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을 죽여라! 그건 신의 축복이다

[연재소설] 미래는 남은자들의 유서이다(24)

등록 2011.04.18 09:41수정 2011.04.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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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렀는데도 벌써 정오였다. 사피나가 거실 벽시계를 보는 순간 길 건너편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흘러나왔다. 

알라는 위대하도다! 알라는 위대하도다! 알라는 위대하도다! 알라는 위대하도다! 나는 알라 외에는 신이라 증언하지 않는다! 나는 알라 외에는 신이라 증언하지 않는다! 자, 예배 하러 오시오!


무슬림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하루 다섯 번의 기도시간과 메카 방향이 입력되어 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몸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La Ilaha illal lahu Muhammadur rasulu lah!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샤론은 끝내 아라파트를 죽일지도 모르겠다. 성지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권을 부인하고 협상결과를 무효로 만들려면, 협상 당사자가 사라지는 게 최선이다. 동 예루살렘의 성지를 짓밟을 때부터 생각해놓았던 계책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은 피의 경험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신들의 도시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종교와 성지를 존중하는 것을 훌륭한 전통으로 삼아왔다. 종교적 반목과 증오가 불러온 참담했던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이었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은 그곳을 자신들만의 성지라고 선언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이슬람교도를 죽이는 것은 축복"이라고 한 격려에 힘입어 예루살렘의 무슬림들을 남김없이 학살했고, 유태인들 또한 예배당에 몰아넣은 후 불태워 씨를 말렸다. 예수를 살해했던 민족이라는 종교적 증오심과, 자기들만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는 유태인들의 배타적 선민의식에 대한 앙칼진 적대감 때문이었다. 

그 후 예루살렘에서 유태인은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뷔츠부르크의 요한이, "예루살렘에는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라틴인, 독일인, 헝가리아인, 스코틀랜드인, 나바라인, 브르타뉴인, 영국인, 프랑스인, 루테니아인, 보헤미아인, 그루지아인, 아르메니아인, 야코부스파, 시리아인, 네스토리우스교파, 인도인, 마론 교회인, 그리고 더 많은 종교적, 민족적 집단이 있어 모두 이야기하려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유태인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학살 70여 년 후 스페인의 벤야민이 순례 왔을 때도 상황은 유사했다. 겨우 3명의 유태인이 옷감을 염색하며 불쌍하게 살고 있다고, 기행문에 적어놓았을 정도였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관용과 절제를 미덕으로 갖춘 위대한 이슬람전사 살라흐 앗딘[Salah ad-din 살라딘]이 성지를 탈환한 덕분이었다.

다른 종교와 민족을 억압하지 말라는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누구든 예루살렘에서 살 수 있었다. 세금만 내면 자신의 종교를 보장받았다. 그때부터 예루살렘의 공기는 기도와 꿈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숨쉬기조차 벅찬 성스러운 도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샤론은 이러한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던 신들의 평화에 대한 도발이었고, 단 한 치의 점령지도 돌려줄 수 없다는 선전포고였다.

도대체 어느 무슬림이 그런 모욕을 받아들일까. 누가 영원히 두발 달린 짐승으로 살겠다고 맹세할 것인가. 지난 1년 반 동안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열 배가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대부분은 남은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점령은 끝나지 않았고, 따라서 저항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도를 끝낸 사피나는 서둘러 배낭을 둘러멨다. 그러자 이모가 점심 먹고 가라며 만류했다.

- 엄마 때문에 안 되겠어요. 
- 시간은 비슷해. 리요나! 빨리 내려와.

이모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대학들도 휴교 중이라, 사촌여동생도 집에 있는 모양이다.

- 싸주세요. 가면서 먹을게요. 
- 거참. 너도 네 엄마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리요나, 뭐 하니!

이모가 큰소리로 몇 번을 부른 후에야 리요나가 이어폰을 낀 채 몸을 흔들며 내려왔다. 

- 잘 있었니?
- 언니 왔네. 
- 이브라힘 집에 가서 아지스 데려와라. 점심 때가 되었는데 뭘 하는지. 
- 알았어요. 

리요나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꼽고는 즐겁게 몸을 흔들며 문을 나갔다. 그러고 보니 올해 열여섯인 아지스를 본지도 꽤 되었다. 집안의 막내답게 항상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코밑이 거무스름해진 후부터 어른 티가 나기 시작했다.

사피나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딸의 뒤통수를 본 후 부엌으로 들어가는 이모 뒤를 따라 갔다.

- 냄새 좋네요. 

갓 구운 피타빵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다. 먹고 갈까 싶을 정도였다. 싱싱하게 저려진 올리브와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토마토, 껍질 표면까지 매끄럽게 익은 오렌지, 요구르트에 버무린 샐러드와 카레를 묻힌 닭튀김은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윤기 흐르고 말랑말랑한 대추야자 그릇을 보았을 때, 사피나는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떠올랐다.

나블루스도 식량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모양이다. 양고기나 염소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들은 보이지 않았다. 양고기를 캐러웨이와 커리앤더에 버무린 미트볼은 늘 내놓는 요리였고, 카레와 요구르트, 마늘 즙에 버무린 양고기를 숯불 항아리에 구워 내는 탄두리는 이모의 단골메뉴였다.

그럼에도 이정도면 진수성찬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사피나가 먹은 것은 통조림 콩과 한꺼번에 구워놓아 딱딱하게 굳은 빵, 절인 올리브와 오렌지 마멀레이드, 요구르트뿐이었다.

이모는 비닐봉지를 꺼내 이것저것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 그만 싸세요. 애들도 먹어야 되잖아요. 

그때였다. 거실에서 전화기가 요란한 목소리로 주인을 불러댔다. 말투로 보아 이모부로부터 온 모양이었다. 수화기를 든 표정이 갈수록 굳어졌다. 

- 서둘러야겠다. 상황이 나쁘다는 구나.  

보안관계자들의 정보에 의하면, 오늘 밤 인근 난민촌들에 대한 강력한 공격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근래에 들어 가장 강력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어디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분위기로는 이곳이 더 위험해 보였다. 오랜 저항의 도시답게 정치단체들의 활동도 원활했고, 지지층도 두터웠다. 이스라엘 군대가 침공할 때마다 자치수도 라말라와 함께 빼놓지 않고 폭격하는 도시도 나블루스였다. 언론에서도 나블루스가 다음 공격대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이모부 팔은 어떠세요? 엄마도 걱정하시던데요. 
- 아직 깁스도 못 풀었는데, 어쩌겠니? 할 일은 해야지.

배낭을 메자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신경 써주는 이모가 너무 고마웠다. 지난번에도 이모부를 시켜 직접 마을까지 데려다 주었다.

- 이번엔 꼭 모셔와라. 알았지? 외삼촌들도 언제든지 오겠다고 했으니까 말이지.
- 이모도 몸조심하세요. 
- 지 놈들이 다 죽이기야 하겠니?  

시가지는 오전에 비해 더욱 불안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하산아저씨네 구둣가게를 통과하지 않으려면 한 블록 전에 꺾어져야 했다. 골목을 막 돌았을 때였다.

- 언니, 잘 가. 몸조심하고!
- 누나 조심하세요!

멀리서 사촌동생들이 손을 흔들었다.

엄마 잘 챙겨드려. 또 보자. 리요나를 보면 자주 남동생이 떠올랐다. 아메드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두 아이 모두 프랑스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외삼촌들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6년이 지났음에도 그 한은 전혀 삭혀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들도 남동생의 죽음에 한몫 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광적이다시피 매달렸던 아이였다.

- 오빠가 책임져야 해. 프랑스어하고 영어는 우리말보다 더 잘하도록 가르칠 테니까. 꼭이야, 오빠한테 처음 부탁하는 거잖아.

엄마가 큰외삼촌하고 전화 통화할 때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지극정성이었다. 아메드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지옥의 불구덩이를 끄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무조건 보내야 해.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광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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