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나는 인간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신토불이 축산으로 가야한다

등록 2011.04.01 15:03수정 2011.04.0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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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힘듭니다. 언제 또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글을 한 자도 못 쓰고 며칠을 끙끙 앓습니다. 글을 쓰기까지의 괴로운 심정이나 상념을 늘어놓는 글쟁이들을 혐오했는데 제가 그 꼴입니다.

원고 마감일 지나는 걸 시간마다 떠올리면서도 한 자도 못 쓰고 한숨을 쉬다가 오늘 새벽에는 잠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게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위로를 하건, 뭐라고 대책을 꺼내놓건, 뭐라고 변명을 하건 그들이 볼 때는 저 역시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글이 무슨 소용이 있고 위령제다 천도제다 하는 행사가 다 무슨 짓일까 싶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우리가 겉모습으로는 영국인인지 프랑스인인지 구별 못하듯이 희생된 생명체들이 볼 때는 정부 당국자인지 축산자본가인지 녹색평론 독자인지 구별이 안 될 것이고 또 그게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꽈당 꽈당 넘어지는 소들의 영상에 겹쳐 무더기로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소와 돼지를 묻던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산더미같이 쌓인 사람들의 시체를 덤프트럭에 싣고 와 땅에 파묻는 상상에 이르러면서 와락 겁이 났고 그 끔찍함에 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구제역 사태를 맞아 동물복지를 말하고 동물의 생명권, 생태축산, 순환농업을 거론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인간들이 자신의 탐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꼼수일 수가 있습니다. 대량 살처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생매장 당하는 동물들의 참상을 보다 못해 나서는 동물보호단체 사람들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과연 1000만 생명체가 목숨을 잃어가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충고가 이것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땅 속에 묻힌 생명체들의 눈에는 이런 인간들도 가증스러워 보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처럼 동물복지가 실현되어 넓은 축사에서 항생제 없이 자연식에 해당하는 조사료만 먹고 성장호르몬 주사도 맞지 않고 호의호식(?) 하면서 사는 것과 목숨이 다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매장 당하는 것이 축사의 동물들에게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평균수명의 반의 반도 못 살고 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겨우 30개월 살다 위생적인 최첨단 설비의 도살장에 끌려가 죽는 소는 자연 상태에서 평균수명이 15년에서 20년이나 되니 사람으로 치면 한창 나이인 열 예닐곱 때 죽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더합니다. 무게가 150근이나 180근 되면 관리비용이나 사료비용 등을 따질 때 경제성이 가장 좋아서 이때 팝니다. 돼지가 태어난 지 평균 200일 되는 때입니다. 돼지의 평균수명을 사람으로 따져보면 대여섯 살 되는 때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면, 대단한 시혜를 베푸는 듯이 요란한 동물복지 축산의 참상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다 알겠지만 소나 돼지를 판다는 것은 도살장으로 보낸다는 말입니다. 옛날처럼 소시장, 돼지시장이 닷새마다 열리는 장터에 파는 게 아닙니다. 무덤도 없는 도살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축산농가에서는 판다는 말도 안 합니다. 출하한다고 합니다. 짐이나 상품을 시장에 내보낸다는 말이니 참 노골적입니다.

소, 돼지라고도 안 부르고 공공연히 축산물이라고 부릅니다. 사료는 공장에서 구입하는 원자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원가개념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공장에서 공산품 만들면서 원자재 구입하는 것이나 축산물의 사료나 똑같은 개념이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소와 돼지는 오로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신세로 전락된 것이 오늘날의 축산현실입니다.

이제 동물은 생명도 가축도 아닌 것입니다. 축사를 보면 그 실체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공장의 자동라인과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와도 같은 사료 공급대, 물 호스, 환풍기, 보온장치 등등.

생태축산으로 불리건 자연방목으로 불리건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을진대 동물복지라는 것이 그들에게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밥상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 아닐까 싶습니다. 괜히 동물 복지가 어떠네 인간적인 살처분이 어떠네 하는 것보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더 먼저가 아닐까 합니다. 사과 한마디 없이 가해자인 인간이 먼저 나서서 피해자의 복지와 생명권 운운하는 것은 순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동물 생명권은 그냥 놔둬도 될 것입니다. 인간들의 가해 행위만 중단되면 절로 해결 될 것입니다. 들꽃이 인간들의 식물복지 정책 덕에 예쁜 꽃을 피우는 게 아니듯이.

어느 토론 자리에 갔다가 '보다 인간적인 살처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웃기는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과연 대량 살육을 당하는 동물들이 '인간적'이라는 표현에 한 가닥 희망을 걸 것이라고 여기고 그런 말을 하는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못 넘는구나 싶었습니다.

구제역 참상을 놓고서 초동대응이 부실했다느니 살처분 과정이 야만적이라느니 채식을 해야 한다느니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취약하다느니 하는 다툼들도 저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땅 속에 누워 있는 동물들이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어느 한쪽은 나무랄까?

요즘, 봄이 되면 매몰지에서 벌어질 대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서 연일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단 한사람도 무릎 꿇고 참회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들이 저지른 일로 자기들에게 닥칠 문제만 놓고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돗물에서 죽은 동물들의 피가 섞여 나오고 사체에서 각종 병원성 세균들이 번지는 것을 두고 생태계의 역습이니 살처분 동물들의 복수니 하는 말들도 사람들이 지어서 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정작 저들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저들은 복수도 역습도 할 줄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거대한 대자연의 순리를 순순히 따를 뿐입니다. 그냥 조용히 썩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모든 게 죄송합니다. 결국은 보다 안전한 인간의 밥상을 위한 소란들이고 양심의 가책을 좀 덜어내고 홀가분해지기 위한 위선입니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얌체 짓입니다.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해서 속죄 할 수 있다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생각 해 봅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면 한 목숨 내 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문제나 다른 사람, 또는 민족이나 종교 등을 이유로 목숨을 내 놓은 적은 있지만 다른 생명체에게 저지를 죄를 갚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좀 나와도 좋겠다 싶습니다. 이래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다른 지구 종들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세우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육식금지와 축산금지

당장 시급한 대책은 이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육식금지. 축산금지. 이것 말고 뭐가 있을까요. 이번 구제역 사태를 참으로 애통해 한다면, 자식같이 키운 게 사실이라면, 죽어가는 가축들을 보면서 흘리는 농부의 눈물이 감상적인 자기 면책용이 아니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과격한 대책이라는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인간의 계산능력으로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식이 깼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현대축산이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것을. 육식이 얼마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식습관인지를.

수치까지 욀 것입니다. 뜻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글에서 되풀이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브이의 다큐나 신문의 기획대담, 잡지의 특집에서 고기 1인분을 만들려면 사람 몇 명이 먹을 곡식을 생산하는 토지가 사료 재배용 농지로 들어가는지. 고기 1킬로그램을 먹는다는 것은 유럽산 중형승용차를 타고 250킬로미터나 달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양을 배출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육식이야말로 인류의 식량위기를 재촉하는 주범이라는 것. 잘못되면 북한의 난민들이 우리집 현관문 앞에 몰려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모두 다 육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13.5%가 자동차나 선박,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인데 비해 18%가 축산농장에서 발생한다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발표도 다 들어서 아는 내용입니다.

옥수수나 콩 같은 사료작물을 키우기 위해 열대 밀림이 하루에 여의도 면적의 몇 배가 사라진다는 것도 알 것이고, 그 사료작물은 모두 유전자조작 식품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과다한 육식이 각종 성인병을 부르는 원인이며 우리가 즐기는 고기 때문에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에 100년만에 폭설이 내렸다는 것은 몇 단계 추론을 통해 도달하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올 겨울의 유난스런 혹한도 육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놀랄만한 육식의 비밀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엄청난 고기를 먹어대고 있지만 인류의 식탁에 오르는 축산물은 단 15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닭은 500종이 넘지만 육계와 산란계로 나눠지고 미국의 닭이나 호주의 닭이나 같은 종입니다. 500종이 넘었던 닭의 종류는 거의 레그혼종 [Leghorn]과 코니시종 [Cornish] 을 혼합한 육계종으로 단일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형 공장식 축산은 생물종을 단순화 시키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의 돼지는 단지 4종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의 돼지 농가가 경제성 있는 돼지, 돈 되는 돼지로 인공교배를 해서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모든 고기들은 그것이 오리건, 돼지건, 소건, 닭이건, 칠면조건 모든 고기들은 총 15종에 불과 하다는 것은 환경 대 재앙의 불씨를 인간이 지폈다는 얘기입니다.

농부들이 8천년 또는 1만년에 걸쳐 기후와 토양에 맞는 다양한 종들을 수천종이나 자연 육종을 시켜 온 것을 단숨에 뒤집어엎고 단순화 시켜 버린 결과입니다. 구제역은 이런 바탕 위에서 밀식축산과 무역에 힘입어 창궐한 것입니다. 이른바 축산방법의 '혁신'이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비밀도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알리는 책들은 제목만 적어도 에이포 용지 한 장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닭 가슴살이니 돼지의 항정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하면서 특정 부위의 고기를 골라 먹고 있습니다. 입맛의 쾌락을 쫒아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첨단 유전자공학이 달려들어 개량종을 또 만들어 냅니다. 그 부위가 잘 발달한 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닭은 앞가슴살이 지방이 없고 고단위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앞가슴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닭들을 유전자조작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우량 우, 우량 돈, 우량 닭, 우리는 그냥 좋은 줄 알고 박수 치며 따라왔다. 우량 가축의 좋은 정액을 뽑아내서는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암 가축에게 수정을 한다. 이게 발전하는 현대 축산이라며 말이다. 자 그렇다면 끔찍하지만 사람도 우량인을 선정해서 종자를 퍼뜨리면 어떻게 될까? 머리 좋고, 성격 좋고,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이런 한 사람을 선정해서 여자들한테 수정을 해보자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늘이 노할 것이다.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가축의 수모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어느 생태 축산인의 고백)

한국의 돼지나 영국의 돼지도 같은 종입니다. 종의 기원은 변하지 않겠지만 종의 번식은 기후도 토양도 자연환경도 변수가 아닙니다. 오로지 빨리 자라고 사육비 적게 드는 종만이 번식됩니다. 살아남습니다. 인간의 종돈, 종우 실험실을 거쳐 그렇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연도 기후도 지역도 아무 작용을 못합니다. 날씨나 온도나 영양 등은 기계와 첨단 전자장비들이 책임집니다. 동물의 건강과 성장은 농부의 땀과 정성이 아닌,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이 대신해 줍니다.

종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전염병이 돌았다 하면 바람처럼 온 국토를 휩씁니다. 이래도 육식금지와 축산금지가 과격하고 성급한 주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양오염과 지하수 오염, 생명경시, 비만, 토양의 사막화. 이 모두가 축산 때문이고 육식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에는 만인이 동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때문에 제약회사나 병·의원의 매상이 올라가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초국적 종자회사와 종돈회사. 곡물 상인들이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 하면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러운 정치로비를 벌이며 더러운 법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마피아조직과 연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인들 한 사람이 1년에 96킬로그램씩 고기를 먹어 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총 가동되는데 드는 기회비용 중에 마피아조직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담배를 공공장소에서 피우지 못하게 되는데도 몇 십 년이 걸렸습니다. 작년 10월에는 서울시 의회에서 버스정거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벌금 10만원이 주어지는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티브이에 나와서 열 띤 토론을 벌이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렇게 변했습니다.

오늘은 축산금지와 육식금지가 과격한 주장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차분히 이치를 따져보면 어디 하나 틀린 말이 아닙니다.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주제입니다. 다만,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육식산업 업자들의 저항과 방해, 허위 선전들이 난무할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입에 밴 고기 맛이 끈질기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요소가 될 것입니다. 축산을 금지한다면, 축산 농가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에서 그들이 전업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도 사실 축산을 하는 농민들이 돈을 번 것은 아닙니다. 시설업자, 사료업자, 제약회사, 도살업자, 고기 판매상이 돈을 벌었고 축산 농가는 그들의 일꾼에 머물렀다고 보여집니다. 

이제까지는 정부에서 지원금까지 줘 가면서 축산을 하게 했지만 축산은 인류의 공공재인 공기와 물과 토양과 종 다양성을 크게 해치면서 돈벌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사료 값 급등이나 가축전염병 창궐 등이 지금의 세계화 시스템에서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이라는 것을 알고 사업으로서의 전망도 흐린 축산을 포기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 가는데는 이용자(소비자)들의 육식금지가 한 몫 할 것입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살처분 축산농가 보상금을 새끼소나 새끼 돼지 재 입식을 조건으로 지급한다고 합니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고 전업을 적극 안내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육식관련 산업에 중과세가 부과되어야 합니다. 디젤 트럭에 환경부담금이 매겨지듯이 육식관련 산업은 고율의 세금을 물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습니다. 축산은 금지 하지만 가축을 키우는 것은 필요합니다. 가축 기르기가 산업화되어 오로지 돈벌이 사업이 되는 것을 축산금지의 대상에 넣습니다. 과수나 논농사, 밭농사와 순환의 고리로서의 가축 기르기는 허용하는 것입니다.

자라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특정한 시기에는 고기를 먹어야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은 없을 줄 압니다. 그게 미신이라는 것이 낱낱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현미밥과 채식만으로 필요한 영양은 충분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기본 욕구이므로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인간들이 너무 혀끝의 향락에 취해 밥상을 어지럽힌 것이 많은 자연재해와 생명 경시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먹는 쾌락, 요리의 예술 운운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2006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사람 당 평균 34킬로그램의 고기를 먹었는데 1999년의 30킬로그램보다 4킬로그램이나 는 양입니다. 작년 2010년은 37킬로그램입니다. 이 수치에서 보듯이 구제역 사태가 그냥 온 게 아닙니다.

김대중 정부는 잘 대처했고 이명박 정부는 순 엉터리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회고담에도 나오지만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점만 부각되면 우리들의 잘못, 우리 생활인들이 다짐하고 해야 할 생활의 개혁이 사라집니다. 좋은 정부가 있으면 고통은 작아지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닙니다. 이제는 근본적인 처방을 이야기 할 때입니다. 여러 소리 할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육식금지입니다.

육류를 마약류보다 더 단속해야 할 것입니다. 마약보다 더 지구환경과 인간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게 모든 면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생명 법정에 인간의 육식이 피고로 기소된다면 죄목이 엄청 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육식은 단지 고기를 먹는 행위라는 사전적 풀이로 설명이 안 되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식탁의 오염과 타락의 대명사가 되어 있습니다. 동물도 천수를 누리게 해야지 동물의 명은 짧디 짧게 하면서 어찌 사람 생명만 연장되기를 바랄 것인가 되짚어 봅니다. 그런 시도를 대 우주가 언제까지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젖소가 잘 자라서 몸무게 350㎏ 정도가 될 때 우량종과 교미시키거나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하게 되면 280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새끼를 낳고 약 305일간 우유가 나옵니다. 즉, 아무리 젖소라 하지만 임신을 해야 젖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으로 인한 개량 젖소는 늘 젖이 나옵니다. 농장의 젖소들이 그것입니다. 그걸 우리가 먹습니다. 이렇듯 지극히 비정상적인 음식이 우유입니다. 세상의 어떤 동물도 다 자란 뒤에까지 젖을 먹는 동물은 없습니다. 사람뿐입니다. 젖은 어릴 때 먹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낳은 어미의 젖을 먹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물론 성인이 다 되어서도 다른 종의 젖을 먹는 사람은 이제라도 소 젖 먹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우유에 든 칼슘보다 우유를 먹어 몸에서 빠져나가는 칼슘양이 훨씬 많습니다. 구제역으로 학교급식 우유가 모자란다고 수입하겠다고 합니다. 결사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학교 우유 급식을 이 기회에 막아야 합니다.

제가 구독하는 어느 농민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월 24일자 신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최대의 농민운동단체에서 나오는 신문답게 구제역과 관련하여 신랄한 정부 비판이 온 지면을 메우고 있었는데 1면 하단의 통 광고가 안심하고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광고주는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였습니다.

신토불이 축산

신토불이와 지산지소는 동물 사료에까지 적용되어야 합니다. 명절 때만 되면 한우를 먹자는 공익(?) 광고가 등장하고 정치인이나 지자체 장이 나섭니다. 얄팍한 애국심에 기대어 외국과의 무역마찰이 생기면 또 한우를 먹자고 합니다. 진보정당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얼마 전 롯데마트에서 통 큰 갈비니 뭐니 하는 야만적인 행사를 벌일 때 우리 축산 농가를 앞세워 진보정당이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수입고기 먹지 말고 우리나라 축산농가 보호하자고.

한우는 먹어도 되는가요? 아니, 진정한 한우가 존재하는가요? 한우 사료의 92%가 수입품입니다. 어떤 지역은 99%를 외국 사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체격이 커지고 얼굴모양도 서구 형으로 길쭉해지고 턱도 좁아지고 하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은 음식의 서구화 때문입니다. 뭘 먹느냐가 그 개체의 존재를 결정합니다. 동물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우를 먹자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난 고기,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곡식을 먹자는 신토불이 정신을 따르자는 주장입니다. 이를 지산지소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소에게도 돼지에게도 신토불이 정신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도 돼지도 그 지방에서 난 먹이를 먹어야 비로소 신토불이는 완성 될 것입니다. 먹이 사슬의 모든 단계가 신토불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땅에서 난 먹이를 먹고 자란 소가 진정한 한우입니다.
우리가 만든 거름, 우리의 몸을 통과한 똥과 오줌이 다시 밭으로 들어가서 자란 채소와 곡식. 이게 진짜 지산지소입니다. 그런데 외국산 먹이를 먹고 자란 소를 놓고 어찌 지산지소, 신토불이를 말할 수 있겠는가 싶습니다.

가축을 키운다면 축사는 물론 먹이까지 우리가 자급할 수 있는 만큼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순환축산, 생태축산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것을 신토불이 축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연축산이나 생태축산이 단순히 방사형 축산, 동물복지가 실현되는 축산을 일컫는다면 제가 주장하는 신토불이 축산은 포괄하는 범위와 정신이 많이 다릅니다.

축사에서 나온 똥오줌을 바다에 갖다 버리지 않고 땅에 거름으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대량사육을 하고 밀집사육을 하다 보니 사료와 항생제, 성장제가 범벅인 사료를 먹이고 그때문에 똥과 오줌을 밭에 그대로 넣을 수가 없습니다.

양이 너무도 많기도 하지만 밭에서도 썩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항생제가 든 거름이라 썩지를 않아 밭에 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기농 농사에서는 공장식 축사의 분뇨를 넣으면 퇴짜를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안 축산이 쉽지 않습니다. 방목형 축산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일 년 중 풀이 있는 시기가 짧기 때문인데 땅 값은 오죽 비쌉니까. 사람 살 공간도 모자라는데 비록 야산이라 해도 동물을 풀어 먹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풀어 먹일 곳이 제주도 외엔 없습니다. 축사에 가둬 키워야하고 긴 겨울동안에는 보관된 조사료를 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어렵습니다.

이 얘기는 고기 좀 적게 먹으라는 지정학적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티베트 등 유목민들이 일 년 내내 고기를 먹고 사는 것은 유목형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조건이 거기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많이 먹어도 성인병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은 약물과 돈으로 키울 게 아니라 시간과 정직한 노동으로 키워야 합니다. 짐승이 갖고 있는 다양한 능력과 기능을 다 발휘하게 해 줘야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동물의 살만, 그 동물의 피부(가죽)만, 그 동물의 뿔만, 그 동물의 젖만, 그 동물의 알만, 그 동물의 털만 뽑아내는 축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동물을 기계부속 다루듯 조립하고 조작하게 됩니다. 원하는 것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생명 학대를 저지릅니다.

최근에 티브이(TV)는 몇몇 축산 농가를 보여주면서, 미생물제제가 어떠니 이엠(EM) 효소가 어떠니 하면서 동물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면서 이번 구제역에도 끄떡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생물요법 축산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유용미생물은 축사의 환경을 산성도 3.3-3.5를 유지시켜 산성도 5.9에서 번식하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구제역 사태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축산법입니다. 자연상태에서 균형을 이루는 미생물들과 각종 세균들이 동물의 저항력을 담보해야지 인위적인 미생물이 사용되어 밀식축산을 버티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 뿐아니라 인위적으로 산성도 3.3을 유지되는 축사가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신토불이 축산이 고비용일 거라는 예단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지금 구제역 3달 반 만에 330만 마리를 파 묻으면서 보상비와 방역비 등의 총 비용이 거의 3조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380만 마리를 묻었던 대만의 1997년은 총 비용이 41조원이었습니다. 그 액수의 대부분은 사후 관리비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지금부터 들어가는 비용이 지금껏 들어간 비용의 몇 배가 될지는 상상을 넘어 설 것입니다. 이 모두가 공장식 축산의 비용입니다.

뉴질랜드나 영국과 달리 한국처럼 좁은 국토에서 축산을 하는 덴마크 경우는 농가당 사육두수를 제한하여 단순히 가축 당 축사의 넓이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 두수를 일정 규모 이상 넘지 않게 하여 농부의 정성과 노력 비중을 높이고, 외부환경에 대한 동물의 저항력을 확보한다고 합니다.

동물 삶이 왜곡되면 사람의 삶도 왜곡됩니다. 동물의 생명이 단순히 인간의 먹잇감이 될 때 사람도 수단으로 전락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곧 봄이 되면 들판 곳곳에서 겨울 내내 파묻었던 동물들을 끄집어내서 불 지르는 광경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영국이 그렇게 했습니다. 살처분 당한 동물들의 사체들이 썩고, 얼었던 땅들이 녹아내리면서 2차, 3차 환경재앙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신토불이 축산이라는 대 원칙이 서야 백신 상시접종 등의 방역대책이나 전염병 발병 시 완벽한 봉쇄 등의 정책들이 실효를 볼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머리맡에 있는 경전을 펼치니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왔습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하리니, 유독 사람만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싸우는지라,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
(斯世之運開闢之運矣 天地不安 山川草木不安 江河魚鼈不安 飛禽走獸皆不安 唯獨人 暖衣飽食安逸求道乎 先天後天之運 相交相替 理氣相戰 萬物皆戰 豈無人戰乎) - 해월 최시형의 『개벽운수』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을 포함하면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제 명대로 못 살고 죽은 생명들이 1000만을 헤아립니다. 그 중에서 소와 돼지만 한 줄로 세워보면 400킬로미터의 경부고속도로에 여섯 줄이 된다는 사람도 있고 열 줄이 된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강물의 고기나 나는 새, 기는 짐승이 운이 다하여 죽는다면 어쩌겠냐마는 그게 다 우리 인간의 무모함과 탐욕 때문이라는 데에 할 말을 잃습니다.

해월 선생님 말씀처럼 인오동포, 물오동포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세상 만인과 세상 만물이 결국 한 형제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구제역 동물들을 애통해 하다가 이웃을 증오하고 해치는 일은 해월 선생님 가르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오동포 물오동포를 실천하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월 선생님은 오늘 새벽 저한테 한 것처럼 그럴 것 같습니다. 구제역 사태의 직간접 당사자인 농부, 방역공무원, 공직자, 수의사, 용역, 축산노동자 분들이 현장에서 흘렸던 눈물을 보시고 그럴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에 제가 일어 난 것은 위 경전『개벽운수』를 읽으면서 아래와 같은 느낌을 받아서입니다. 

"그럴 만하다. 그럴 만하다. 네가 지금 그럴 만하다. 고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버린 축사처럼 네 글이 그렇게 찍혀지길 바라는 것이냐. 괜찮다. 청탁이 오는 구제역 원고들마다 술술 쉽게 써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비록 위선이지 않을까 자책을 할지라도 한시를 머뭇거리지 말고 인오동포, 물오동포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 힘입고 용기 내어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녹색평론> 117호(1011년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녹색평론> 117호(1011년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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