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22일 발표한 시간강사 개선책에 관한 보도자료.
교과부
"대학 시간강사 사라진다" "시간강사 명칭 사라진다""대학가에서 '보따리장수' 없어진다"'3월 22일 석간부터 보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란 문패와 함께 22일 오전부터 각 언론사에 뿌려진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보도자료 약발이 제대로 먹혔다. '시간강사, 교원으로 인정받는다'란 보도자료 제목과 흡사한 제목들이 지면과 영상을 거의 획일적으로 가득 채웠다.
한발 더 나아가 "'보따리장수'가 대학가에서 사라지게 됐다"며 흥분하는 제목과 기사 내용도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부의 보도자료 제목과 내용을 보면 기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도 하다. 그동안 무기력한 정부대응에 갈증을 느끼게 했던 대학 현안인데다 선정적인 표현과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23일자 대부분의 일간신문은 "대학에서 '보따리장수' 또는 '상아탑 유령'이란 소릴 들으며 '교원 아닌 교수'란 서러움을 겪어온 7만 명이 넘는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이제는 그 설움을 씻게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영향력'과 '판매량' 등에서 우위를 자랑하는 보수언론사들일수록 정부가 내놓은 이번 자료를 더욱 신뢰하는 눈치다. 잔뜩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의도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난다.
본말 전도된 '시간강사 개선대책', 언론만 박수치고 흥분하고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본말이 전도된 정부의 대응에 언론만 박수치고 흥분한 형국이다. 언론이 '필경사', '앵무새' 또는 '확성기'란 소릴 왜 듣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 셈이 됐다.
우선 교과부가 이날 내놓은 자료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간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낮은 처우를 받아왔던 대학의 시간 강사가 '교원'으로서 지위를 인정받고, 신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는 첫문장부터 '보도자료'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자신 없어 보인다. 말미가 흐릿한 게 정부가 내놓은 대 언론 자료라고 보기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시작은 자신 없어 보이지만 모든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교원'으로 하루아침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 내용에서 진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정부안을 이날 열린 제12회 국무회의에서 확정했다"는 게 유일한 '팩트'다.
보도자료는 ▲ 대학교원으로서 '강사'제도 도입 ▲ 강사 임용의 공정성 및 고용안정성 확보 ▲ 강사의 신분보장 범위 확대 ▲ 시간강사 강의료 인상 ▲ 연구비 지원 사업 실시 및 건강보험 가입 등에 초점을 두었다. 그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시간강사 문제들을 일정부분 담았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국내 각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7만7000여 명)와 숫자가 비슷할 뿐 아니라 전체 대학 강의의 3분의 1 이상을 전담하고 있음에도, 법률에서 '교원 외'로 분류돼 6개월(학기단위)로 채용되는 등 극심한 고용불안과 열악한 경제적 여건에 시달려온 7만7000여 명의 전국 대학 시간강사들에게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시간강사', '시급강사'로 전환...'교원-비전임교원 종속화' 고착 상존 그러나 아직도 핵심을 잘못 파악하거나 과대 포장한 점이 많다. 가장 핵심이라고 할 '교원으로서 강사제도 도입'에 관한 정부의 '고등교육법개정안'이 모호하다. 교과부가 이날 내놓은 고등교육법개정안 제14조의2(강사) 1항에는 "학교에는 제14조 제2항의 구분에 따른 교원 외에 교원으로서 강사를 둔다"고 새로 명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교원 외에 교원으로서 강사를 둔다'고 한 점이다. 교원과 비전임 교원 사이에 또 다른 애매한 계층을 대학 내에 두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또 '제14조제 2항 및 제14조의2 제1항의 교원 외에 겸임교원 및 명예교수 등을 두어 교육 또는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구제한다며 오히려 시간강사를 겸임교수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비전임교원 양성과 교원-비전임교원 사이의 갈등, 종속화 고착 문제는 고스란히 남겨 두고 있다.
게다가 교과부가 이번 법률 개정안과 함께 내놓은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추진 계획안 중에는 여전히 강사를 시급으로 묶어 기존 전임교원과는 또 다른 차이를 두게 하고 있다. 교과부는 "2011년 국립대 시간강사의 시간당 강의료 단가 인상을 위해 805억을 확보, 평균 단가를 2010년 4만2500원에서 2011년 6만 원으로 인상했다"고 했다.
이는 여전히 시간강사는 시급강사임을 전제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전업 시간강사는 6만 원, 비전업 시간강사는 3만 원으로 강의 시간당 강의료를 차등 적용하겠다는 발상은 말이 시간강사를 강사로 전환할 뿐 실제론 '시급강사'란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놓은 결과를 낳게 됐다.
시간강사 개선대책이 모처럼 정부에 의해 제시되긴 했지만 수십 년간 한국 대학사회를 무겁게 짓눌러 온 음습한 화두라는 점에서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크다. 특히 비정규교수 문제에 접근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지적이 높다. 오히려 기만적인 대책이라며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비정규교수노조 "시급교원제도, 방사능 오염 못지않게 부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