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개방 쓰나미가 밀려온다
'나쁜' 한-EU FTA, 한국경제 재앙 될라

[분석] 7월1일 잠정발효... 국민에게 어떤 영향 미칠까

등록 2011.05.05 09:35수정 2011.05.0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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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4일 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홍희덕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경위들에 의해 밀려난 가운데 박희태 의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4일 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홍희덕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경위들에 의해 밀려난 가운데 박희태 의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남소연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4일 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홍희덕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경위들에 의해 밀려난 가운데 박희태 의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남소연
a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 롯데마트 공사장앞에서 '롯데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강북 중·소상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롯데마트 입점저지" 구호가 적힌 붉은 머리띠를 한 상인들은 "<삼양시장 재정비사업>이라고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형마트였다"며 "기업형수퍼마켓(SSM)만 들어와도 타격이 큰데, 그것보다 몇배는 큰 롯데마트가 들어오면 재래시장은 다 죽는다"고 분노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 롯데마트 공사장앞에서 '롯데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강북 중·소상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롯데마트 입점저지" 구호가 적힌 붉은 머리띠를 한 상인들은 "<삼양시장 재정비사업>이라고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형마트였다"며 "기업형수퍼마켓(SSM)만 들어와도 타격이 큰데, 그것보다 몇배는 큰 롯데마트가 들어오면 재래시장은 다 죽는다"고 분노했다. ⓒ 권우성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 롯데마트 공사장앞에서 '롯데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강북 중·소상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롯데마트 입점저지" 구호가 적힌 붉은 머리띠를 한 상인들은 "<삼양시장 재정비사업>이라고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형마트였다"며 "기업형수퍼마켓(SSM)만 들어와도 타격이 큰데, 그것보다 몇배는 큰 롯데마트가 들어오면 재래시장은 다 죽는다"고 분노했다. ⓒ 권우성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다. 오는 7월1일부터 발효되는 협정문은 700여페이지(국문)에 달한다. 이 문서는 아이들의 급식 재료부터, 한삼 모시같은 특산물 명칭까지 어떻게 써야할지를 정해놓고 있다. 물론 우리 마음대로 할수 없다.

 

골목 가게들은 거대 유통기업들과 피나는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이 역시 끝날 처지에 있다. 의약품 값이나 의료비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현실로 다가온다.

 

구제역으로 시름 앓는 축산농가들은 '세금없는' 유럽산 돼지고기에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다. 우리보다 값이 절반수준인 사과와 배, 닭고기 뿐 아니라 탈지분유 등이 밀려 들어온다. 중소 농민들과 작은 기업들은 거센 개방의 쓰나미에 그대로 쓸려갈 위치에 있는 셈이다.

 

정부는 거대시장 EU를 선점해,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게 큰 혜택을 주는 FTA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일부 수출 대기업과 국내 1%의 상류층은 혜택을 누릴수 있다. 당장 수백만원씩 유럽산 고가 승용차와 각종 명품 값이 떨어진다.

 

하지만 대다수 소기업과 상공인, 서민 등은 자칫 삶의 기반마저 흔들릴 처지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다. 또 정부의 장밋빛 경제적 효과의 신기루 속에 무리하게 FTA를 추진하면서, 자칫 한국경제에 재앙이 될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농축산업 뿐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유럽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폐업과 도산이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밀실과 불통의 이명박정부 첫 누더기 FTA 비준안과 통상독재

 

지난 2007년 5월부터 시작한 한-EU FTA 협상은 한때 '착한 FTA'로 불렸었다. 일방적인 시장개방의 한미FTA(2007년 4월 타결)에 비해, 협상 당사자의 경제력을 감안해 개방 폭도 점진적으로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시민사회나 국민들의 주목도 덜 받았다. 하지만 현 정부들어 진행된 EU와 협상은, 사실상 한미FTA를 그대로 이어 받거나 오히려 더 악화됐다. 특히 일부 서비스부문의 추가개방과 독소조항이 드러나면서, '독하고, 나쁜 FTA'라는 평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EU는 지난 2006년 새로운 통상정책을 펴면서, 미국과 같은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형 FTA를 추진했다"면서 "최우선 추진국이 한국이었고, 협상 결과는 한미FTA에 추가로 EU의 이익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협상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지난 2009년 7월 정부는 EU와 사실상 협상을 타결해 놓고도,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가서명을 추진했다. 한미FTA 때는 협상 타결후 협정문이 곧 공개됐었다. 협상과정에서 각 산업별 주요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도 한미FTA 때와는 딴판이었다.

 

FTA 체결에 찬성해왔던 대기업소속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참여정부때 미국과의 FTA 협상 때는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도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등 소통구조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들어 진행된 FTA 협상과정에선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EU와 협상 과정부터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합의를 거쳤어야 했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는 국민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서명하고 협정문을 뒤늦게 공개하는 모습은 참여정부때 보다 더 후퇴한 밀실협상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a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4일 밤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의원들에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4일 밤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의원들에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4일 밤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의원들에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이같은 밀실과 불통의 협상은 사상 최악의 협정문 오역 사태를 불러왔다. 200개가 넘는 번역 오류는 국제적 망신을 불러왔고, 통상분야의 최고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통상관료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국제법적으로 전혀 구속력도 없는 협정 발효날짜를 통상관료 혼자 구두로 합의해 놓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비준 압박을 넣은 모습에선 정부의 '통상독재'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지난 1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한EU FTA에서 주어의 격을 가진자는 오로지 통상본부 뿐"이라며 "그 관료들만이 스스로 제안하고, 협상하고, 평가하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상위1% 국민을 위한 FTA... 거센 개방 쓰나미 앞에 선 중소상인과 서민들

 

정부의 통상독재 논란에도 한-EU FTA는 이제 오는 7월1일 잠정 발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의 예상은 말그대로 장밋빛이다. 세계최대 경제권과의 관세를 없애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들에겐 큰 이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국내로 들어오는 유럽산 제품들의 값이 떨어져, 소비자들도 그만큼 이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거대 경제권과의 무리한 FTA로 인해, 농축산업 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 등이 거센 개방 쓰나미에 휩쓸려 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해영 교수는 "정부는 EU와 FTA가 발효되면,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자동차나 가전 등의 효과도 실제 그리 크지 않은 대신에, 우리는 서비스, 투자, 농축산업 등에 거의 희생과 양보를 거듭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EU FTA 협정문의 관세철폐 시기와 품목

한EU FTA 협정문의 관세철폐 시기와 품목 ⓒ 외교통상부

한EU FTA 협정문의 관세철폐 시기와 품목 ⓒ 외교통상부

 

실제 우리가 가장 큰 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던 자동차 분야는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미 동유럽 등지에 생산공장을 지어놓고, 거의 전량을 현지 생산하고 있다. 물론 이번 FTA 관세효과는 없다.

 

게다가 우리쪽 강점인 소형차는 EU에서 5년내 관세철폐가 이뤄지는 반면, 유럽산 중형차에 대해 우리는 3년내 관세를 없애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불리한 구조다. 그만큼 유럽산 고급 자동차들의 국내 자동차 시장 공략은 더 빨라질 것이다.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높고, 우리의 수입비중이 큰 품목들은 거의 즉시 철폐대상으로 돼 있다"면서 "반면 우리의 주력수출품인 선박, 무선통신기기, 반도체 등은 이미 관세가 없으며, 자동차 부품이나 무선통신 부품 등은 관세율이 낮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실속은 전혀 챙기지도 못하고,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EU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돼지고기 역시 빗장이 완전히 풀렸다. 25%에 달하는 유럽산 냉동삼겹살에 대한 관세는 10년에 걸쳐 없어진다. 냉동 삼겹살은 EU가 우리에게 수출하는 농산물 품목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번 협정문에서 농산물 세이프가드(특정 제품의 수입이 급증해, 관련산업의 피해가 예상될때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 적용 대상으로 냉동 삼겹살이 아닌 냉장삼겹살로 했다는 것이다. 냉장삼겹살의 경우 EU에서 국내로 수출되는 양은 극히 적은 수준이다. 냉장삼겹살 역시 10년후에 관세 22.5%가 없어진다.

 

또 관세율이 높은 유럽산 각종 건조포도(215), 냉장오이(27%), 냉동감자(27%), 복숭아(45%), 단감(45%) 등도 즉시 관세를 없애거나, 10년에 걸쳐서 사라지게 된다.

 

한나라당이 오는 6월에 처리하겠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유통-상생법의 충돌 문제도 여전하다. 이미 관련 법이 시행중임에도 SSM의 편법 개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EU와의 FTA가 발효되면 사실상 중소상인의 생존권은 더욱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친환경 의무급식에 국내산 농산물을 우선 쓰고 있는 것도 이번 협정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유럽산 쇠고기 광우병 검역 문제도 향후 우리 먹거리 안전에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지적재산권 뿐 아니라 일반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제약할 수 있는 '허가-특허 연계'조항이나, 최혜국대우 등 각종 독소조항이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일부 수출대기업 등을 빼고, 중소기업과 상인과 축산농민 등의 피해가 커지면서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한국경제에 재앙으로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EU?FTA #SSM #관세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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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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