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특보까지 한 그가 내 등에 칼을!

[정연주의 증언 56] 어느 KBS 이사의 황당한 '전향'

등록 2011.05.06 09:52수정 2011.05.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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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당시 이명박 정권은 KBS 이사진 구성을 친정권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다각적인 공작을 벌였다. KBS 이사회를 친정권 쪽으로 돌려놓기만 하면 KBS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을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서 '해임'을 하면, 모양새 있게 '정연주 제거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지난 증언에서 밝혔듯이 KBS 이사 11명 가운데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친한나라당, 친이명박 정권 이사는 3명뿐이었다. 그랬기에 이명박 정권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KBS 이사회에서 나를 '해임 제청'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았다.

KBS 이사회 뒤집기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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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009년 3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KBS 이사 가운데 그만두는 사람이 나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선임을 하는데, 방통위는 당시 이명박 정권이 장악하고 있었던 터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이자 이 정권의 실세인 최시중씨가 위원장으로 있었고, 수적으로도 5명의 방통위 상임위원 가운데 3명이 한나라당 또는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야당인 민주당 몫으로 들어간 2명의 위원은 정체성이 모호한데다, 최시중의 방통위를 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사들이었다는 게 당시의 평가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전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친 막강한 기구다. 더군다나 신문과 방송 겸업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수구언론에 종합편성 방송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권한을 가진 방통위는 말 그대로 한국의 언론 지형을 바꾸어놓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조중동 방송 허가뿐만 아니라 기존 방송의 재허가, 방송에 대한 각종 규제, 인터넷과 그 밖의 뉴 미디어를 관리하고 규제하는 권한이 모두 있으니 방통위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거대 조직이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년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절치부심한 수구세력은 다시는 정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갈구가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이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토양과 구조를 수구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방송과 통신의 장악뿐 아니라, 동지적 관계의 우호세력인 수구언론에게 그들의 영향력을 더 확대시켜주는 것이 필요했다.

KBS, MBC, YTN, 연합뉴스 등은 상층부 교체와 수구적 생각을 가진 각 언론의 내부세력에 의해 아주 쉽게 정권 친위적으로 되었다. 그리고 우호세력인 수구언론을 위해서는 공기업과 정부 광고의 몰아주기로부터 종편 방송 허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베풀어 온 당근의 종류와 크기는 다양했다.


최시중 독주 견제 못한 야당 몫 방통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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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를 저지하기 위해 사내에서 농성을 벌였던 양승동 PD연합회장을 포함한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 최용수 PD 등 KBS 내부인사들이 지난 2008년 7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여있던 방송장악저지 범국민행동회원들과 시민들을 찾아와 "촛불의 힘으로 이사회 무산되었다"고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방통위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방통위에서 각종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야당 몫으로 된 2명의 방통위원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회적 책무는 정말 막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전투력이었다.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정권적 차원에서 진행하려 했던 언론 구조의 변화를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었으며, 제어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권이 저지르는 각종 조치의 무모함과 비합리성을 일반 국민에게 폭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방통위원 2명과 그 뒤의 야당 몫 인사들은 대부분 그 역사적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조중동 등 수구언론에 방송의 날개 달아주는 일에 허망한 들러리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비판을 줄곧 받아 왔다.

이병기 방송통신위 상임위원. ⓒ 방통위 제공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 인물이 민주당이 추천한 이병기 방통위원이었다. 그는 왜 민주당 추천으로 그 자리에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나왔다. 결국 그는 방통위원 자리를 그만두고,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는 방통위의 종합편성·보도 채널 승인 심사위원장의 자리를 맡았고, 또다시 박근혜 의원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이병기 위원이 민주당 추천으로 방통위원이 될 때 당시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 체제였다. 방통위원 추천을 위해 문광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진행되던 도중에, 추천 방식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 이른바 학계 인사 등이 참여한 새로운 방통위원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추천위원회는 전혀 뜻밖의 인사들을 민주당 추천의 첫 방통위원으로 뽑았다. 손학규 대표가 지금도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욕을 얻어먹는 이유다. 언론의 지형 변경과 관련하여 그토록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어떻게 뜻밖의 인물들이 선택되었는지 아직도 나는 잘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런 인물들이 방통위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가.

무너져 가는 KBS 이사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방통위가 이 모양이다 보니, KBS 이사 선임권을 가진 방통위에 무엇을 기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랬기에 KBS 이사 중 누군가가 그만두게 되면, 그 후임은 친이명박 정권 쪽 인사가 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2008년 3월에 조아무개 KBS 이사가 총선 출마를 위해 이사직을 그만두었을 때 그 후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친정권적 인사가 들어왔다.

이제 KBS 이사회 구성은 7대 4가 되었다. 두 명만 친정권 인물이 들어오면 KBS 이사회는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역전이 가능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

바로 이즈음 <동아일보>가 재미있는 기사를 전했다. 2008년 3월 26일자 '거취 주목받는 KBS 이사 4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KBS 이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조아무개 이사가 이미 떠난 뒤여서, 남은 3명의 이사 가운데 2명만 그만두면 KBS 이사회는 정권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그런 상황에서 나온 기사였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혔을 뿐 아니라 이들 이사에게 어떤 '의혹'이 뒤따르고 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만두라는 압박과 다름이 없었다. 일부 이사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해서 '사퇴 가능성'까지 물었다.

그렇게 <동아일보>가 구체적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보기에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의혹'을 거론까지 하면서 압박을 가하던 그즈음에 어느 KBS 이사가 '전향'의 목소리를 내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이제 거취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셔야지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어느 KBS 이사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종반전이 진행될 무렵, 노무현 후보 캠프에 언론 특보로 들어간 인물이다. 참여정부 시절, 방송위원회 등 언론 관련 기관에 인사가 있을 때 종종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KBS 이사로 재직하면서 KBS가 참여 정부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며 내게 이런저런 주문과 궂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는 어느 공기업의 감사직도 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작지만 이런저런 편의를 보아준 적도 있었다. 그랬던 인물이었기에 점심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을 때, 나는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그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가 불쑥 던지는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정 사장. 어떻게 하실 거요?"
"어떻게 하다니, 무슨 말씀을…."
"아니, 이렇게 시끄러운데 거취 문제를 이제 적극적으로 생각할 때가 된 게 아닌가요?"
"거취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그만둔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때가 된 거 아니오?"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KBS가 참여정부를 너무 비판한다며 이런저런 궂은 말을 내게 많이 했던 인물이 느닷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내게 '백기'를 들으라는 주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뜻밖이고, 황당해서 한동안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되물었다.

"나 그만두고 나면 이명박 사람이 들어올 텐데요."
"아니, 떠나는 사람이 뭐 그런 뒷일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요?"

순식간에 친정권 쪽으로 전복된 KBS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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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 과정에서 이사직을 박탈당한 신태섭 전 KBS 이사와 정연주 전 KBS사장이 지난 2009년 9월 3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열리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에 참여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권우성

이상하게도 그에 대해 아무런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 뒤 이사회 간담회 석상에서, 정 사장 체제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 이사회는 한배를 탄 공동체다, 한 묶음으로서 이사회가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가 그렇게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른 이사들에게 '전향' 운운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왜 그렇게 '전향'했는지는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유를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어쨌건 그가 '반 정연주'로 돌아서고 나니,  KBS 이사회 구성이 순식간에 박빙이 되어 버렸다. 8대 3에서 출발한 KBS 이사회 구성이 졸지에 6대 5가 되었다. 이제 한 명만 '전향'을 하거나, 한 사람을 솎아낸 뒤 친정권 이사를 앉히면 이사회 구성은 5대 6으로 친정권 쪽으로 역전이 되어 '정연주 해임 제청'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부산 동의대 교수인 신태섭 이사를 제거하는 일에 그토록 집요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 한 사람을 뽑아내기 위해 참으로 못할 짓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신태섭 교수는 말할 수 없는 곤욕과 고통을 치렀고, 외로운 싸움을 했다.

나는 지금도 신태섭 교수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무리 그가 외롭게 싸운 그 싸움이 역사를 위한 것이고, 마땅히 그가 시대적 소명을 다 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치른 고통과 희생, 외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전향'한 어느 이사와 그의 삶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정연주 #KBS #신태섭 #KBS 이사회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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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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