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마(독도) 및 영토문제'라는 주제의 글짓기대회에서 지사상을 받은 카도와키 유우카양이 쓴 글
오명관
제목 : 독도(다케시마)문제
애오키 시마(島) 설립 사이고(西郷) 중학교 3학년 角脇優花(카도와키 유우카)
* 편의상 다케시마는 '독도'로 일한문제는 '한일문제'로 표기함.독도(다케시마), 영토, 한일문제, 울릉도?
내가 3학년 종합학습 시간에 시공무원으로부터 독도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설명을 들었을 때, 솔직히 뭐가 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독도를 반환받고 싶은 그런 기분은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 때의 절실했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독도문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독도에 대한 생각을 깊히 가지게 되었다.
독도는 우리들의 고향과 애오키 도리쵸에 속해 있는 섬.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이미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한국과 이 문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1952년, 한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주권의 선언 라인(Line) 이른바 '이승만 라인'을 설치하여, 한국은 독도주변의 수산자원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독도문제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은 계속해서 독도에 경비대원을 상주시킴과 동시에, 축사와 감시소, 등대, 접안시설 등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독도를 놓고 한일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나는 한국의 일련의 행동들이 '제멋대로 식'이 아닌가란 생각에 참을 수 없었다. 서로 타협을 하여 결론을 내는 것이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본이 바라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경비대원을 두고, 건물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3대 원칙에 평화주의를 내걸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무척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일까? 나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도 생각도, 여러 부분이 우리 일본사람들과 일치하는 것이 많지 않다. 여기에서도 역시 영토문제의 복잡성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현대에서는 서로 교섭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독도문제는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들은 서로 타협함으로써 현대적이고 평화적인,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써 해결을 도출해야만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독도는 애오키의 섬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독도문제를 이해하고 영토문제의 복잡함을 받아들여 관심을 계속해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애오키 사람들 그 후는 독도 사람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들이 이 독도문제에 대해 알고 생각하는 사고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가까운 우리 애오키 사람들이 절대 독도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나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만큼 독도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 독도를 애오키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익산시민뉴스,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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