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5월 13일. 72평생을 농민운동가로 민중운동가로 사셨던 정광훈 의장님이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셨습니다. 지난 3월, 여성농민인 저에게 의장님이 편지를 주셨고 그 답장을 매일 들고만 다니다가 이제야 이렇게 보냅니다. 의장님이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정광훈 의장님께
"소희주, 남성민 농민회원" 이라고 적힌 편지 봉투를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예전에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직업란에 " 농민운동가"라고 적으셨던 의장님의 모습이 생각났어요. 참으로 계급의식이 확실하신 정광훈 의장님 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뜻하지 않은 의장님의 편지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네요. 이제는 꿈만 같은 그 젊은 시절 20대의 전농활동들... 아, 정말 나에게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저는 하우스에서 하루종일 피망 따고, 종일 서서 일하니 다리가 빠져나가는 듯 아프고, 점심먹으러 들어와 보니, 아무것도 없어 라면 2개 들고 하우스 가서 끊여 먹는데, 김치는 또 빠트리고 와서 밍숭맹숭한 라면국물만 먹었습니다.
왜이리 자꾸 멍청해지는지, 원래 멍청했는지, 고치려 해도 잘 안되고. 밤늦게 까지 회의하고 새벽 1시쯤 되어 술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오니, 신랑과 아이 세명이 이쁘게 자고 있네요.
회의 다녀오면 의지가 충천하고, 할 일이 눈에 착착 –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아침에 눈 떠서 또 하루종일 하우스에서 일하다보면, 해야하는 일의 반쯤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립니다.
살아갈수록, 한해 한해를 거듭할수록 농촌에 산다는 것이 팍팍하고 위태롭게 느껴지네요.
이미 짊어진 빚더미에 눌려서 신종노예로 사는 삶이 바로 이런거였구나! 하는 느낌. 항상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은 희주였는데, 의장님 앞에서는 위로 받고 싶은가 봐요.
이런저런 투정도 부리고... 이제는 지역에 계시는 건가요? 혜옥 여사님 좋으시겠어요. 살아보니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이고, 안식처인지 새삼 느껴지는데, 그 좋은 가정을 떠나 월말 부부하시며 서울에서 운동에 온 삶을 바치셨던 정광훈의장님. 오종렬의장님, 홍번의장님, 노수희 의장님 그 뜻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의장님,
참 보고싶고요. 사랑합니다. 제게 나침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한번 놀러가겠다는 약속. 못 지킬지도 모르지만 늘 의장님 생각합니다.
2011년 4. 9 소희주
---------------------------------------------------------
의장님.
한번 놀러가겠다는 약속, 결국 이렇게 지켰네요. 4.28 재보궐선거에 지원활동 가셨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어도 이번피망만 따고 가야지, 이것 줄만 올리고 가야지...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정광훈 의장님이기에, 정말로 딴 사람이 아니라 정광훈 의장님이기에 금방 털고 일어나실 줄로 알았어요. 퇴원하시기 전에 가봐야 하는데... 마음만 급했었는데.
왜 우리는 72세의 할아버지를 항상 청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해남에서 서울이 그 길이 얼마인데 진보연합 상임의장이란 짐을 지우고 각종 회의나 각종 집회에 의장님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까요? 한번도 지쳐하는 모습 본 적이 없으니 피곤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었고 한번도 빼는 모습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오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었고, 젊은 사람들도 하기 싫어하는 각종활동에 언제나 의장님을 앞세웠으니... 왜 우리는 이렇게 철이 없었을까요? 이제 다시 의장님의 그 멋진 연설도 들을 수 없고 알뜰살뜰한 편지도 받을 수 없는데...
"강남에 들어가면 돌아올 줄 모른다는 부르지아들이 무공해 농촌여성들의 삶을 담은 너의 영화(땅의 여자)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겠니? 지금도 오지에서 원시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동물이 있어? 하이테크 테크놀로지 포스트 모던하게 살아가는 천박하고 그 얄팍한 지식인,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이 말이야. 잘난 척 진화해 간 인간들처럼 착각하지만 일회용 유전자 조작품들이야. 니들이 노동자를 생산할 줄 알아? 농민을 생산할 줄 알아? 먹거리를 생산할 줄 알아? 삐까번쩍한 자동차를 만들 줄 알아? 그저 민중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떼강도질하여 사는 퇴화된 패인같은 동물들이 말이야. 거기에 비교하면 여성농민으로서 당당하고 인류의 존엄과 행복한 세상건설을 위해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희주의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니?"
그래요, 의장님.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제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네요. 이렇게도 소중하네요.
의장님의 장례식장. 이런 난장이 없어요. 전국 각지에서 무슨 사람들이 끝도없이 몰려드는지, 10만 농민대회도 이보다 더 축제이진 못하겠네요. 한곳에선 울고 한곳에선 웃고... 노무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도 이보다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정말 허름하고 시커멓고 넥타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 정광훈 의장님과의 추억과 꿈을 자랑하는데 정말 민중의 축제장이네요. 의장님이 보시면 "와~ 제대로 된 난장판이네~" 하셨을거예요.
의장님은 정말 정말 행복 바이러스예요.
2011년 5월 16일 소희주 드려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