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할아버지할아버지는 매일 무가지 신문을 모아 2호선에서 1호선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이 계단을 오르신다. 아래에는 또다른 신문 뭉치가 놓여 있다.
안호덕
구부러진 허리로 신문 보따리를 지고, 또 한손에 또 다른 신문 뭉치를 들고. 차마 할아버지에게 조금만 지고 다니시라 말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조심 하세요' 짧은 인사말을 건네며 발길을 돌린다. 내일도 지하철을 탄다면 또 저 할아버지를 보게 되겠지. 자세한 내막을 알 길 없는 할아버지. 아침마다 무가지 신문을 등이 내려앉을 무게로 지고 2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그 발길이 무겁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할아버지 삶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얼마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폐지, 고철, 쓰레기를 모으는 노인분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일요일 아침, 쓰레기를 묶어 대문 앞에 내어 놓기 무섭게 할머니가 쓰레기 봉지를 뒤진다. 따로 내어놓은 소주병에 못 쓰게 된 프라이팬. 아이들 다 쓴 노트나 스케치북까지 차곡 차곡 정리해서 끌고 다니는 유모차에 싣는다. 몇 번이나 일요일 아침에 마주친 할머니에게 고물상에서 얼마나 받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중 없어요. 종이는 무겁기만 하고 돈이 안 되고, 고철이나 구리 같은 것은 조금 낫고. 하루 몇 천 원 버는 날이 태반이에요. 요사이는 발 빠른 사람이 많아서 아침 일찍이 아니면 주울 것도 없어. 그래도 어떡해요, 돈 쓸 곳은 많은데." 돌아서 힘겹게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쇠똥을 굴려 삶을 영위하는 쇠똥구리를 생각하다가 불경한 상상에 화들짝 놀란다.
국민의 복지병을 걱정하는 기획재정부장관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서민이 되고, 서민이라는 사람들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되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 실업자를 둔 가정은 엄마의 일용직 청소용역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하철에서는 서로 싸움하듯이 무가지 신문을 모으고, 길거리에는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폐지 수집 유모차가 넘쳐난다.
방송은 연일 물가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반복되고, '암에 걸려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60대 부부가 극약을 마셨다는 소식은 많은 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암에 걸려 미안하고, 늙어서 자식에게 짐 되는 것이 미안해야 하는 노인들. 많은 노인들의 사는 모습이 이러하다. 그런데도 복지는 미래를 위해서 아껴 써야 한단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세종호텔에서 열린 세종포럼 연설에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무상급식·무상의료·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해 "무상복지와 같은 과도한 주장이 자칫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무상복지는 근로보다는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려는 복지병을 발생시켜 저소득층의 자립을 저해하고 국가재원을 낭비하는 폐단을 낳기 마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의 복지 타령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복지 주장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갈는지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무가지 신문을 모으기 위해 노인들이 새벽부터 종종 걸음을 치고, 하루 종일 유모차를 끌고 골목을 누벼 고물을 주우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두고, 서민들, 극빈의 노인들을 복지병 환자로 몰아붙이는 그 발상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암 걸려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두고 자식 짐 되기 싫다고 극약을 마시는 노부부가 존재함에도 무상의료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말하는 장관, 현대판 고려장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OECD 국가 중 몇 번째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이명박 정부. 노인 빈곤율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부끄러운 기록도 자랑거리라서 복지 타령을 늘어 놓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