 환경문제에 매진하는 주인공의 괴짜 후배 이시카와, 그리고 자취방에 누워 학교를 바라보는 것으로 출석을 대신하는 주인공 다카노가 11년 동안 겪은 에프소드가 시트콤처럼 펼쳐지는 이 소설은 활기차고 신이 납니다. 이게 정말인가 싶기도 하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학과생활보다는 탐험동아리에 매진하고 수업, 졸업에는 관심없습니다. 프로레슬링에 열광하고 탐험부 부원들을 방으로 불러, 환각성을 지닌 선인장을 먹는 마약실험을 하기도 하고 동네 수영대회에 나가 예선탈락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콩고 괴수 탐험을 떠나 해외 여행을 몇 달 동안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정 많은 주인아주머니는 방을 빼지 않고 기다려 줍니다. 또한 방세는 도쿄의 물가가 계속 오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탐험기를 써 책으로 발표하고, 잡지 등에 글을 써 간간이 생활비를 마련합니다. 콩고여행기인 <환생의 괴수 무벤베를 쫓아서>, <거대한 흐름 아마존을 거슬러 올라>, <극락 태국 생활기>, <미얀마 아편왕국 잠입기> 등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꿈을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돈과 직업을 구하는데 아등바등한 게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주류에 끼지 않고, 남다른 인생을 사는 주인공 다카노가 철없는 한량 내지는 대책 없는 폐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만의 길을 가고, 그러는 동안 번역한 책으로 7년 만에 대학도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출판업계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더 이상 1.5평에서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되는바 어쩔 수 없이 노노무라를 떠나게 됩니다.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아줌마, 탐험부 멤버들, 그리고 괴상한 세입자들이 일으킨 진기한 해프닝과 웃지 못할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 길고도 농밀한 시간이 분명 여기 이곳에 와 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나는 노노무라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부터 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주인공은 11년 동안 살아온 곳을 떠나면서 말합니다. 마지막 장면인 이 대목에서 '웃음과 재미'보다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제 대학생활도 다카노처럼 학업에는 관심 없고 동아리 활동(?)에 빠져, 취직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대학을 졸업해 버리고 군대에 오게 됐습니다.
1평도 안 되는 생활 공간이 주어졌습니다. 군복과 양말, 속옷, 개인물품, 전투물자 등이 있습니다. 또한 책과 TV를 보고, 편지를 쓰기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같이 생활하는 전우들이 있습니다. 다카노의 자췻집 인물들에 못지 않게 개성 넘치고 사고도 가끔 터트립니다. 그들과 같이 먹고, 자고, 훈련하고 생활하는 2년의 동안의 시간, 크로 작은 훈련을 거치고, 행정업무로 바쁜 나날들이 지나가고, 새벽의 야간근무, 주말의 포근한 휴식 등을 거치며 시간은 조금씩 흘러갑니다. 아직도 남은 길을 멀기만 한데, 밖에 나가 무엇을 하고 살지 막막함이 한없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이곳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날 날이 올 텐데,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잘 못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도 해보게 됩니다.
재미와 웃음을 주고, 이런 진지함까지 주었기 때문인지 이 책을 다 내려놓고, 다른 책을 봐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근래 읽은 책 중에 많을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중에 안정된 시기가 오면 제 청춘기도 쓰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청춘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남은 군 생활에서 더 많은 걸 얻어가야겠습니다.
요즘 웃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다카노 히데유키의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군복무 중에 쓴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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