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입양이 외화벌이로서는 한국에 경제적 이득이 될지 모르겠지만 G20를 개최하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인도적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국내외 입양문제에 대해 정부, 특히 행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실상은 어떤가?
"보건복지부 통계로 봤을 때, 6·25 이후 해외입양아동의 숫자가 1968년까지는 매해 몇 백 명에 불과했는데, 1969년에는 1190명 1970년에 1932명이 된다. 급격하게 입양아동의 숫자가 증가한다. 결국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1950∼1960년대 보다는 1970∼1980년대에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 입양 보냈는데, 심지어 60년대 해외입양아동 숫자의 10∼20배까지 보냈다. 이것은 산업적·경제적 이익을 떼어 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88년 미국신문 <프로그레시브>에 의하면, 당시 한국 아동 하나에 5000달러가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나온다. 그 해 6463명의 아동이 입양 보내졌으니, 유입된 달러는 총 3200만 달러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국민소득이나 물가, 국민총생산액이나 외환보유고 등을 비교 분석하면 3200만 달러가 한국경제에 어떤 의미를 지닌 외화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금액은 당시 한국정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요소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또 입양인들이 모국을 방문하면서 들고 오는 자신에 관한 서류뭉치들 속에서 종종 당시 유럽 주재 한국 대사들이 개별 입양가정에 보낸 감사서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입양이 보건복지부만 관여한 일이 아니고 외교부까지 관여한 일이라는 증거다. 복지를 담당하는 한 부처를 넘어 범정부적으로 이 일에 관여한 것을 볼 때, 입양을 통해 외화벌이를 정부차원에서 독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한 꼭지는 아동의 해외입양을 통해서 일구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번영이 국내 기지촌의 여성들이 벌어들인 달러와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죽음을 담보로 전쟁참가, 중동 근로자의 피땀 어린 노동,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노고, 해외입양 아동의 낯선 땅에서 떠도는 삶, 자기 아이를 입양 보내고 일생 트라우마를 안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 땅 여성들의 아픔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의 번영에 대해서 자랑할 것도,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라며 대단해 할 것도 없다. 아이를 팔아 자국의 번영을 추구한 나라, 이 수치를 우리 세대에서는 벗어날 길이 없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문제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의기양양한 우리 모습을 세계 속에 각인시키고 싶어 하는 오늘도 우리는 하루 3명 아이를 해외입양 보내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1년에 약 천명 이상을 해외로 입양 보낸다. 이 숫자는 6·25를 겪었던 1953년부터 1957년까지 5년 동안 보냈던 해외입양 아동의 숫자와 비슷한 숫자다. 다시 말하면 한 해 동안 해외입양 보내는 아동의 숫자가 50년대 보다 5배가 많다. 그러니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동을 입양 보낸다는 것도 우리의 복지가 아직 문제여서 등등 어떤 설명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며, 입양이 산업화되었음에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와 경제력을 비교할 수 없는 남미의 과테말라도 아시아의 베트남도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도 유럽의 루마니아도 해외입양을 금지한 지 오래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는 심지어 자국 내 입양조차도 1년에 10명 내외에 불과하다. 미국도 미혼모의 98%가 자기 아이를 자기가 키우는 나라다. 그러니까 입양이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이 이미지, 이 담론이 사실 문제다. 친생가족 그 누가 입양의 이름으로 헤어지길 원하겠나? 그 정책을 집행하는 관리와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겠나?
결국 문제는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관념이다. 입양은 입양하는 사람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일 수 있어도 생이별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생 지울 수 없는 비극이고 슬픔이다. 이 슬픔에 연대하는 대신에, 그래서 그들에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뇌하고 그것을 성숙한 시민사회의 응답과 정책으로 만들어 가지 않는 정부와 사회복지학계와 입양기관들은 그 게으름에 대해, 그 인간성의 결핍에 대해 통석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입양활성화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거드는 학자들과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입양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부모가 마약이나 알콜 중독자거나 가족 내 성폭력 역사가 있거나 중범죄로 부모가 다 감옥에 있거나 부모가 다 사망하고 다른 친인척이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는 아마도 입양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우 소위 아동보호 시설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도 참 많다. 거기에다가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출생하는 장애아들도 있다. 이들을 입양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가 미혼모가 낳은 영아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아무리 변명을 둘러대도 영아 입양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연장아나 장애아의 입양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입양활성화 운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정부나 입양기관이나 입양부모단체들의 주장이다.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입양 활성화 운동이 아니라, 미혼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충분히 만들고, 그래서 입양을 통한 가족의 결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면서, 꼭 필요하다면, 일반적인 입양 운동이 아닌 연장아와 장애아 입양운동 나아가서 공개입양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나 시민사회 지도력의 성숙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내 가슴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말,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는 슬로건 아래 90% 미혼모의 영아가 국내외로 입양되는 현실에 분노한다. 미혼모 가족도 하나의 단위 가족인데, 단지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저들의 결별을 당연시 되고 있는 현실…. 아직도 입양활성화를 국가정책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선진국도 입양활성화를 국가 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없다. 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도모했던 과거 관행, 입양산업이 복지체계 내에서 구조화된 일, 정부 관료의 전문성 결핍, 입양문제를 가족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통전적 전망 안에서 연구하는 학자군의 부재 등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현실에 우리를 머물게 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거친 틀이 입양인의 삶을 가두고 침묵 강요"
- 생활고로 인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친엄마들의 가슴 아픈 사연 몇 경우를 소개하면?
"미국으로 입양 보내어진 민진이 엄마 이야기다. 민진이가 뿌리의집에 머무는 동안 민진이와 민진이의 오빠와 두 언니들은 몇 차례 뿌리의집에서 가족재회를 했고, 민진이 엄마와 아빠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살았다. 너무 어려워 아빠는 대구로 나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발을 들이밀고 싸움을 걸어 입에 풀칠하는 참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민진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 있었고 10여 년 동안 병원에 있다 세상을 떴다. 오빠 하나에 언니가 둘인 집의 넷째로 태어난 민진이는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여성들은 병원에서 출산했는데, 민진이 엄마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결국 난 지 이틀 만에 동네 아주머니를 통해 고아원에 맡겨졌고, 고아원에서는 입양을 권했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얼떨결에 그렇게 하마하고는, 막상 민진이가 서울로 보내지고 나자 민진이 엄마는 매일 고아원을 찾아갔다. 아이를 내어 놓으라고 울고불고 고아원 마당에 아예 까무러치기도 했다.
어려운 중에도 딸 셋을 키웠으니 그 가슴에 고인 모성이 얼마나 풍부했겠는가. 가난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의 말로는 무서운 죄를 짓게 한 것이었다. 민진이 엄마 가슴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무겁고 거칠었던지 그녀는 아이들을 다 팽개치고 머리를 헝클은 채로 매일 낙동강 가로 나가 개천에 몸을 누이고 하루 종일 꿈쩍않기를 1년여. 그 동안 일곱 살 난 민진이 언니가 울며불며 살림을 했다. 문제는 재회가 정말로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물에 본의 아니게 눈물을 보태면서 재회의 통역자로 딸과 엄마와 언니들과 오빠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지만, 끝까지 엄마와 딸은 진정한 소통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으로 간 딸의 마음에 있는 아픔과 상처가 얼마나 깊었던지, 딸은 좀처럼 엄마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엄마는 25년간 굳어져 버린 상처가 너무 두터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아이의 결별은 생명을 쪼갠 듯한 상처와 분노와 거부의 그늘을 일생에 걸쳐 드리우곤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끝도 없다. 시댁에서 생모 몰래 입양 보내버린 이야기, 생모의 친모나 언니들이 입양을 통해 아이와 엄마를 떼어 놓은 이야기, 아이 맡긴 고아원이 생모와 의논 없이 입양 기관에 아이를 보내버린 이야기…. 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엄마와 아이의 결별은 아프고 상처는 깊고 오래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혼자만의 비밀로 가슴 깊은 곳에 묻은 채로 산다. 6·25 후 20만 명이 해외입양을 갔고, 국내 입양도 6만을 넘는다. 26만 명의 상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사회의 거친 틀이 이들의 삶을 가두고 침묵을 강요해온 것이다."
- 개인적으로 입양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나와 나의 가족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9년 동안 스위스에서 살았다. 스위스 국가교회의 한국담당목사로 일을 했는데, 했던 일 중의 하나가 스위스에 살고 있는 한국계 입양인들을 사회적으로 목회하는 일이었다. 나는 8년 동안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이후 영국에서 3년 동안 지내며 입양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미처 마치기 전에 '뿌리의집' 시작하신 분들이 불러 '뿌리의집' 운영을 부탁했고, 벌써 7년을 일하고 있다. 근 18년여를 입양인들과 교제하고 또 그들로부터 날마다 배운다. 이 배움이 나로 하여금 오늘의 한국 입양에 관련된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도록 하고 있다."
- 입양인들 중 입양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유형별로 정리하면?
"입양을 부정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한국의 해외입양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많은 성숙한 입양인 들은 개인의 입양의 경험이 행복하냐 아니냐에 기초해서 해외입양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한국의 시민사회가 가져가야 할 바람직한 아동복지 내지 가족복지 체계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다. 입양이 결별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만큼, 우선적으로 위기에 처한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바람직한 것임을 지적한다."
- 미혼모들 중에서도 주위 눈총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아이들을 스스로 키우는 분들도 있다. 정부의 어떤 지원이 이분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필요한지? 또한 한국 사회에 바라는 요청사항이 있다면?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편견의 불식이 필요하다. 교육기회와 직업훈련 기회의 제공, 취업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 보육체계의 확충, 주택문제에 대한 지원, 적절한 위기상담과 위기개입 등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오는 5월 11일 '입양을 넘어 싱글맘 가족 권리보호로!'라는 주제로 국제콘퍼런스를 연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국내외입양인, 아이를 입양 보낸 친모, 아이를 양육하는 미혼모 등 이분들의 가슴 아픈 삶에 관한 증언을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데 현재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어 줄 국내 입양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약 6만 명의 아동이 국내 입양되었다. 이 아동의 80% 이상이 친생자로 비밀 입양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입양된 아동이 지금 20대 이상에 이른 이들도 많다. 우리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기초해서 입양이 그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규명하고 싶다. 혹시 이 기사를 보시는 분 중에 국내 입양인이며 이 문제에 관하여 발언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면 '뿌리의집'으로 연락 주시길 부탁한다(전화 02-3210-2451, 메일 admin@koroo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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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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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활성화가 국가정책? 부끄러운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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