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아일랜드 픽쳐스
골고루 사온 고기 때문에 얘기 거리는 고기로 부터 시작해서 화기애애했다. 외식도 좋지만 이렇게 집에서 느긋하게 먹는 것도 좋다는 의견으로 일치를 보기도 했다. 술도 한잔씩 하면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 그때 딸아이가,
"동생이랑 함께 드리는 건데 이건 아빠 용돈, 이건 엄마 용돈. 엄마 며칠 있으면 여행도 가지. 거기에 여행경비도 조금 더 넣었어." "뭘 여행경비를 따로 넣어 이거면 충분한데…. 고맙다 잘 쓸게."딸아이가 주는 거기에 받긴 받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정말 크게 들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너무 많이 받은 것 같기에 여행경비는 되돌려 주려고 했지만 기어이 받지 않았다. 하긴 마음먹고 내민 봉투를 준다고 되돌려 받지는 않을 터. 한두 번 권하다가 어린이날에 아이들 선물 사주라고 나도 봉투를 내밀었다. '어버이날이니 시댁 부모님도 찾아봬야 하는데…' 은근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댁에는 언제 갈 거니?" "아버님이 8일에나 시간이 난다고 해서 그날 가려고." 어버이날에 양쪽 부모들 찾아보는데 드는 비용이 봉투 내놓고, 식사도 하고, 대충해도 오십만 원~육십만 원이 넘으면 넘었지 그보다 적지는 않을 거란 계산이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해서 8일 어버이날과 두 아이 모두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니 무시할 수 없는 스승의 날도 있다. 그 외에 16일 성년의 날 등 기념일이 정말 많다.
요즘은 어린이날도 동화책, 장난감을 선물하거나 간단하게 치킨 등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기념일도 챙기려면 자식들 등골이 휠 것 같다. 자식들한테 푸짐하게 대접은 받았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결혼한 자식들 잘 사는 게 최고 '효도'마침 5월 8일 친구 딸아이 결혼식이 있어 친구들이 모였다. 어버이날이라 얼굴만 비치고 부모님 뵈러 가야 한다면서 바쁘게 식장을 떠나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 예식을 보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는데 K가 보이지 않자 한 친구가 "걔는 왜 안 왔어?" 묻는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이들이 중국여행 보내줬잖아. 그래서 봉투만 가지고 왔어." "누구는 좋겠다. 해외여행씩이나 보내주고." "좋긴 뭐가 좋아. 요즘 자식들도 제 살기 바쁜데 그런 거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이런 행사 한번 치르고 나면 월급쟁이들은 얼마나 쪼들리겠어. 그 후유증이 몇 달은 가잖아." "그래도 난 그런 선물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밥만 먹는 친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지난 번보다 무척 야윈 모습이었다.
"너 요즘 다이어트 중이니? 엄청 날씬해졌네.""한가하게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힘없이 한마디 툭 내던진다. 자세히 보니 흰서리가 머리 전체에 내려앉은 모습이 부쩍 늙어 보이기도 했다.
"머리 염색 좀 하고 오지. 진짜 파파할머니 같다.""그러게 내가 많이 늙어 보이지?""집에 무슨 일 있어?" "어버이날 선물은 무슨 선물. 모두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다. 우리 딸아이 네 식구가 모두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잖니. 지들끼리 살 형편이 안 돼서. 몇 달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