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출도요!"...이몽룡의 뻥이었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짝패>, 일곱 번째 이야기

등록 2011.05.16 14:05수정 2011.05.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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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어사 출도를 준비하고 있는 천둥(천정명 분).
암행어사 출도를 준비하고 있는 천둥(천정명 분). MBC
만약 대통령이 시·군·구 청사의 비밀서류를 조사할 목적으로, 암행감사관과 전경부대를 파견해서 "암행감사관 등장이요!"라고 확성기로 고함치며 공무원들을 두들겨 패도록 한다면, 어떨까?

물론 악질 단체장이 자료조사를 막기 위해 무장 병력을 동원한다면, 이런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경우는 현실적으로 별로 없을 것이다.

별다른 저항이 예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자료 조사를 목적으로 엄청난 공권력을 투입한다면, 국민들은 분명히 대통령의 공권력 행사가 과도하다고 인식할 것이다.

목표와 수단 사이의 균형이 현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암행감사관이 수사관 몇 명을 데리고 가서 신분증만 제시해도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료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치를 생각하면,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천편일률적인 암행어사 출도 장면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기본적으로 <춘향전>에 근거한 것이다.

어사 이몽룡이 전라도 남원군청 입구에서 부채를 들어 신호를 보내자, 육모 방망이와 채찍을 든 병졸들이 마패를 번쩍 쳐들고는 "암행어사 출도요!"라며 청사에 난입하여 동헌(수령 집무실)을 뒤엎고 일대 수라장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국장급 간부들인 이방·호방·예방·공방이 자빠지고 넘어진다. 이렇게 군청을 한번 휩쓴 다음에 이몽룡은 악질 군수 변학도의 죄상을 묻는다.

최근 MBC 드라마 <짝패>에서 방영된 암행어사 출도 장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패한 전라도 고창현감을 응징하기 위해 가짜어사로 둔갑한 천둥(천정명 분) 역시 이몽룡과 유사한 방식으로 관청을 급습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역사적 실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에 관한 우리의 오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2가지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암행어사 출도(出道)'를 '암행어사 출두(出頭)'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소설·드라마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국어사전에서조차 출두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암행어사 '출두요~'가 아니라 '출도요~'가 맞다


하지만, 사료에서 사용되는 표현은 분명히 '출도'다. 예컨대, 정조 19년 4월 28일자(1795.6.14) <정조실록>에는 정조가 호남암행어사 이희갑에게 "오늘 중으로 (임지로) 다시 내려가 나주에서 출도(出道)한 뒤 따로 조사관을 정해서 자초지종을 상세히 조사하라"라고 명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실록뿐만 아니라 <비변사등록> 같은 사료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변사등록>이란 요즘 말로 하면 국가안전보장회의 업무일지 같은 것이다.

그럼, 출도란 무슨 뜻일까? 이 분야 학자들의 일반적인 정의를 종합하면, 출도는 '암행어사가 신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직무집행을 개시하는 것'이다. 어사의 직무집행이 비밀 상태에서 공개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위의 <정조실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런 개념 정의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정조가 이희갑에게 나주에 다시 내려가라고 한 것은, 그가 풍문을 근거로 나주목사의 공금횡령 사실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좀더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공개조사를 실시하라는 의미에서 '출도'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 '출도'가 오늘날 '출두'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내는 '부조금'이 '부주금'으로 발음되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중국어의 '출도'에는 '활동을 개시한다'란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프랑스어 데뷔(debut)의 영향을 받아 '등장'을 의미하는 '출도'란 단어가 생긴 적이 있다. 이런 용례가 암행어사의 '출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어사의 임무가 전라도·경상도·충청도 같은 도별로 부여되다 보니. '어사가 도(道)에 공개적으로 출현한다'는 의미에서 '출도'란 표현을 썼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동헌. 사진은 강화유수부(강화광역시)의 동헌으로서 고려시대에는 임시 궁궐로 쓰였다. 인천시 강화군 관청리 소재.
조선시대의 동헌. 사진은 강화유수부(강화광역시)의 동헌으로서 고려시대에는 임시 궁궐로 쓰였다. 인천시 강화군 관청리 소재. 김종성

어사 출도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그들이 출도할 때마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요란스럽게 등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관한 한, <춘향전>의 명장면이 한국인들의 머릿속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 사례들이 있었다. 순조 22년 윤3월 16일(1822.5.8) 평안남도 암행어사에 임명된 박내겸이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서수일기>에도 그런 사례가 나온다. "평안남도가 없던 시절에 무슨 평안남도 암행어사냐?"며 의문을 가질지 모르지만, 이것은 그의 임지가 평안도 남부로 국한된다는 의미였다.

<서수일기>에 나오는 출도 장면은 <춘향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거리에서 병졸들이 "암행어사 출도요!"를 외치자 사람들이 놀라 도망가고 집안 조명이 꺼지고 관청 건물 역시 텅 비워졌다고 한다.

암행어사 출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져

하지만, 이런 사례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암행어사 출도 장면의 전형은, 정조 7년 11월 10일(1783.12.3) 정조가 강원도 암행어사 조홍진에 내린 업무지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조는 "길에서 유랑민들을 만나게 되면 즉시 출도하여 조정의 구휼 의지를 밝히고 일일이 위로하라"고 말했다.

식량부족으로 유랑민이 된 사람들을 만나면 즉시 출도하라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신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라는 뜻이었다. 조정에서 조만간 무상급식을 시행할 테니 안심하라는 등의 말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방망이와 채찍을 든 병졸들이 기운 없는 유랑민들을 에워싸고 "암행어사 출도요!"를 외친다면, 그 장면이 얼마나 우스울까.

정조의 지시에서 나타나듯이, 어사 출도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직무수행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굳이 "암행어사 출도요!'를 외치지 않더라도,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하는 행위 자체가 암행어사 출도였다. 대부분의 어사 출도는 이렇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 어사 이외의 관료들도 마패를 이용했다. 사진 출처는 중학교 <국사>.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 어사 이외의 관료들도 마패를 이용했다. 사진 출처는 중학교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어사가 관청에 출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병졸 몇 명을 이끌고 관청에 가서 신분을 밝힌 뒤 자료조사·창고검사·감옥시찰 등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는 정도였다. 임금이 하사한 임명장(봉서)이나 직무 가이드(사목)를 보여주면, 그것으로써 신분 증명이 되는 것이었다. 경찰관이 피의자 집에 가서 "경찰관 등장이요!"라고 고함칠 필요도 없이 그냥 신분증을 보여주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방관의 저항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암행어사 출도요!를 외치며 기선제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악질적인 지방관이라도 임금님이 보낸 특사의 협조요청을 거부하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손오공의 이야기를 다룬 오승은의 <서유기> '부록' 편에는 당태종이 어사(특사)와 함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강주(江州) 지방관 유홍을 응징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주는 지금의 강소성 구강(장쑤성 쥬쟝)을 가리킨다.

본래 뱃사공이었던 유홍은, 장원급제 뒤 강주로 부임하는 진악을 살해하고는 자기가 진짜 지방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강주에 부임했다. 훗날 진악의 아들이 장성하여 이 사실을 당태종에게 알렸고, 당태종은 특사와 함께 군대를 파견해서 <춘향전>의 변 사또를 응징하듯 유홍을 응징했다. 유홍이 워낙 악질적인 인물이라서 황제의 명령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악의 아들이 그 유명한 현장법사다. 물론 모두 픽션이지만.

만약 <서유기>의 유홍처럼 극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전경부대'라도 동원해서 암행어사 출도를 외쳐야 했겠지만, 대부분의 어사 출도는 자료조사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고 보아야 한다.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은 역사적 실제에 가깝다기보다는 공상소설 <서유기>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짝패 #암행어사 #출도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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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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