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네 살,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18일간의 공사 이야기] 겨울이 기니 봄도 길어

등록 2011.03.27 20:37수정 2011.03.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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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곧게 파기도 하고 굴착기가 할 수 없는 자잘한 흙일을 했다.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막노동하는 이들이 그것으로 밥을 버는데 그 처지가 헤아려진다. 사진은 상수도공사 모습.
땅을 곧게 파기도 하고 굴착기가 할 수 없는 자잘한 흙일을 했다.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막노동하는 이들이 그것으로 밥을 버는데 그 처지가 헤아려진다. 사진은 상수도공사 모습.류옥하다
난 홈스쿨링을 하며, 텃밭농사도 돕고 산에서 먹을 것도 채취하며 사는 열네 살이다. 어머니께서 자그마한 산골학교를 하고 계셔서 거기 같이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산골에 있는 오래된 폐교와 마을 건너편에 새로 지은 부속건물 두 공간이 있다. 앞의 것은 학교, 뒤의 것은 달골(햇발동과 창고동)이라 부른다.

학교는 교무실과 교실과 책방이 있는 본관, '가마솥방'이라 부르는 부엌, 아이들이 쓰는 흙집 뒷간과 바깥 뒷간, 그리고 세 채의 사택이 있다. '달골'은 작은 행사를 하는 곳으로 게스트하우스와 강당이 있다.

이번 겨울은 너무나도 모질었다. 그래서 두 공간의 상하수도 배관과 변기 등 여러 군데가 얼었다. 봄이 되니 이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매년 한 번은 꼭 어디든 터지는 추운 곳이라지만 이번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물이 샜다. 새들이 눈을 뜬 채 얼어 죽어 있기도 하고 흐르는 물까지도 얼 정도의 겨울이었으니 한 곳 이상은 물이 터지리라 짐작했는데 이렇게까지라니 너무 황당했다.

일단은 이웃 아저씨한테 한 번 터진 상황을 봐달라고 했다. 큰 공사를 해야 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공사라고 생각했는데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전문업자를 불렀다. 그리하여 3월 7일부터 24일까지 18일간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큰 공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막막했다.

전문가들도 실수를 하는구나


7일. 공사 첫날, 아저씨를 만나 설명드리고 공사 규모와 비용, 일정에 대해 상의했다. 아저씨는 1주일 이상 공사를 벌여야 한다고 했다.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다. 달골 화장실은 변기가 다 깨져서 새로 설치해야 하고, 화장실 뒤쪽 배관도 다시 설치해야 하며, 건물 외벽을 따라 땅을 다 파야 한다고 한다. 학교 본관은 흙집 뒷간과 부엌에 물이 새는 곳을 찾아 메워야 다시 쓸 수 있다고 했다. 연탄으로 난방하던 사택 한 채도 새로 보일러를 놔야 했다.

8~9일. 달골 창고동 샤워실 바닥을 뜯기 시작했다. 그 다음 터진 파이프를 때우는데, 하나를 때우면 다른 곳에서 물이 새고 또 그걸 때우면 다른 곳에서 또 새는 식으로 다섯 군데가 터져 있었다. 결국 파이프를 새로 묻기로 했다. 사택 보일러는 완전 망가져 중고로 바꿨는데, 우리는 그 헌 보일러도 5만 원이나 하는 걸 모르고 그냥 고물상에 넘겼다, 치워주는 것만 고마워하며. 5만 원이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받는 내 두 달 용돈인데.


다음 날, 드디어 굴착기로 배관 자리를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실수로 전기선과 통신선을 건드려서 자칫 파손이 심하면 완전히 다시 선을 놔야 해야 될 판이었다. 다행히도 손상이 경미해서 대충 때울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도 실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11일. 아저씨가 안 오셨다. 혹시 1km나 떨어져 있는 달골에 계시나 해서 가봤더니 없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왔다가 다시 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경사가 심한 도로인데 너무 힘들었다. 다음날, 아저씨가 하도 안 오셔서 전화를 하니 부품을 사러 대전에 가셨단다. 진작 얘길 하시지.

12~13일. 달골 배관을 다하고 굴착기로 덮었다. 원래대로 보도 블록을 까는데 아저씨가 한 쪽은 높게 한 쪽은 낮게 하셨다. 너무 대충 하신 것 아니냐고 따지니, 물이 빠지라고 일부러 그런 거란다. 오후 내내 나도 삽질을 했다. 땅을 곧게 파기도 하고 굴착기가 할 수 없는 자잘한 흙일을 했다.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막노동하는 이들이 그것으로 밥을 버는데, 그 처지가 헤아려진다.

다음날, 아저씨는 물을 뺄 수 있는 맨홀을 하나 만들어 주셨다. 이러면 겨울에 쓰지 않을 때 아예 물을 빼서 파이프가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공사한 사람들이 진작 이렇게 맨홀을 만들었다면 터지지 않았을 텐데. 업자들이 내 집 같이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하기야 집은 살면서 고쳐가는 것이라고 한다. 안 살아봤으니 몰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그런 것도 최대한 짐작하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

14~18일. 학교 부엌 쪽으로 들어오는 벽면 수도를 고쳤는데도 수압이 계속 약했다. 그래서 설거지하는 데 40분이나 걸릴 정도였다. 결국 아저씨가 여기도 파보고 저기도 파보고 해서 물이 새는 곳을 찾아내셨다. 덕분에 물을 쓰는 일이 시원하다. 정말 감사하다.

15일. 타일을 깔았다. 전문가가 와서 아주 깔끔하게 하셨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오셔서 타일 공사한 것을 보고 "어떤 일을 야물게 했을 때 주는 감동이 크다"고 하셨다. 정말 일을 하려면 제대로 마지막까지 정리를 잘해야 일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어머니가 일보러 나가셔서 내가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아저씨들이 올 줄 모르고 어머니가 그냥 나가신 것이다. 소사 아저씨도 계시지만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된장찌개를 끓였다.

16~18일. 아저씨가 다른 공사가 급해서 자리를 비우셨다.

기술자들 없으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19~21일. 달골의 여기저기 공사한 곳에서 물이 새서 미칠 듯이 바빴다. 아마도 부품 문제거나 용접 문제 같다. 변기와 세면대도 붙였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 깨진 변기의 성한 부분을 빼서 붙였다. 약간 깨진 곳도 있는데 그걸 쓴 걸 보면 역시 그 사람들은 돈 버는 업자다.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그리 맡길 수밖에 없다. 이런 일도 열심히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21~23일. 21일 아침, 어머니가 서울에서 특강을 하실 일이 있었다. 다녀와서는 바로 2박 3일 행사가 있다. 그래서 가기 전에 열심히 청소했다. 안에 장판 사이사이에 모래가 있어서 꽤 힘들었다. 그래도 청소를 하고 나니 그럭저럭 공사한 보람이 보였다. 어떤 업자들은 자기가 귀찮아서 그냥 대충하기도 하는데, 이 아저씬 그래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우리가 서울에 간 기간 동안 아저씨도 바빠서 안 오셨다).

24일. 최종 점검을 마지막으로 길고 긴 공사가 끝났다. 이번 기회에 나도 보일러 기술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을 배우면 내 집 보일러는 내가 고칠 수 있고 어쩌면 나중에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 일이 그냥 하나의 단순한 직업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저씨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방과 편한 수도를 선사하므로 행복을 나눠주는 것이다. 굉장히 멋지고 훌륭한 직업이다. 이번 공사를 도운 덕분에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여기서 보일러 아저씨께 드리는 돈은 서비스업의 서비스 대가가 아닌 것 같다. 보일러가 터져서 어쩔 줄 모르는데 나는 보일러를 못 고친다. 그럴 때 짠하고 나타나서 도와주면 고맙고 감사하고 마음이 놓인다. 돈은 이것의 대가인 것이다. 이건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사회가 먹고(농사꾼), 고치고(기술자), 치우고(청소노동자)하는 직업들에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상한 학원 같은 데나 대학 같은 데 몇 천만 원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지난번에 홍대 청소노동자 일만 보아도 그렇듯 이런 직업의 사람들한테는 최저임금조차 아까워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수나 학원 강사들은 없어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지만, 농사꾼들이나 기술자들 같은 이들이 없으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도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먹고 자고 고치고 하는 의식주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공사 #공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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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일하는 일차, 방문, 응급 의료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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