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허공에 매달린 다리, 보기만 해도 '아찔'

구이저우(貴州) 여행기(3) 마링허 협곡

등록 2011.03.25 10:17수정 2011.03.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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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 ⓒ 최성수


안개, 그리고 안개비

한때, 나는 꽃 중에서 안개꽃을 가장 좋아한 적이 있었다. 길을 가다 꽃집 앞을 지날 때, 안개을 보면 발길이 멈춰지곤 했다. 안개꽃은 파는 꽃 같지 않은 꽃이다. 파는 꽃이 대부분 큰 송이를 자랑한다면, 안개꽃은 작은 송이들이 마치 물감을 붓에 듬뿍 묻혀 뿌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흩어져있다. 안개꽃은 주연이 될 수 없는 꽃이다. 장미나 다른 큰 꽃 곁에서 조연으로 존재한다. 주연만이 관심을 받고 대접받는 사회에서 조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이 바로 안개꽃이다. 그래서 안개꽃은 주인공일 수 없는 존재가 꾸는 아득한 그리움, 혹은 이승을 훌훌 떠나 중천을 헤매는 꿈같은 꽃이다.

창을 열자, 세상이 온통 안개꽃처럼 몽롱하다. 낯선 어느 도시가 아니라 낯선 저승 어디쯤 와 있는 것 같다. 안개는 뭉실뭉실 피어나 도시를 감싼다. 바라보는 내 몸조차 안개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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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의 아침 엄마는 길거리에서 아침을 먹이고, 아이는 싫은지 화가 나 있다. 숯불을 피우고, 쓰레기를 치우며, 싱이의 아침이 밝는다 ⓒ 최성수


잠시 안갯속을 나서 쌀국수 한 사발로 아침 요기를 한다.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안개는 점점 짙어지더니, 안개비가 슬슬 흩뿌리기 시작한다. 안개비 내리는 거리를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걷는다.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늘 맞닥뜨리는 일이라는 듯, 그들은 제 갈 길로 향한다. 청소하는 사람은 무심한 듯 쓰레기를 치우고, 아이를 데리고 나선 엄마는 아이에게 우산도 씌우지 않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길가에 나와 숯불을 피우는 사람, 망가진 기계를 고치는 사람, 모두 안개비에 젖는다. 아득하다. 아득하고 또 아득해서 바라보는 내가 지워져버리는 것 같다.   

구이저우에는 '사흘 맑은 날이 없다'더니, 정말 그들은 늘 안개와 비에 젖어 사는 모양이다. 그들의 걸음걸이조차 이승의 것 같지 않다. 삶이란 저렇게 허허롭게 걸어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등바등 시간에 쫓기며 성난 얼굴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 문득 답답하고 무서워지는 것은, 내가 그 일상으로부터 아득하게 먼 거리로 떠나왔기 때문이다.

사흘 맑은 날 없는 구이저우

짐을 빈관에 맡겨두고 마링허(馬岭河) 협곡으로 간다. 안개는 여전히 짙다. 안개비도 촉촉하게 내린다. 우산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옷깃을 여미고 만다. 날씨가 제법 차다. 누가 구이저우는 늘 온화한 기후라고 했던가. 추위가 옷섶을 파고든다.


여행 책자에 나와 있는 기후처럼 부정확한 것이 있을까? 처음 운남 여행을 계획할 때였다. 운남은 늘 봄이라고, 그래서 쿤밍을 춘성(春城)이라고 한다는 여행 책자의 말만 믿고 겨울 여행임에도 반바지와 반팔을 준비했었다. 그래도 혹시 하고 봄 가을로 입는 점퍼와 바지를 한 벌 넣기는 했지만, 내 배낭에는얇은 면 티만 들어 있었다.

그런데 운남 공항에 내리는 순간, 나는 달팽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매운바람이 불다니! 온도는 그리 낮은 것 같지 않은데, 파고드는 바람은 살을 에일 것 같이 찼다. 알고 보니 운남은 낮에는 우리나라 5월 날씨처럼 훈풍이 불지만, 밤이면 제법 추워지는 곳이었다.


구이저우 여행을 계획할 때도 비슷했다. 운남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날씨려니, 낮에는 시원하고 밤이면 춥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했더니, 구이저우는 전혀 아니다. 낮에도 을씨년스럽고 춥다. 햇살 한 줌 비치지 않는다.

마링허 협곡 입장료는 무려 80위안이다. 중국에서 가장 빠르고 많이 오르는 물가가 관광지 입장료임을 새삼 절감한다. 80위안이면 거의 만 오천 원 정도 되는데, 중국 일반 서민들은 구경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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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링허 협곡 폭포와 협곡이 어울려 빚어내는 경치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 최성수


표를 끊고 계단을 따라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안개가 자욱하고, 그 안개가 뭉쳐 내리는 것 같은 빗방울이 숲 가득 내린다. 우비를 꺼내 입으며, 정말 구이저우에는 사흘 맑은 날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구이저우는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햇살도 보기 힘든 산지다. 그래서 구이저우에는 '사흘 맑은 날이 없고, 세평 되는 땅이 없고, 서푼 가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정말 그 말대로 어제 쿤밍에서 눈부신 햇살을 본 이후 지금까지 햇살을 보지 못했다. 기차가 구이저우 땅으로 들어서곤 햇살 구경도 못한 셈이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돌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한참 내려가니 마침내 협곡 바닥이다. 관광객이라곤 하나도 없는 겨울 마링하는 그래서 더 한적하고 아름답다. 그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구불구불 이어진 골짜기 옆길을 따라 걸으며 세상의 시름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폭포가 숲을 이룬 곳

마링허 협곡 관광은 협곡 아래까지 내려가서 물길을 따라 벼랑 사이에 놓인 길을 걸어가며 주변의 풍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 곳곳에서 마주치는 나무와 풀, 기기묘묘한 바위벼랑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곳곳에 널려있는 폭포가 압권이다. 폭포는 조금 과장하면 서너 걸음마다 하나씩 자리 잡고 제 몸을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던지고 있다. 어떤 녀석은 마치 어린 애 오줌줄기처럼 가는 물줄기를 아득한 지상에서 협곡 바닥으로 흘려보낸다. 어떤 녀석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거센 물줄기를 쏟아 붓기도 하고, 새끼 폭포 몇을 거느리고 떨어지는 어미 폭포 같은 것도 있다. 그야말로 폭포의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을 따라 걷는데, 아득히 허공중에 다리가 매달려 있다. 기차역에서 싱이 시내로 들어갈 때 건넜던 다리다.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협곡 양쪽을 잇는 저 다리를 건설한 인간의 능력이 놀랍고 또 끔찍하다. 인간은 자신들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가능이 결국은 자신을 파괴하게 되고 만다. 멀쩡한 산을 까뭉개고 골프장을 짓거나, 전력 생산을 위해 위험하기 그지없는 원자력 발전소를 끝도 없이 건설한다. 그리고 결국은 식수 오염이나 방사능 유출로 자신들의 몸을 망치고 만다. 아득한 벼랑에 걸린 다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도저히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천길 허공에 다리를 놓은 놀라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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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바위 벼랑 사이로 선이 되어 놓여있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 길이 넓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삶의 길은 저렇게 좁디좁은 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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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과 길 절벽을 천정으로 삼아 길이 나 있다. 삶도 저 길과 같은 것일까? ⓒ 최성수


길은 꼬불꼬불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어떤 곳은 바위벼랑 아래를 파 길을 만들었다. 천정이 바위인 셈이다. 어떤 곳에서는 길이 폭포 속으로 감겨든다. 폭포 안에서 폭포 밖을 바라보는 신비로운 경험이 즐겁다. 갈수기인 겨울인데도 물이 이 정도면 한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쏟아질 것인가.

모든 낙하하는 것은 아찔함과 쾌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폭포도 그렇다. 아찔함은 떨어지는 높이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저렇게 떨어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폭포의 가열찬 행동이 아찔하고, 가장 큰 추락에 의해 완성되는 폭포의 삶이 쾌감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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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거센 물줄기에 귀가 먹먹하다 ⓒ 최성수


김수영은 폭포를 이렇게 노래했다.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마링허 협곡 폭포의 숲을 지나면 김수영의 시처럼 곧은 소리가 부르는 곧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가 김수영의 말대로 '고매한 정신'이든 아니든, 폭포는 '무서운 기색도 없이' 천길 지상에서 아득한 골짜기로 제 몸을 던진다. 너무나 많은 폭포가 너무나 거세게 떨어져, 정말 '높이도 폭도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링허 폭포는 김수영 시의 '고매한 정신'을 넘어 그냥 인간을 멍하게 만든다.

지구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상처

마링허 협곡을 흐르는 물은 마링허(馬岭河)다. 마링허는 우멍산맥(烏蒙山脈)의 바이구어링(白果岭)에서 발원한 물이다. 상류에서는 칭수이허(淸水河)라고 부르는데, 중간에 물 양쪽으로 마비에따짜이(馬別大寨)와 마링짜이(馬岭寨) 마을이 있어 마링허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흔히 마링허 협곡을 '웅혼함과 기이함, 험함과 빼어남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협곡은 웅장한 골짜기를 이루고 있고, 양쪽 바위 벼랑의 돌과 나무들은 기이하고, 걷는 길은 위험하며, 그 경관은 빼어나기 그지없다.

수만 년 전 조산운동(造山運動)을 통해 지각이 변동되면서 생긴 천연협곡인 마링허 협곡은 해발 1200m에서 아래로 생긴 골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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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와 다리 폭포 안에서 폭포 밖 다리를 보다 ⓒ 최성수


운남성과 귀주성은 같은 지각운동을 통해 이루어진 동일한 지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2억 4천만-2억 6천만 년 전)에 형성된 용암들이 운남성과 귀주성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기기묘묘한 경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온갖 모양의 바위가 눈을 사로잡는 운남의 스린(石林) , 구이저우의 완펑린(萬峰林), 어마어마한 규모의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도 그런 지각운동의 결과물이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깊고 아득하고 막막한 마링허 협곡 또한 그런 지각운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만 개의 봉우리, 천 개의 섬, 백 개의 폭포, 기이한 골짜기'라고 일컫는 마링하 협곡의 길이는 약 74Km, 폭은 50-150m, 협곡 바닥에서 지면까지는 약 200m 정도 된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와 놀랄 만한 경치를 지니고 있는 협곡이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마링허 협곡을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고 한다. 상처는 고통의 결과물이지만, 또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먹감나무의 상처는 아름다운 무늬로 되살아나고, 소나무의 상처는 관솔을 만들어 아름다운 불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구의 상처는 무엇으로 살아나는 것일까? 마링허 협곡이 지구의 상처라면, 그 상처는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아름다운 것은 협곡이 빚어내는 온갖 풍경 때문이고, 슬픈 것은 아름다움을 빚어내기 위한 지구의 몸부림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지구는 얼마나 많은 몸부림 끝에 이런 상처 가득한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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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링허 협곡 협곡에 가로놓인 다리가 아슬아슬하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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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흔들다리 뒤로 폭포가 보인다. ⓒ 최성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협곡을 걷는다. 길은 끝없이 물살을 곁에 두고 흐른다. 물도 흐르고 길도 흐른다. 폭포는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나타난다. 협곡이 상처라면 폭포는 그 상처 때문에 흐르는 눈물쯤 되지 않을까?

내가 걷는 길 건너편 협곡에도 길이 실처럼 놓여 있다. 그것은 길이 아니라 상처에 난 핏줄 같다. 한참을 걸어, 물길을 가로지른 흔들다리를 건넌다. 이쯤에서 물길과 작별이다. 허공에 매달린 다리를 비틀대며 건넌다. 이렇게 비틀거리며 걷다 보면 제 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협곡은 내게 나직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길은 늘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이 앞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협곡의 길에서는 걸어온 길도 보이고, 걸어갈 길도 보인다. 때로는 걷다가 멈춰 걸어온 길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걸어갈 길도 바로 보이는 법이라고, 마링허 협곡은 소곤소곤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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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웅혼하고 기묘하다 ⓒ 최성수


숱한 폭포와, 기묘한 바위와 낭떠러지, 숲과 나무가 물소리에 섞여 어울리는 협곡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깊고 깊은 상처의 속살을 보고 온 것 같은 환상에 잠시 젖는다.
마링허, 어쩌면 그 협곡은 상처인 자신의 몸을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에게 되물은 것은 아닐까? 너의 상처는 무엇이냐고, 그 상처가 어떻게 아름다워 질 수 있느냐고?

그래서일까? 지상에는 빗줄기가 상처 난 마음에 새살을 돋게 하듯 내리고 있다. 그 비로 상처에서 새싹을 틔우라고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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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폭포의 숲, 마링허 ⓒ 최성수


#싱이 #마링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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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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