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산 자락 뒤덮은 산나물, 다 제 겁니다

[도시탈출③] 전남 화순 골짜기에서 키우는 나물마을의 꿈

등록 2011.05.16 16:21수정 2011.05.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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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북면에 위치한 백아산. 골이 깊어 평소에는 조용한 이 산에 주말이면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잠시나마 왁자지껄해 진다.

곰취 모종 물을 흠뻑 주고 임시로 심어놓은 곰취가 며칠을 잘 버텼다. 옮기려고 뽑고 있다. ⓒ 산채원촌장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산자락에 계절마다 풍기는 산나물 향. 그리고 그 나물들을 맛나게 만들어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을 차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다는 백아산에 300여 가지의 건강한 나물을 길러내며 산을 뜰 삼아 내를 놀이터 삼아 살고 있는 산나물 사나이가 바로 나다.

생활도서관장, 산나물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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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곰취 ⓒ 산채원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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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도라지 화순 백아산 해발 500미터에 옮겨 심은 도라지. 꽃이 피었네. 더디 자라 좋은 사포닌 성분 맘껏 품어라. 밭도라지, 중국산 도라지 이제 물렀거라. ⓒ 산채원 촌장


백아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왔다. 80년대 후반, 순진한 시골 청년은 사회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생활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없는 학교나 지자체에 작은 생활도서관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서 원하는 책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10년을 한눈 팔지 않고 이 일에 전념했다.

보람은 컸지만 문제는 생활이었다. 근근이 버티고는 있었지만 몸까지 안 좋아지자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시생활이 몸을 점점 안 좋게 만들고 있었다. 고향이 그리웠고, 자연이 그리웠던 나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야겠다 결심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은 싫었다. 나만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냈다. 산에 나물을 키워보자! 엉뚱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있었다.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나물 종자 수집에 나섰다. 그리고 2006년 드디어 온 가족이 백아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백아산에 유일한 가옥, 바로 내 집이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3년 만에 집을 짓지 않는다. 빚을 얻지 않는다. 3년 안에 땅을 사지 않는다.'

섣불리 귀농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많이 본 터라 지금까지 이 칙을 철저하게 지켰고 앞으로도 지킬 것이다. 밀림 같던 숲에 길을 내고 길섶에 나물을 심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농법 그대로 직접 만든 퇴비와 유기농 비료만 흙에 뿌려주고 나물의 특성에 따라 최적의 장소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5년이 지난 지금 백아산에는 산길 어디서든 은은한 향이 풍긴다. 참나물, 곰취, 두릅 같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나물부터 발아도 어렵고 키우기도 힘든 나물류까지, 모두 300여 가지의 친환경 나물이 자라고 있다.

꿈이 있는 산 속 생활,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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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산이 해발 810미터 백아산이다. 아내와 해강이 솔강이도 주말에는 함께 한다. 타잔놀이를 하려나? ⓒ 김규환


귀농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아이들의 교육도 걱정이 없다. 아이들 수가 적어 오히려 선생님은 일대일 교육을 하고, 방과 후 수업은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실하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 속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 자신의 시간을 충실히 엮어나갈 공간과 시간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요즘 도시생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과 백아산을 뒤덮고 있는 나물 향에 행복을 느낀다.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온다. 함께 산길을 산책하고 모르는 나물을 맛보면서 산채체험을 한다. 그리고 수십 가지 종의 나물들이 가득한 올라온 밥상을 받으면서 고향의 정을 흠뻑 느낀다. 

그냥 오는 손님을 마다하지 못해 했던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시골체험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된 3년 전부터 5월에는 아예 나물축제를 연다. 조용하게 산채체험을 하기 위한 축제. 심신을 편안히 하고 맛있는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축제를 여는 것이다. 주말 손님맞이의 연장이고, 앞으로 내 꿈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백아산 자락에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 나물을 키우고 같이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정겨운 풍경. 배가 고프면 막걸리 한 잔에 나물밥을 해 먹고 아이들 뛰어노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돌보는 이웃사람들. 그래서 누구든 백아산에 들어오면 두 팔 벌려 맞겠다. 백아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정을 느끼는 나물 마을이 만들어지는 그날을 꿈꾼다.
#산나물축제 #화순백아산 #산채원 촌장 김규환 #산채비빔밥 #산나물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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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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