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주에서 한인 김선홍씨가 경영하는 술 소매점 매장.
고은아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느꼈던 것은 '미국 사람들 참 보수적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11년을 넘게 이곳에서 산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여기 미국 사람들의 보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바로 지금, 21세기의 미국 조지아 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두 명의 주지사
2011년 3월 16일(현지 시각) 여러 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56명으로 구성된 주 상원을 32:22로 통과한 한 법안이 3월 22일(현지 시각)에는 15:1로 개별 위원회 투표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 4월 12일(현지 시각) 마침내 180명으로 구성된 주 하원 투표(127:44)마저 통과해 주 의회의 최종 승인을 얻어냈다.
지금까지 연속 5년째 계속, 투표까지 가지도 못하고 상정 단계에서 낙마했던 이 법안의 이름은 SB(Senate Bill) 10. 발기인은 공화당 소속의 존 블록 의원이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일요일에도 술을 팔게 해 달라'는 것. 현행 조지아 주 법에 따르면, 일요일에 레스토랑이나 바 등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슈퍼마켓이나 술 소매상에서는 술을 사고팔 수 없다.
5년째 표류 중이던 이 법안이 갑자기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는 지난해 말 선거에 승리하고 올해 1월에 취임한 네이튼 딜 주지사가 이 법안에 호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전임자 소니 퍼듀 주지사는 두 번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이렇게 공언했었다.
"만약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서 내 책상까지 오게 되면 나는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이 때문에 지난 5년간 이 법안은 계속 상정되긴 했지만 인준될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딜 주지사는 이 법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일요일 술 판매를 반대하지만 이 이슈가 시민들의 선거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다."시민들의 선거. 그렇다. 지난해까지 이 문제를 '돈과 도덕성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했던 언론이 우호적으로 변한 것도 올해 법안 지지자 측에서 '로컬 컨트롤'로 문제의 초점을 돌렸기 때문인 듯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사안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막지 말고 궁극적으로 주민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자는 주장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법안 발기인도 전임 주지사도 신임 주지사도 모두 공화당 소속이라는 것이다. 남북전쟁 패배 이후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온 조지아 주가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공화당 주로 바뀐 데는 기독교인이 많아 '바이블 벨트'로 알려진 이 지역 정서상 문화적,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아들 부시' 정권 당시 불거졌던 동성 결혼 문제라든지, 낙태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를 거치면서 조지아 주는 급격하게 공화당화해 갔다. 그에 힘입어 2003년 취임한 전임 퍼듀 주지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공화당 소속으로는 1870년대 이후 130년 만에 처음으로 당선됐고, 딜 주지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민주당의 목소리가 작은 곳에서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끼리 한 가지 쟁점을 놓고 다투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