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추억... 이거 씁쓸하구만

[기차를 타고 떠난 진주여행 1] 경상남도수목원

등록 2011.04.28 09:47수정 2011.04.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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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의 시작 낭만적인 여행 기차여행의 시작 ⓒ 김준영


칙칙폭폭 새하얀 연기와 함께 철로 위를 지나가는 기차는 나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
킨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논에서 놀다 기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그것을 향해 한없이 달리던 기억, 그리고 철길을 걸으며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겠지?" 라며 키득거리던 아련한 추억들이.

이런 유년시절의 추억 때문에 지난 4월 24일 진주여행은 기차를 타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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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밖 풍경 기차 밖 풍경 ⓒ 김준영


진주수목원역으로 가는 길 차장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더 없이 아름답다. 새하얀 하늘 그리고 푸름으로 둘러싸인 들판은 이제 봄이 왔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하던 세상이 기차 안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니 더 없이 조용하고 아늑하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스치는 풍경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렇게 약 30분을 달린 후 진주수목원역에 도착한다. 간이역이라는 의미를 알지 못해 역사가 없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경상남도 수목원을 다녀온 뒤 다시 기차를 타고 진주역으로 가야하기에 우리를 배웅하던 승무원분에게 표를 어떻게 구입하는지 묻는다.

"우리와 같은 직원이 있어요. 역사 안에서 표를 사는 것처럼 그 직원을 통해서 표를 구입하면 되요."

그제야 간이역이 일반 역과는 달리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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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수목원역 간이역 ⓒ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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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목원 가는길 경상남도 수목원 가는길 ⓒ 김준영


진주수목원역에서 표지판을 따라 약 20분 정도 걷다 보니 경상남도수목원이 보인다. 나들이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봄의 주말을 느끼러 온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한 뒤 매표소로 향한다. 매표소는 자판기를 통해 표를 구입하는 시스템이다.

'이제 이런 수목원에도 자동화의 바람이 분건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계를 통해 표를 구입하고, 입장하는 내내 '점점 사람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경상남도 수목원의 규모는 상당했다. 처음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산람박물관을 시작으로  대나무 숲과 전망대 그리고 야생동물원까지 56ha의 면적에 1700여 종의 꽃과 식물들이 있는 것이다. 4월의 폭설과 같은 오락가락한 날씨의 영향이 큰가 보다. 잎들이 이제야 봄을 느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먼저 눈앞에 보이는 산림박물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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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박물관 산림박물관 ⓒ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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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박물관 산림박물관 ⓒ 김준영


산림박물관은 산림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이다. 나무 화석부터 여러 야생동물까지 산림과 관련된 모든 것이 테마별로 구성되어 있다. 물끄러미 둘러보다 새햐안 나무에 눈길이 갔다. 나무화석이었다. 새하얀 나무 덩어리가 몇 만 년을 살아온 화석이라는 소리에 새삼 놀라며 다시금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멸종동물들을 박제한 공간에 들어선다. 수달 등 수많은 동물이 박제되어 있다. 쭉 훑어보다 장수하늘소를 보니 "어릴 적 산에 자주 보이던 곤충이었는데"라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나온다. 살면서 얻는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는 대신 함께 살아가던 자연의 동지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새삼 지인의 말이 몸으로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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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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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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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경상남도 수목원 풍경 ⓒ 김준영


산림박물관에서 나와 본격적인 수목원 여행을 시작한다. 산림박물관에서 대나무 숲까지 길은 하늘 높이 솟은 메타쉐콰이어들로 가득하다. 문득 3년 전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길을 떠올리며 한적한 길을 걷는다.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길이 더 많은 나무들로 이루어져 운치는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그 운치가 떨어졌다면, 이곳은 그저 한적히 걷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자연이 가득한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대나무 숲을 만난다.

대나무 숲과 전망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다. 대나무 숲은 '대나무 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전망대는 전망대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단지 아래의 호수뿐이며 다른 곳은 모두 나무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단지 호수를
보기 위해 지은 전망대라면 그 이름의 의미가 맞지 않을까?"라고 우스갯소리 하며 야생동물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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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전망대 ⓒ 김준영


어린 시절 동물원은 '로망'의 장소 중 한 곳이었다. 귀엽고 무서우며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던 동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무감각해져갔다. 동물원들이 주변에서 점점 사라진 것에도 이러한 무관심이 한몫했다. 저 멀리 동물원이 보이며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그냥 지나치자"라며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성격을 단번에 드러내며 걷다,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타조를 발견한다.

"야, 타조야. 타조."

그 말 한마디에 친구와 나는 눈을 번쩍거리며 작은 담을 넘어 타조를 만난다. "쪼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라는 문구 앞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타조를 본 후 작은 철장 안에 갇혀 도저히 날 수 없을 것 같은 독수리도 본다.

"저런 동물은 넓은 울타리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저러면 날지 못하잖아"라는 말에 친구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고슴도치를 보고 "야행성이라서 밤에만 활동한대. 그래서 저렇게 구석에서 자고 있잖아"라고 말하니 친구가 갑자기 호주에서 겪었던 일화 하나를 말한다.

호주인들이 동물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쉽게 판다를 주지 않아 호주에서는 판다를 쉽게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머무는 지역의 동물원에 이례적으로 판다가 들어왔고, 그 지역 사람들은 판다를 보기 위해 유행처럼 동물원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과 판다의 동물적 특성 때문에 내내 판다의 엉덩이만 보고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치, 야행성동물들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우리의 욕심이겠지?"라고 웃으며 야생동물원을 지나쳐 매표소로 간다.

진주수목원역으로 기차를 타러 돌아가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어떻게 표를 끓지?'라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승무원 한 분이 서서 표를 끊어주는 모습을 발견한다. 오후 3시 19분, 진주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낭만적인 진주 기차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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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수목원역 진주수목원역 ⓒ 김준영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진주여행 #진주수목원역 #경상남도수목원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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