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술을 마신 후 야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경우라도, 유서 등 자살을 입증할 만한 주위 정황증거가 없다면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A씨는 지난해 2월 25일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다가 이틀 뒤 공주의 한 야산에서 앞으로 웅크린 채 엎어져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주변에는 소주병 2병과 귤껍질이 널려 있었고, 부검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35%였다.
이에 A씨 유족 K(54,여)씨는 "망인은 혈중알코올농도 0.35%의 만취 상태로 야외에서 잠이 들어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이 사고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며 B손해보험(주)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이 사고는 상해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 피보험자인 망인의 자살 또는 심장질환에 의한 사고로서 보험계약의 약관에서 정한 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하거나, 보험사고의 요건 중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망인이 당뇨병으로 치료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아 보험계약이 해지됐으므로 보험금지급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며 소송을 냈다.
서울동부지법 제12민사부(재판장 김수일 부장판사)는 최근 B손해보험(주)이 망인의 유족 K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 준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고, 이 경우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망인이 사업 실패로 괴로워하면서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해 왔고, 혼합형 불안 우울 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사실만으로 망인이 사업 실패를 비관해 자살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또한 유서나 망인이 자살했음을 추단할 만한 객관적인 물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상,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하게 정황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워, 망인의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지적했다.
또 보험사는 "망인의 사고가 심장질환에 의한 것일 뿐 상해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망인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술을 마셔 중추신경 억제작용으로 인한 호흡억제로 사망했거나 또는 야산에서 평소 주량보다 많은 술을 마시고 잠이 든 채 야외의 낮은 기온 및 습기에 노출돼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망인이 당뇨병으로 치료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보험계약이 해지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망인이 고지하지 않은 당뇨병과 망인의 사망 원인 즉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술을 마셔 중추신경기능 억제작용에 의한 호흡억제로 인한 사망 또는 저체온사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음은 경험칙상 명백해 망인이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사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것이므로,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이 해지됐더라도 원고는 피고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2011.03.30 14:13 | ⓒ 2011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