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4.21 15:34수정 2011.04.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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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내 운전기사가 되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2011년 초 학교를 옮겼다. 태안 읍내의 한 학교에서 5년 근무를 하고 연한에 따라 원북면에 있는 한 학교로 옮겼는데, 집에서 10km 거리다. 처음 한동안은 인근 중학교에 근무하는 여교사의 승용차로 출근했는데, 서로 시간 맞추는 일도 불편하고 만나는 지점의 복잡한 도로 사정도 불편 사항이고 해서 얼마 전부터는 내 차로 출근을 시켜준다.
퇴근 시간에도 내가 모셔온다. 태안 읍내에서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는 동료 교사들이 두어 명 있지만 퇴근 시간이 똑같지 않아 함께하는 일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내버스도 있지만 버스를 이용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 살림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내가 수고를 하기로 했다.
아내의 운전기사 노릇에다 또 데리고 사는 여중생 조카아이를 학교에 태워다주는 일도 있고 해서 나는 마음대로 먼 길 출타를 못한다. 아내는 남편을 운전기사로 부려 먹는 게 재미있기라도 한지 운전면허를 취득한 세월이 얼추 10년이 되어가건만 아직도 장롱면허 신세를 면치 못한다.
2010년 여름, 만 10년을 채운 수동변속 승합차와 결별을 하고 자동변속 승용차를 맞이했는데, 오토매틱 승용차라 운전이 떡 먹기라며 아내를 여러 번 회유도 해보고 타박도 해보았지만 가족 전체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심장 쪽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옹고집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은 지난 2월부터 집에 내려와서 2학기 복학 준비와 임용고시 준비를 하는 딸아이가 운전 연습을 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 오후에는 딸아이에게 핸들을 맡기고 함께 아내 학교에 오가곤 한다. 딸아이의 운전 솜씨가 날로 발전을 하니 내가 동승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엄마 출퇴근 일을 딸아이에게 맡겨도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내가 매주 월요일 오후 서울 가는 일도 한결 수월해질 듯싶다. 여의도 거리 미사에 참례한 후 곧바로 밤에 돌아오거나 새벽에 돌아올 필요 없이, 신림동 아들 녀석에게 가서 잠을 푹 자고 다음 날 아침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딸아이도 동행하면 내 운전 수고를 덜 수도 있을 테고.
그래 봤자 가을에 딸아이가 다시 서울로 가버리면 그 세월도 끝나겠지만, 짧은 기간만이라도 딸아이에게 운전면허를 따게 하고 실전 연습을 시킨 보람, 본전을 뽑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운전면허를 따게 하고 운전을 가르치는 것도 실은 즐거운 일이다. 아비로서 큰 것은 물려주지 못해도, 소소한 것들만이라도 잘 챙겨준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
아내의 전근, 가로림만 해변 순례 나서다
아내의 전근 덕분에 원북면의 반계리와 청산리, 대기리와 양산리 길을 많이 걸어보고, 청산리와 마산리 사이에 걸쳐 있는 이화산도 올라보았다.
오후 일찍 원북으로 가서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놓고, 동서남북의 길을 두루 걸어보았다. 태안읍과 원북면 중간 지점에다 차를 놓고, 긴 개천을 따라 가로림만 해변도 가보고, 인근 소원면 시목리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줄잡아 20년 가까이 내 고장 태안읍의 거의 모든 길을 걸어보았다. 태안읍과 맞닿아 있는 남면, 근흥면, 소원면, 원북면은 물론이고, 서산시 부석면과 팔봉면의 길들도 무수히 걸어보았다. 들길과 산길, 또 해변 길을 참 많이도 걸었는데, 길을 자주 바꾼 것은 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찍이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처음 걷는 일은 신선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집을 나서서 어느 방향으로든지 한 시간만 부지런히 걸으면 남면 땅도 밟고, 근흥면․소원면․원북면과 서산시 부석면의 땅도 밟을 수 있는데, 왕복 2시간을 걸으면 대개 30리(12Km) 정도를 걷는 셈이다. 그래서 열흘을 걸으면 3백 리요, 100일을 걸으면 3천 리를 걷는 셈이라는 생각도 한다. 평생 걷는 총 거리는 계량이 어려울 것 같고.
'성인병 백화점' 신세에다가 어느 정도는 늘어진 상팔자여서 그게 가능할 터인데, 천주교 신자로서 묵주기도 실적도 올릴 수 있는 걷는 즐거움은 오늘의 내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때로는 많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게 한다. 직장에 매여 사는 마누라에게도 미안하고,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도 미안하고, 돈 몇 푼 벌자고 허리 아프게 갯벌을 파서 갯지렁이를 잡거나 조개를 캐는 이들에게도 미안하다.
들길과 해변 길을 걷다가 일하는 이들을 보게 되면 그들을 생각하는 쪽으로 묵주기도의 지향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정직한 말로 미안함을 표하기도 한다. 때로는 "괜찮유. 미안헐 것 읎슈. 다 자기 팔자대루 사는 건디 뭘 그류"라는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짓기도 한다.
매일같이 그런 마음으로 들길 산길 해변 길을 걷고 고향산천의 수많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서 묘한 자부심도 느끼는데 아내의 전근에 따라 원북면 내지의 길을 걷다 보니 아직 내가 걸어보지 않은 고장 길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금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적당한 지점에다 차를 놓고, 원북면의 동해리와 신두리, 사창리, 이곡리, 황촌리, 구레포와 학암포가 있는 방갈리 길도 걸어보고, 이원면으로까지 범위를 넓혀 볼 생각이다. 그래서 태안읍을 벗어난 태안군, 우리 고장의 수많은 길을 가장 많이 걸어본 사람이 되어볼 작정이다. 누가 알아주지는 않겠지만.
이화산 천혜경관에 우울함을 느끼다
원북면 소재지인 반계리에서 동쪽으로 듬직하게 보이는 산이 있다. 남북으로 여섯 개의 봉우리가 길게 늘어진 산이다. 청산리와 마산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인데, 지난 2월 말 그 산을 처음 올라본 이후 여러 번 올랐다. 두 시간에 걸쳐 여섯 개의 봉우리를 처음 완주한 날은 일본 동북부 지방 바다 밑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어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원북면 이화산은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태안읍의 백화산 정상에서 원북면 이화산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여러 번이다. 서산시 부석면의 도비산, 팔봉면의 팔봉산, 홍성군의 용봉산과 백월산, 광천의 오서산, 청양의 칠갑산, 보령의 성주산, 천안의 광덕산, 공주 계룡산 등을 가족과 함께 올라보았는데, 우리 고장의 이화산을 아직 직접 대면하지 않은 사실에서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지난 2월 25일 드디어 이화산을 처음 올라보았다. 아내의 교실 이삿짐을 내 차로 실어다 주고 나서, 아내가 교실 정리를 하는 동안 나 혼자 이화산을 오른 것이었다.
이화산 제1봉 바로 아래에 서부발전주식회사 태안화력본부의 거대한 사원아파트단지가 있는데, 태안화력본부가 이곳에다 대규모 사원아파트를 지은 것은 혹 이화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옛날에는 이화산에 돌배나무가 많아 봄철이면 배꽃이 아름답게 보여 배꽃뫼라 했는데, 한자 표기에 따라 이화산(梨花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초기인 1416년 태종(이방원)이 후일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과 함께 태안의 이화산에서 수렵을 했다는 기록이 '신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 올랐을 정도이니, 이화산은 옛날부터 특별한 산이었던 셈이다.
제1봉의 높이가 182미터이고, 최고봉이라는 제5봉도 200미터가 되지 않으니, 산을 오르는 일이 등산이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울 듯하다. 그래도 제1봉의 남쪽 등산로를 밟고 올라 제6봉까지 갔다가 내려가려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리고 제법 운동이 된다. 여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일이 재미있고, 산세도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게 한다.
2월 25일 오후 처음 오르던 날은 시간도 없고 해서 제1봉과 2봉만 밟아보았는데, 1봉 정상에 오르던 순간 동쪽의 가로림만 풍경을 보면서 크게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편 태안읍 도내리에서, 또 서산시 팔봉면의 어송리와 호리에서 바라보는 서쪽 가로리만 풍경과는 또 다른 그림이었다.
나는 이화산의 1봉 정상에서 가로림만 풍경을 취한 듯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맞은편 태안읍 삭선리와 도내리, 서산시 팔봉면의 어송리와 호리, 호리의 구도항 등을 눈이 아플 정도로 눈에 가득 담으며 우리 고장에 저리도 빼어난 풍광을 주신 하느님께 다시 감사했다.
가로림만을 바라보자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가로림만의 초입인 태안군 이원면 내리와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사이의 바다를 막아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주)가로림조력발전이 2012년까지 1조 2천억 원을 들여 태안과 서산을 잇는 2㎞의 방조제를 짓고 연간 발전량 950GWh를 생산하는 조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가로림만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서산지역 어민들과 환경단체는 조수간만 차가 바뀜에 따라 갯벌이 감소하고 생태계가 변화될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고, 태안군 쪽에서는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 찬성하고 있다.
해류 변화에 따른 어패류 산란장 파괴, 수산물 생산량 감소, 주민 생활터전 훼손과 보상금, 방파제를 도로로 이용하는 관광객 접근성 확보 등을 놓고 볼 때 과연 어느 쪽이 더 유익할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규모 조력발전소가 건설된다면 적어도 내가 태안읍의 백화산이나 원북면의 이화산, 또 팔봉면의 팔봉산에서 바라보는 가로림만의 그림 같은 풍광은 지금 같은 모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절로 우울해지고 절박감마저 든다. 가로림만이 크게 한몫하는 태안반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슬프기도 하고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새로 친숙하게 된 원북면 이화산을 오르는 일, 이화산에서 가로림만 풍경을 보는 일이 썩 즐겁지만은 않다.
2011.04.21 15:34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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