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보다 예선이 훨씬 재밌는 전국노래자랑

'전국노래자랑 안성시편 예심' 현장을 가다

등록 2011.05.12 19:57수정 2011.05.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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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복부부 50대 부부가 교복을 일부러 맞춰 입고 출전해서 합격했다.

교복부부 50대 부부가 교복을 일부러 맞춰 입고 출전해서 합격했다. ⓒ 송상호


"오늘 여기는 가수를 뽑는 자리가 아니에요. 흥겹고 신나는 곡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선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난 12일 안성시민회관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예선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의 선포다. 허걱!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조용한 노래를 준비한 사람은 가슴이 철렁한다. '즉석에서 신나는 곡으로 바꿀까, 아니면 그대로 밀고 갈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다가 준비한 곡으로 밀고 나간 사람은 보기 좋게 미역국이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바꾼 노래가 잘 될 리 없으니 또 미역국이다. 아하! 전국노래자랑의 심사 대원칙을 알 것 같다.

예심에선 "땡" 아닌 "수고하셨습니다"로

"합격한 사람은 '합격', 불합격한 사람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할 겁니다. 수고하신 분은 그대로 집에 돌아가시고(청중 웃음), 1차 합격한 분은 남아서 2차 심사 기다리세요."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의 본래 뜻은 아주 좋지만, 여기서는 출연자들에겐 적어도 판사가 피고에게 '사형'이라고 판결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a 슈퍼맨 여고생들 결선을 방불케하는 복장과 퍼포먼스로 이들은 합격했다. 합격하고 모두 넙죽 절하자 관객과 심사위원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

슈퍼맨 여고생들 결선을 방불케하는 복장과 퍼포먼스로 이들은 합격했다. 합격하고 모두 넙죽 절하자 관객과 심사위원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 ⓒ 송상호


본선도 아닌데 출전하러 나온 사람보다 구경하러 온 사람이 몇 배나 많다. 안성시민회관 강당이 차고 넘친다. 출전 선수는 현장접수까지 합쳐 약 350명. 그 중 15명 뽑는 것이다. 경쟁률이 자그마치 23대 1. 335명은 집으로 돌아간다. 현장 분위기가 사뭇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무대에 서서 참가자들이 20여 명 기다린다. 끝나면 바로바로 마이크를 넘긴다. 기량을 뽐낼 틈이 적다. 짧은 시간 안에 심사위원 눈에 쏙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래를 월등하게 잘 부르든지, 의상이 독특하든지, 튀게 춤을 잘 추든지, 사연이 특별하든지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붙고 싶은 욕심이 과한 사람은 노래보다 앞선 설명이 길어진다. 구구절절 하다 보면 십중팔구 "수고하셨습니다"다. 발랄하게 춤추면서 관객을 휘어잡는 사람은 시작하자마자 '합격'이란 소리를 듣고, 관객은 동시에 웃음바다가 된다. 전국노래자랑 예심, 선곡이 생명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쯤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면 필패다.


a 아기 안은 여인 한 주부가 아기를 안고 춤추며 열창했다.

아기 안은 여인 한 주부가 아기를 안고 춤추며 열창했다. ⓒ 송상호


a 아기도 내팽개치고 오로지 합격하겠다는 일념하나로 노래에 열중하는 한 주부 뒤에 앉은 아기 때문에 청중들은 모두 웃었다.

아기도 내팽개치고 오로지 합격하겠다는 일념하나로 노래에 열중하는 한 주부 뒤에 앉은 아기 때문에 청중들은 모두 웃었다. ⓒ 송상호


a 아기 업은 여인 아기를 업은 한 주부가 열창을 하고 있다.

아기 업은 여인 아기를 업은 한 주부가 열창을 하고 있다. ⓒ 송상호


'노래방표 노래'가 제격이다

모두 그동안 노래방에서 갈고 닦은 '노래방표 노래'를 신나게 불러 제친다. 어느 팔순 할아버지는 다른 도시 편을 포함해 벌써 4수 째란다. 그래도 여지없이 '땡'이다. 여고생 5인조 그룹은 슈퍼맨 의상을 하고 '슈퍼맨'이란 노래를 열창한다. '합격'이란 말과 동시에 5명이 약속이나 한 듯 넙죽 절하니 관객들은 또 웃음바다다.

한 남성이 기생 '어우동' 복장으로 나왔다. 심사위원 왈 '노래 징그럽게 못 불러도 의상 봐서 일단 합격'이란다. 관객은 또 웃음바다다. 때론 관중 반응도 폭발적이고, 본인도 신나서 부르지만, 특징도 없고 워낙 노래도 못 부르면 여지없이 "수고하셨습니다"다. 신나게 같이 박수치던 관객은 웃음보가 또 터진다.

합격하려면 무슨 짓인들 하겠다는 각오들이다. 어떤 50대 부부는 학교 교복을 차려입었다. 심사위원은 노래보다도 "교복을 어디에서 구했느냐"고 물었고, "일부러 교복점에서 맞추었다"고 하니 '합격'이다. 5살배기 꼬마와 엄마가 함께 나와, 꼬마는 춤추고 엄마는 노래 부른다. 청중의 반응이 "아유 귀여워"다. 합격이다. 어떤 주부는 아기를 등에 업고, 어떤 주부는 아기 포대기를 앞에 하고, 어떤 주부는 아기를 내팽개치고 춤추며 부른다. 이들의 운명이 갈린다. 한 사람은 합격, 두 사람은 불합격이다.

a 관객 이날 참가자보다 구경꾼이 몇 배나 더 많았다. 모두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결선보다 더 재미있는 예심이었으니까.

관객 이날 참가자보다 구경꾼이 몇 배나 더 많았다. 모두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결선보다 더 재미있는 예심이었으니까. ⓒ 송상호


a 군인 오늘 제대해서 집에도 가지 않고 바로 예심에 참가했다는 예비역 군인. 심사위원들도 사연이 되니까 힘차게 노래불러보라 하고, 겨우 합격시켰다.

군인 오늘 제대해서 집에도 가지 않고 바로 예심에 참가했다는 예비역 군인. 심사위원들도 사연이 되니까 힘차게 노래불러보라 하고, 겨우 합격시켰다. ⓒ 송상호


오늘 제대한 예비역 군인도 출전

따로 대기실은 없다. 무대 위에서 출연자가 노래하고, 뒤편 복도에선 대기자가 노래하는 웃지 못 할 장면도 연출된다. 마이크 소리가 훨씬 커서 그나마 다행이다. 기분 좋은 한 어르신은 약주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이다. 심사가 잠시 중단되기 일쑤다.

대관령에 있는 군부대에서 한 군인이 오늘 제대하고 바로 출전한다. 노래가 시원찮으니 심사위원은 더 신나게 불러보라고 독려한다. 아주 눈에 띄는 사연이니만큼 심사위원은 놓치고 싶지 않다. 어떡하든 합격시키려 애쓴다. 예정대로 합격이다.

한국 사람만 출전하는 건 아니다. 호주사람, 몽골사람, 일본사람, 중국사람, 조선족 동포 등 그야말로 국제적이다. 호주 여성은 자신을 소개하다가 답답하니까 영어로 소개한다. 물론 노래도 영어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수고하셨습니다'란 한국말은 알아듣고 머쓱하게 무대에서 내려간다.

춤부터 한참 추는 어르신을 향해 심사위원이 "어르신 노래 언제하세요"라고 한다. 노래하자마자 '땡'이 되고, 관객은 배꼽을 잡는다. 어떤 어르신은 피리를 아주 수준급으로 부른다. "노래는 안 하세요"라고 하자 "노래는 못 불러요". 바로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청중은 일제히 박수와 함께 웃음폭탄 터져주시고.

a 부부싸움했다는 주부 나오자마자 "어젯밤에 부부싸움을 해서 목소리 상태가 안좋아도 양해하세요"라고 말해 관객은 배꼽잡고 뒤집어 졌다.

부부싸움했다는 주부 나오자마자 "어젯밤에 부부싸움을 해서 목소리 상태가 안좋아도 양해하세요"라고 말해 관객은 배꼽잡고 뒤집어 졌다. ⓒ 송상호


a 엄마와 딸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엄마와 딸. 이들은 딸의 귀여운 춤 때문에라도 점수를 왕창 얻어 합격했다.

엄마와 딸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엄마와 딸. 이들은 딸의 귀여운 춤 때문에라도 점수를 왕창 얻어 합격했다. ⓒ 송상호


취재하던 기자도 어느덧 심사전문가(?) 돼

2% 부족한 사람은 참 애매하다. 청중을 뒤흔드는 '분위기맨'이긴 한데 노래를 지독하게 못 부를 때, 노래는 잘 부르는데 조용하거나 슬픈 노래일 때, 의상도 좋고 춤도 좋은 데 음정과 박자가 오락가락 할 때 등은 잠시나마 심사위원이 장고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심사 결정 시간이 길어진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땡'이다.

두어 시간 넘게 현장을 취재하다 보니 나도 어느 새 심사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마음속으로 '저건 합격'하면 합격이고, '이건 불합격'하면 불합격이다. 심사위원들의 심사기준이 눈에 들어온다.

본선보다 더 다양하고 특이한 의상, 더 다양한 캐릭터의 참가자들, '수고하셨습니다'란 말로 인해 엇갈리는 희비 등이 있는 전국노래자랑 예심이다. 이래서 본선보다 예선이 훨씬 더 재미있을 수밖에.

a 무대 현장 이 모습이 전국노래자랑 예심 무대 모습이다. 참가자들은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끝나고 나면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마이크를 받아 노래한다.

무대 현장 이 모습이 전국노래자랑 예심 무대 모습이다. 참가자들은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끝나고 나면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마이크를 받아 노래한다.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결선은 5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안성 한경대학교에서.


덧붙이는 글 결선은 5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안성 한경대학교에서.
#전국노래자랑 #전국노래자랑 안성시편 #전국노래자랑 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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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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