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서 과자 파는 아가씨, 웃는 모습이 예뻐요

구이저우(貴州) 여행기 (7) 쩐위엔(鎭遠) 고성... 강물은 옛 성을 감싸 안고 흐르고

등록 2011.04.29 10:16수정 2011.04.29 10:16
0
원고료로 응원
a

진치집 풍경 바라보기만 해도 흥겨운 마을 잔칫날 ⓒ 최성수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쩐위엔 가는 길

아침 일찍 카이리 터미널에서 쩐위엔 행 버스를 탄다. 낡은 버스이지만 크기는 제법 시내버스 수준은 되니, 길이 험해도 안심이 될 것 같다. 햇살이 쨍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구이저우 여행 중에는 드물게 날씨가 제법 개인 편이다. 서너 시간 걸린다고 하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둔다.

중국 여행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버스가 다니는 길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을 정도다. 최고급 리무진 버스가 달리는 길도 비포장이거나 구불구불 휘어져 있어 때로 가로수를 툭툭 건드리며 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회도로도 없이 국도를 막아놓고 한정 없는 공사를 한다. 갈 때는 멀쩡하던 길이 돌아올 때는 공사중이라 난감해 한 적도 있었다.

쩐위엔 가는 길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유명세 깨나 있는 관광지인데, 도로 사정이야 문제가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거린다.

길은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고, 왕복 2차선이기는 하지만 시원스레 뚫려 있다. 내 생각이 기우(杞憂)였구나 싶어 피식 웃는 순간, 갑자기 차가 기우뚱거린다. 얼른 창밖을 내다보니, 차가 도로 같지 않은 곳으로 들어선다. 비포장의 황톳길이다. 길옆 벼랑에 사람들이 잔뜩 매달려 돌을 깨 쌓고 있다. 포크레인도 한 대, 길옆을 파내고 있다. 공사 중이다. 도로를 넓히는지 모두들 바쁘다.

'길을 막아놓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앞 유리창을 바라보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만 내놓고 양쪽 모두 다 공사를 하고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길을 버스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흔들거리며 기어간다. 얼마를 가다가 앞에서  갑자기 트럭이 한 대 나타나자 버스가 멈추어 선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다. 어떻게 하나, 피할 곳도 없는데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러나 기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버스를 후진시키더니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곳으로 꽁무니를 튼다. 운전 기술 하나만은 일품이다.


a

우양허의 다리 직벽의 바위산 아래 우양허가 흐른다. ⓒ 최성수


한동안 그렇게 비포장인 길을 차는 요리조리 잘도 달리더니, 이윽고 다시 포장된 길이 나타난다. 그제야 버스는 제 길을 만났다는 듯 신이 나게 달린다. 길은 점점 산으로 접어든다. 험한 산길이다. 굽이굽이 산을 휘감아 길이 나 있다. 달려도 달려도 산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다 길가로 허름한 집들이 나타난다. 그리곤 또 끝없는 굽이길이다.

그렇게 세 시간 넘게 달렸을까? 드디어 산을 모두 넘어섰는지, 차가 골짜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다. 거기 낡고 오래 되어 보이는 마을이 숨긴 듯 자리 잡고 있다. 드디어 쩐위엔에 도착한 것이다. 차에서 내려 나는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린다. 달려온 길이 아득하고 아득해서 어디 다른 세상쯤에 도착한 것 같다. 멀미가 나는 것 같아 잠시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성을 찾아 걷는다.


쩐위엔 고성에는 빛 바랜 세월이 머물고

직벽의 위압적인 절벽이 도시를 감싸고 이어지고, 그 아래에 큰 강물이 흐른다. 그 주변으로 집들이 강물에 잇닿아 늘어서 있다. 마치 물의 도시를 보는 것 같다. 강가에는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저 강이 우양허(舞陽河)다. 우양허는 장강(양쯔강)의 지류다. 숱한 골짜기를 흘러온 물이 이곳에서 은은하게 마을을 감싸 흐른다. 부드럽게 S자로 휘어지며 흐르기 때문에 강물을 보면 저절로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강물이 그렇게 부드럽게 흐르기 때문에 여기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리라. 마을 주변으로는 온통 산이다.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거나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이 아득하고 가파른 산이 부드럽게 흐르는 강물과 대조를 이룬다.

모든 아름다움은 대조를 통해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오아시스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 주위가 온통 끝없이 막막한 사막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쩐위엔 마을이 아름다운 것은 험악한 산과 부드러운 우양허가 어울려 있기 때문 아닐까?

a

물에 비친 고루 우양허에 비친 고루가 아름답다. ⓒ 최성수


천천히 강물을 따라 걸어 마침내 고성(古城)으로 들어선다. 멀리 고루(鼓樓)가 눈에 띈다. 묘족이나 동족(侗族) 마을의 상징이다. 북을 보관하기 위해 높게 지은 이 누각은 아무리 먼 곳에서도 금방 눈에 띈다.

쩐위엔 고성은 초한(楚漢) 무렵부터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송(宋)나라 때인 1258년 지금의 이름인 쩐위엔(鎭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물을 따라 번성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곳으로부터 군사가 일어났고, 이곳으로부터 상업이 번성했다'는 평판을 듣는 도시다.

지금 남아 있는 고성은 명청시대(明淸時代)의 옛 모습이라고 한다. 주로 민간 건축이나 뱃길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고성 입구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그 진면목을 맛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금만 걸어 보행가(步行街)로 들어서면, 잘 보존된 옛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a

쩐웬 고성 풍경 쩐웬 고성의 풍경, 골목과 집에는 세월이 내려앉아 있다. 우양허에서는 아주머니가 야채를 씻고, 신혼여행 왔다는 남녀는 과거로 돌아간 듯 사진을 찍는다. 모두가 오래 된 풍경들이다. ⓒ 최성수


고성 보행가에는 양쪽으로 고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한쪽 편은 산으로 이어지고, 다른 쪽 편은 강물과 잇닿아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때로는 강가로 내려가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강물은 고인 듯 느릿느릿 흐른다. 마치 내가 걷는 고성의 걸음걸이 같다. 강

물 저편으로 고루가 우뚝 솟아있다. 고루는 물속으로 제 모습을 투영해 놓고 있다. 강을 따라 늘어선 집들도 제 그림자를 강물에 띄워 놓고 있다. 물속에 또 하나의 쩐위엔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쩐위엔을 '물의 도시', '동방의 베네치아'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적하고 느긋해진다.

a

물의 마을 쩐위엔 물속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 ⓒ 최성수


다시 보행가를 걷는다. 곱고 선한 눈매의 아가씨가 파는 카이리 미화당(凱里米花糖)이라는 과줄을 사 먹으며, 천천히 고성 안을 둘러본다. 말 위에 가득 벽돌을 실어나르는 모습을 구경하다고 골목으로 들어가 오래 된 옛 집을 둘러본다. 낡고 낡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담장 안으로 역시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얹고 한 세상을 견디고 있는 집들이 모여 있다. 그 집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옛 도시 같은 모습니다. 빛 바랜 세월이 거기 머물고 있는 것이다.

a

과자 파는 아가씨 웃는 모습이 선해 보인다. ⓒ 최성수


바다의 여신이 강물에 있는 이유

계단을 따라 물가로 내려선다. 계단이 보통 오래 된 것 같지 않다. 계단 위 산 쪽으로 천후궁(天后宮)이 자리 잡고 있다. 천후궁은 푸젠성(福建省)의 건축 양식과 묘족, 동족의 건축 양식이 결합된 건물이라고 한다. 곁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천후궁은 개축을 했지만, 계단만은 처음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천천히 계단을 걸어본다. 계단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a

천후궁과 계단 바다의 여신을 기리는 천후궁이 계단 위에 아스라히 자리잡고 있다. ⓒ 최성수


천후(天后)는 중국 중남부 바닷가와 대만 지역의 민중들이 숭상하는 바다의 여신이다. 천후가 태어난 곳이 푸젠성인데, 13살 때 어떤 도사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아 아무리 고치기 힘든 병도 금방 낫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가마니에 앉아 물을 건너는 등 물과 관련된 기이한 재주를 많이 지니고 있어 해녀, 용녀라고도 불렸는데,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 다음부터는 붉은 옷을 입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바다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신이다. 그래서 고기를 잡거나 상업을 위해 바다를 건너다가 어려움에 처한 뱃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고난을 이겨나가게 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리라.

그런데 왜 바다도 없는 내륙지방인 이곳 쩐위엔에 바다의 여신인 천후의 궁궐이 있는 것일까? 우양허는 쓰촨(四川), 구이저우, 후난(湖南)을 흐르는 긴 강이다. 이 강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생활을 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우양허는 강이 아니라 바다로 인식될 만큼 넓고 큰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여신을 기리는 사당을 가장 번화한 강마을 중 하나였을 이곳 쩐위엔 고성에 세운 것 아닐까? 실제로 이곳 쩐위엔은 미얀마나 인도 등과 연결되는 상업 지역이었고, 그래서 이곳을 "남방의 실크로드"라고 부르기도 한다니, 이런 상상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보행가를 다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밴드 소리가 들린다. 앞쪽에서 일렬종대로 여러 대의 오토바이 택시 같은 것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다. 제일 앞에는 노란 색 전기 자동차가 행렬을 이끌고 있다. 그 차에 밴드가 타고 연주를 하고 있는데, 음악이 밝고 경쾌하다.

가까이 다가오는 행렬을 보니, 개조한 오토바이 짐칸마다 온갖 짐이 가득하다. 상자에 싸여 무엇인지 짐작이 안 되는 물건도 있고, 온갖 가구들도 보인다. 어떻게 실었을까 싶은 침대도 눈에 띈다.

알고 보니, 모두가 혼수란다. 결혼식을 널리 알리고, 이렇게 많은 혼수를 준비해 왔다는 자랑도 할 겸 행진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성과 어울리지 않는 행렬이지만, 우리와 다른 풍습을 보는 재미도 제법 있다.

보행가 끝에서 강가로 내려서니, 그 행렬의 주인공을 위한 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수북이 쌓아놓은 생선을 튀기고, 어떤 사람은 계란 지단을 쉴 새 없이 부쳐 낸다. 돼지고기만 써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각자 담당한 음식이 있나보다.

"누구 결혼이에요?"

내가 계란 지단을 부치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응, 이 집 아들 결혼."

아주머니는 잽싸게 손을 놀리며 대답한다.

"이렇게 음식을 많이 만들어요?"
"손님이 많이 오니까. 그런데 너 외국인이지. 어느 나라에서 왔니?"

내 말투가 이상한지 아주머니가 잠시 일하던 손을 멈추고 묻는다.

"한국이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나요?"

a

고성 안 풍경 말 위에 벽돌을 가득 싣는다. 오래 된 풍경 같다. ⓒ 최성수


내 말에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다. 몇 장 음식 준비하는 모습을 찍고 나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아주머니를 한 장 찍어 준다. 계란 지단 부치던 연탄불에 대고 사진을 말리자 아주머니가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인화가 다 된 사진을 건네주자 아주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 자랑을 한다. 모두들 일손을 멈추고 몰려들어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바탕 왁자지껄 소동이 일어난다.

"이거 먹어 봐."

아주머니가 사진을 준 턱인지, 지단을 몇 장 집어 준다. 맛이 고소하고 그만이다. 어디나 잔치 풍경은 풍성하고 마음을 들뜨게 한다. 모두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 풍경을 나는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어린 시절, 동네잔치가 있는 날이면 누구보다도 신난 것은 우리 또래 어린 애들이었다. 돼지를 잡을 때면 동네가 떠나라가 꽥꽥대는 소리가 울렸지만, 그 소리조차 흥겨운 음악처럼 들리곤 했다. 돼지 오줌보를 공삼아 차면서, 차일이 쳐 진 마당에서 국수에 고기점이나 얻어먹을 생각을 하면, 입에 침이 저절로 고이곤 했다. 그런 날, 잔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웠던가.

이제 우리는 그 시절로부터 멀리 걸어왔다. 아무리 큰 잔치가 있어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차일을 치고 돼지를 잡지 않는다. 예식장을 빌려 식을 올리고, 식당에서 차려진 음식을 대접하면 끝이다. 모두들 의무감으로 결혼식에 참석하고, 음식을 먹고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다. 흥겨운 잔치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다. 마치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는 것 같은 잔치에 흥이 날 리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흥겨움을 상업적 편리함과 맞바꾸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편리함의 얼굴을 한 자본이 빙그레 웃고 있다. 예식장으로, 식당으로, 혹은 웨딩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숱한 준비단계로 자본을 축적하는 그것들이 흥겨움을 가장한 현대의 얼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그 흥겨움의 시절에서 멀리 떠나왔고, 이렇게 여행길에서 문득 오래 전 그 풍경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세월 저편에서 흘러오는 강물 같은 쩐위엔

보행가 끝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축성교(祝聖橋)다. 성(聖)은 임금을 뜻하는 말이니, 축성(祝聖)은 '임금의 복을 빈다'는 뜻이다. 다리 이름으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구나 싶다. 원래 다리 이름은 계교(溪橋)였는데, 청나라 강희제 무렵 황제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축성교로 바꾸었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보면, 살던 곳의 다리 이름조차 시대의 압력에 의해 바꾸어야 했을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삶이 애틋해진다.

이름은 어울리지 않지만, 다리는 아름답다. 원래 명나라 때 세운 다리인데, 청나라 때 지진으로 무너져 다시 세운 것이란다. 다리 교각 부분은 지진에도 멀쩡히 견뎌 그대로 살리고 윗부분만 다시 얹었다고 하니, 명나라 교각에 청나라 몸통을 지닌 다리인 셈이다.

a

축성교 누각과 다리가 어울린 아름다운 모습의 축성교 ⓒ 최성수


다리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배들이 드나들 수 있고, 다리 가운데에 누각을 지어놓아 멋을 더하고 있다, 밤이면 이 축성교를 지나 우양허로 배를 타고 유람을 하는 풍류를 맛볼 수도 있단다. 뱃전에서 한 잔 술을 마시며 바라보는 쩐위엔의 밤풍경이 눈앞에 삼삼하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그 달은 강물에도 일렁이리라. 집집마다 밝힌 등불들이 물 위에 비쳐 오래된 고성 쩐위엔은 물 속에 또 하나의 쩐위엔을 만들어 놓을 테고, 나그네는 긴 여행길의 피로를 그 풍경으로 말끔히 씻어낼 것이다. 나는 그런 쩐위엔의 밤 풍경을 그런 상상으로 그려볼 뿐이다. 내일은 먼 길을 떠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 쩐위엔에서의 하룻밤은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카이리로 돌아오는 저녁, 창밖으로는 어둠이 짙다. 딱딱한 의자인 잉쭈어(硬座) 기차 안에는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늙수그레한 사내가 도시락을 하나 사서 정신없이 퍼먹는다. 밥을 다 먹은 사내는 창문을 열더니 어둠 속으로 빈 일회용 도시락 용기를 휙 내던진다. 그는 이내 창문을 닫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어두운 창밖을 무심히 바라본다.

어디 먼 세월 저편에서 갑자기 현재로 불시착한 사람 같다. 그의 얼굴에 문득 쩐위엔 고성을 흐르는 우양허 물줄기 같은 것이 어린다. 어쩌면 쩐위엔 고성은 그 사내처럼 오랜 세월 저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은 아닐까? 나도 그 사내처럼 오래도록 창밖의 어둠을 막막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기차는 어둠속으로 흘러간다. 우양허처럼, 느릿느릿.

a

우양허의 배 밤이면 저 배를 타고 불빛 휘황한 강물 위를 흘러갈 수 있단다. ⓒ 최성수


#쩐위엔 #진원 #우양허 #무양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