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유혈 진압, 본색 드러낸 정부와 군

유엔, 시리아 규탄 성명 합의 실패

등록 2011.04.28 18:21수정 2011.04.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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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가 시민 시위를 폭력 진압한 시리아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채택하는데 실패했다. 27일 오후(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 15개국 대표들은 초안을 논의했고 이어 공개회의에서 유엔 정치담당 부총장의 보고를 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은 프랑스, 영국, 독일,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이 제안한 초안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가 국제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대사는 시리아 내정에 대한 외부의 개입과 편들기가 오히려 지역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인도는 정치적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고 시리아 정부의 폭력 진압을 비난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안보리 성명 채택에는 실패했지만 시리아 정부가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시리아 정부에 압력을 가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보리의 성명서 채택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은 지난 18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리비아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성명을 채택했었다. 그러나 이 성명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유는 브릭스 국가들이 평소 세계의 인권이나 평화 문제에 관심을 보이거나 문제 해결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나라들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성명서를 통해 정상들은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때로 자국의 이익과 인도적 문제를 심각하게 저울질하는 북미 및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이들 국가들은 국제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쫓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는 노골적으로 반정부 세력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 지난 25일 정부는 3월 중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탱크와 군대를 동원한 강경 진압 작전을 폈다. 시위대의 거점인 남부 도시 다라에 대한 무력 진압으로 2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500명 이상이 체포됐다.

군은 다른 도시들에서도 주택을 수색하고 대규모 체포 작전을 폈다. 유엔은 지금까지 350~400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인명 피해가 최소 450명은 된다고 말했다. 수요일 한 시리아 인권감시단체는 자체적으로 수집한 사망자 명단에 근거해 시위가 시작된 이후 45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을 기점으로 시리아 정부의 시위 대응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까지 정부는 강경 진압과 양보 전략을 적절히 병행하면서 시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개혁을 약속하고 1963년 이후 48년 동안 계속돼 온 비상계엄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위가 계속되고 개혁과 정권 교체 요구도 수그러들지 않자 반대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현재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의 부친인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은 1982년에 군을 동원해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을 진압했고 이때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그때처럼 군을 동원해 40년 동안 통치해 온 아사드 대통령 일가에 닥친 장애물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정부는 다라를 포함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도시들의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군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정부는 시위자들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무분별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린 파스코 유엔 정치담당 부총장은 언론, 인권 단체, 유엔기구, 외교 소식통들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근거해 시위가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위대가 무력을 사용해 보안군의 사망을 초래한 몇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가 외신기자들의 입국을 막고 있는 관계로 시리아 내부의 상황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외신들은 다양한 소식통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군에 포위된 다라의 심각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군의 포위로 다라의 주민들이 고립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군인들이 무서워 저항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나뭇가지에 스카프를 매달에 걸어 놓고 있으며 한 모스크에서는 응급 반창고와 소독제도 없이 의사들이 바느질용 바늘로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인근 국경 난민 캠프의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르단-시리아 국경을 넘어 빵과 통조림 음식을 전달했고 이들은 다라에 식품과 아기용 분유까지 부족한 상태라고 증언했다. 또한 군의 갑작스런 가택 침입과 저격병들 때문에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이웃에게조차 문을 열어주길 꺼려한다고 전했다. 간신히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탈출한 한 주민은 인적이 끊긴 다라 시내는 거의 유령 도시로 변했고 누구도 다라에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라에서는 총격이 계속되고 있으며 군이 저격병을 시내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엔엔(CNN)은 저격병에 의해 26일에는 5명, 27일에는 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군인들이 묘지를 점령하고 있어서 장례식도 열리지 못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은 목격자의 증언을 인용해 군이 거리의 부상당한 주민과 그를 구하려는 사람에게까지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시리아 인권단체인 이안(Ian)의 위쌈 타리프 국장은 시위대에 대한 총격을 거부하는 병사가 총살을 당한 사건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군은 그 병사가 과격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살해됐다고 밝혔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군이 병사를 죽였다고 비난했다.

시리아 정부와 군이 시위대 소탕을 위해 노골적인 협력을 드러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달리 아사드 정권과 군 사이에는 어떤 틈새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오히려 아사드 정권과 군은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시리아 군, 특히 대통령 호위대는 아사드 대통령과 같은 소수 알라위 종파 출신의 엘리트 집단이다. 알라위 종파 인구는 시리아 전체 인구 중 10% 정도만을 차지한다.

이런 소수 종파 출신의 군인들은 그러므로 단지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은 물론 가족과 자신의 출신 마을을 위해서라도 현 정권을 사수해야 한다. 또한 다른 소수 집단인 기독교, 드루즈, 수니 출신의 정치인들도 아사드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아사드 정권은 알라위 출신뿐만 아니라 이들 소수 종파 출신들도 정치권에 영입시켜 지지 토대를 확보해 놓았다. 시리아 정부는 이런 군사적, 정치적 지지 토대를 믿고 더 이상 시위대를 설득하지 않고 소탕 작전을 시작하기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종파 정치의 배경 때문에 시리아의 시민 저항이 결국 이라크에서와 같은 종파간 분쟁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시위가 전체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아랍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시민 정체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시위에는 중산층 전문가로부터 인권운동가와 빈곤층 시민, 그리고 무슬림 단체 회원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종파와 부족을 초월한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고 시리아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26일 해외에 있는 100명의 시리아 지식인들이 시리아 정부의 시민 학살과 폭력 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수니, 알라위, 기독교, 드루즈 등 다양한 종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시리아 정부의 정치적 계산과는 달리 시민들의 저항이 군의 무력 진압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자신과 출신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새로운 시리아 건설이라는 대의를 위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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