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5일은 어린이 날이었다. 올해 6학년인 큰 아이는 이번이 마지막 어린이 날이라며 며칠 전부터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어린이날 이틀 전엔 가족의 의견을 모으겠다며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집에서 엄마 아빠랑 보드게임을 하고 싶다는 동생을 설득해서, 가족 모두 기차를 타고 아주 짧은 여행을 하기로 결론을 내었다.
그런데 어린이날 전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 안 좋은 소식이에요. 선생님이 내일 표창장 받으러 공설 운동장에 아홉시 반까지 가래요. 거기서 하는 어린이날 행사는 재미도 없는데" 하며 시무룩해 하는 것이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군에서 하는 어린이날 행사장에서 상장을 주는 게 있다. 올해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된 이유로 큰 아이가 그 상을 받게 된 모양이다. 늘 운영위원장 집 아이나 전교회장이 된 아이가 받는 형식적인 상이라 큰아이는 그 상이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아는 거였고, 상을 받으러 가면 자칫 가족이 함께 하기로 한 계획이 취소 될까봐 불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온 식구가 어린이날 행사장으로 향했고, 큰아이는 한참을 기다리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가 교육장이 주는 표창장을 받았다. 근데 큰아이가 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묻는다.
"엄마, 7월 12일 날 보는 시험이 일제고사 맞아요?"
"글쎄,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 거야. 그건 왜?"
"엄마, 정말 황당해요. 교육장님이 우리한테 상장주고 악수하며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7월 12일 날 시험 잘 치세요. 7월 12일 날 시험 잘 치세요. 한 명도 안 빼고 이소리만 계속 했어요."
열다섯 명 정도의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상을 주며 교육장은 격려의 말을 한 마디씩 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정확한 날짜까지 들먹이며 시험 잘 치라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열다섯 번씩이나 앵무새처럼.
교육장이라는 분이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할 말이 그렇게도 없을까? '건강하게 자라라' '축하한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되라' '만나서 반가워요' 등 하고 많은 말 중에 '7월 12일 날 시험 잘 치세요'만 열다섯 번은 좀 심하지 않은가?
교육장의 눈에 아이들은 아이들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할 소중한 존재들이 아닌 것일까?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일까? 작년에도 교육청에서는 관내 초등학교 교감들을 불러놓고 일제고사 성적에 대한 압력을 주었고, 교장이 되기 위해 '목을 매는' 교감들은 6학년 담임과 아이들을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에 내몰았다. 실제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 후는 물론이고 놀토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매년 100-200 여명의 중고생이, 최근 몇 년 사이엔 그 보다 많은 수의 대학생이 스스로 소중한 삶을 버리고 있다. 최고의 영재들이 모인 카이스트에서 조차 경쟁은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등수매긴 성적표로 자신들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아무 생각없는 어른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다. 내가 사는 시골엔 6학년이래야 채 열 명이 안 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그 열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의 성적에 자신들의 출세를 거는 치사한 짓을 하는 교육자들. 아이들을 파행적인 문제풀이 식 수업으로 내몰고 그 대가로 학교 등수와 지역 등수를 올려 교장도 되고 장학사도 되고, 더 큰 지역의 교육장이 되고 교육감도 되려는 자들. 도무지 그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학교 교육이 제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지 오래고, 그 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다는 걸 알아버린 학부모와 아이들은 늘어만 간다. 나 역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이를 학교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솟아난다.
우리가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상식과 도덕성 정도만이라도 가진 어른이 된다면, 또 그 중에서 조금 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이가 교육을 맡아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2011.05.09 10:30 | ⓒ 2011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