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22회)

녹두패(綠豆牌) <2>

등록 2011.03.25 09:33수정 2011.03.25 10:06
0
원고료로 응원
무더운 여름 한 자락이 넘어가고 아침저녁 소슬바람이 불어와 가을 곡식을 간질이던 칠월 중순의 오후. 석 삼 년이나 흉년 든 예전관 달리 요근래 각 지방마다 풍년가 소리 드높은 게 벌써 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포구에 사는 사람도 술 한 잔 사는 게 대수롭지 않은 풍물이어선지 오늘도 광나루 선술집에 모여 술과 계집 얘기에 화제가 풍성했다. 염소수염의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사연의 꼭지를 열었다.


"으흐흐, 이거 말이야. 중국에 여황제가 있었는데 서방 놈이 죽은 후 항상 마시는 술이 무후주(武后酒)라네. 고걸 마시면 온 몸의 피부는 야들야들 해지고, 사내가 가까이하면 새우새끼처럼 펄쩍펄쩍 뛰는 게 '좋아 죽겠다'는 표시라지 뭔가. 며칠 전 만난 어느 선비님은 <동경몽화록>이란 책자를 들먹이며 무후주에 버금 가는 비교적 괜찮은 술이 있다는 게야. 그게 뭐냐 물었더니 뻔데기술이라지 뭔가."

털북숭이 사내가 단번에 된소릴 뽑아냈다.
"뻔데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니야, 지금 궁에선 나랏님이 그런 술을 마신다니까! 그 선비 말에 의하면 뻔데기를 찐 후 볕에 말려 술로 걸려 내는 걸 서너 번 되풀이 하는 모양이야. 그러면 쓴 맛이 없어져 맛이 그만이란 게야."

사내의 얘긴 허황스러웠지만 입바람이 센 탓에 믿음이 갔다. 이렇게 만든 술은 사내들 정력 강정에만 뛰어난 게 아니고 여인네의 부족한 음기를 채우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털북숭이 사내가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들이켠 후 주사를 풀었다.

"왕실이야 고귀한 분이 계시니 좋은 술을 만들어 드시겠지만 우리같은 서민은 박달주를 별식으로 먹지. 말이야 바로 하자면 우리 처지에 술 마실 수 있는 것도 황송할 노릇이니 질 좋고 나쁜 걸 가릴 수 있나."


사내는 자신 있게 박달주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보통은 초겨울에 만드는 걸 최상품으로 치는 데 만드는 방법이 어렵지 않다. 초겨울이 오면 아름드리 박달나무 등을 파내 그곳에  두 되 가량의 물을 부으면 아무리 초겨울이라도 햇살만 있으면 파릇한 새순이 돋는다.

사흘쯤 지나 그곳에 술을 부으면 돋아난 싹은 말라죽고 박달나무진과 술기가 엉켜 거무스름한 진액이 고인다. 퍼낸 술을 체질에 맞게 한약을 넣어 연한 불을 가하면 달착지근한 박달주를 얻을 수 있다.


이 술은 십리주(十里酒)란 애칭이 있다. 십 리 길을 가는 동안 한잔만 마셔도 취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담처럼 사내의 체력을 키우는 최상의 술이라고 침을 튀겼다. 술이 깰 쯤이면 미리 짜놓은 칡즙 한 홉을 마시면 다시 취기가 살아난다는 도가의 비방도 곁들어 주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사람이 죽었다아! 갖바치 박영감이 죽었다아! 접시물 도는 곳에 시체가 떠올랐다아!"

갖바치 박노인이 물에 빠진 익사체로 발견된 것보다 하루 전, 내금위와 형부에 뜻밖의 보고가 접수됐다. 창덕궁 내반원(內班院)에서 이공수(李供守) 내관이 목을 맨 사건이었다.

간밤에 혜경궁 홍씨에게 궁 안의 이런 저런 일을 들려주던 이내관이 웃는 얼굴로 돌아간 지 몇 시각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궐 안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동관(東館)이라 부르는 내반원은 내시부 소속이니 나인이나 내명부 소속의 여인들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어릴 때 궁에 들어와 쉰이 넘은 지금에 이르도록 궁에 머물며 친분관계를 원만히 한 이공수를 향랑공(響廊公)이란 애칭으로 부른 건 남다른 재주 때문이었다.

궁 안엔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오가므로 각자가 지닌 한 가지 재주는 중원의 춘추전국시대에 닭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상전을 위기에서 구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전설로 이름을 날린 식객의 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내의 거시기가 없었지만 이공수의 청력은 대단했다. 궐에는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음양서가 있기 마련으로 여인을 취택할 때는 이에 근거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한 책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설 수 있는 게 <삼봉단결>이다.

이것은 여인을 하나의 솥(鼎)으로 보고 제왕의 몸에 이로움을 줄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헤아리는 가늠자다. 궁인을 상납하는 게 잘 익은 복숭아를 접시에 담아 올리는 게 이공수의 본색이었으나 이 자리가 만만치 않다는 건 다음의 문제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제왕은 갓 잡아 올린 비린내 나는 생선을 좋아하여 모든 게 순전한 그 모습인 여인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런 쪽은 흥미 없고 방사의 경험사를 읊조릴 줄 아는 걸 좋아하는가하면 어정쩡하지만 그 중간쯤을 좋아하는 제왕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여인을 복숭아라는 과일로 볼 때, 햇볕이 잘 들어 오동통하게 여물어 베어물 때마다 들어찬 단내를 느낄 수 있거나, 아니면 때가 좀 지나 속이 흐물흐물해 나이든 노인네가 드시기 좋게 됐거나, 또는 그 중간쯤이거나 그 양태는 여러 가지 일수밖에 없다.

지금의 제왕이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도원경에 이를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힘이 동관 소속의 내관에겐 중요한 과제였다.

이공수가 나인을 뽑아 상감의 잠자리 시중에 밀어넣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새어나오는 게 '도원경에 이르러야 할 텐데'였다. 그 말을 들은 내관들은 실소를 깨물었다.

이내관은 남자와 여자가 이층을 쌓고 거시기한 짓거리를 하는 게 도원경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설을 늘어놓았다. 이렇듯 야무진 결론을 낸 이공수는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궁에 들어온 나인을 골라 어느 누가 제왕의 잠자리 시중에 적합한 지 물건 중의 물건을 가려낼 때 사용된 게 <삼봉단결>이란 선도서였다. 여인을 고르는 방법은 길이가 서른 자쯤 되는 넉넉한 통로를 걷게 하는 데서 비롯된다.

통로 바닥을 팠으므로 여인이 나막신을 신고 걸으면 그 소리가 미묘하게 들려 건너편에 있는 사내 마음을 요동시켰다. 이러한 소릴 통해 여인의 품격을 알아냈기에 그의 특기를 살려 향랑공(響廊公)이란 애칭으로 통했다.

사내 물건이 없는 자신이 들어도 마음 설레게 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찾아 제왕의 잠자리 시중으로 올리는 '사포(司圃)'란 임무가 그가 하는 일이었는데 그런 그가 목숨을 잃었다는 건 어느 누군가가 제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주 위험한 일을 감행했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의 죽음은 강제로 죽임을 당한 일종의 늑사(勒死)로 목이 졸린 형태였다.

목을 맨 것으로 위장했어도 입과 눈은 열리고 손은 흩어진 상태였다. 숨통 아래 혈맥은 통하지 아니하여 액흔이 얕고 흐려 피맺힌 자국이 없었고, 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죽은 자의 모습을 그린 검시기록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루가 지난 다음날, 광나루 포구가 떠들썩한 건 갖바치 박노인 주검이 포구의 접시물 도는 곳에서 떠오르면서였다. 사람들이 한 눈에 박노인을 알아본 건 구질한 사람이지만 가죽을 매만지는 솜씨가 근동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성이 박가란 것만 알뿐이었지만 짐승의 갖옷을 매만지는 손끝엔 탁월함이 있었다. 박노인은 담비 가죽(貂皮)의 손질에도 뛰어나 신발이나 옷을 만들어 양반가의 사랑채를 기웃거렸었다.

사대부가에선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지 않으면 자신들의 중요 회합인 '문족회(門族會)'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상감이 억제한 일이 있었지만, 박노인은 그런 곳을 출입하다보니 궐 안 소문을 듣게 되었고 왕실의 명(命)으로 '녹두패'란 걸 만들었다. 어느 날 박노인은 궐에서 나온 이공수 내관에게 묘한 얘기를 들었다.

"궐자가 만든 녹두패는 아주 특별한 것이네. 전하의 사랑을 얻은 민간의 계집이 받는 것으로, 만약 용정(龍精)을 회임하기라도 하면 본인은 물론 집안에도 큰 광영이 따를 것이네. 만약, 왕자 아기씨라도 잉태하면 이 나라 조정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이지. 장차 군왕이 될 지도 모르는 분을 잉태하면 말이네."

처음 듣는 얘기여서 박노인은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 동안 자신은 양반가의 일보다 천하디 천한 백성들의 일에 힘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다. 초구(貂裘)라 불리는 '갖저고리'를 비롯해 소가죽이나 개가죽을 사용한 두루마기도 만들었다.

가죽을 손질할 때는 흥얼흥얼 뭔가를 읊조렸는데 그건 홍양호가 <이계집(耳溪集)>에 읊은 '피의(皮衣)'란 노래였다.

붉은 개가죽을 몸에 걸치고
날소 가죽을 발에 신는다
가죽옷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다 좋으이
가죽신은 물에나 뭍에나 다 편하이
남인들은 웃지 마소, 나의 소박한 우둔함을
비단 옷 구슬신 백년도 못간다네

어떤 인연으로 궐 안에 들어갔다 오더니 그저 모든 일에 싱글벙글이었다. 세상의 속된 이익에 마음이 떠나 있기 때문인지 요즘 광나루 선술집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 박노인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인정으로 안겼다.

"오랜만에 만난 정리로 한 잔 하구려."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박노인은 자꾸만 헛웃음을 허허거렸다.

"살다보면 용궁에 갈 일이 있다더니 내가 운이 텄는가 보오. 머잖아 궁에 들어가고 양반님네의 부름을 받을 것 같소. 고명한 항아님이 나의 재주를 흠모해 궐에선 흑피화(黑皮靴) 수십 켤레를 맡긴다지 않은가. 그러니 이 아니 좋을쏜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는지 갖바치 박노인은 여간 즐거운 낯이었다. 궐에 들어가면 자신이 꿈꿔온 것들을 들을 수 있고 평소 궁금해 하던 걸 알 수 있으리란 설렘이 있었다. 그것은 제왕의 사랑놀이였다.

사대부가나 서민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걸 박노인이 모를 리 없었다. 우연히 들었던 <수양제비사(隋煬帝秘史)>엔 제왕의 사랑놀이에 세 사람이 등장했다. 제왕이 여인의 몸 위에 오르면 내시 둘이 앞에서 끌고 또 한 명은 뒤쪽으로 제왕의 몸을 당겼다.

제왕은 몸을 움직일 필요 없이 지그시 눈 감고 여인의 체취만 음미하면 거시기 없는 사내들이 열심히 위와 아래로 제왕을 움직여 준다. 이때 제왕의 사랑놀이 정경을 세세하게 글로 쓰는 이가 방사기록관 여사(女史)였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오래 전엔 내명부의 벼슬이름이었다.

궁 안에 삼천 명이나 되는 여인들을 사랑해 주려면 제왕은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비책이 있어야 했다. 샘솟듯 솟아나는 정력을 유지시키는 게 동관의 내시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 그들에겐 나름대로 비방이 있다고 박노인은 들은 바 있었다.

[주]
∎여사(女史) ; 방사 기록관
∎문족회(門族會) ; 담비가죽을 걸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모임
#추리,명탐정,정약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전화, 지시, 위증, 그리고 진급... 해병 죽음에 엘리트 장군이 한 일
  5. 5 딸이 바꿔 놓은 우리 가족의 운명...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