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로 가다

[해남, 보길도, 진도 기행 ④] 땅끝 그리고 노화도와 보길도

등록 2011.05.22 14:34수정 2011.05.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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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뷰 포인트에서 만난 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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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선착장 ⓒ 이상기


달마산은 해남을 남남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땅끝으로 가려면 송지면의 서해안쪽 바닷가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송호리로 가야 한다. 송호리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가는 땅끝선착장이 땅 끝에 있는 사자봉(156m)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고개가 갯재로 고갯마루에 서면 다도해의 섬들을 볼 수 있다.


갯재를 넘어 내려가면 완도로 가는 길과 땅끝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희망의 땅끝' 표지석이 있어 잠시 차를 멈춘다. 2002년 12월 국제로타리 클럽에서 만든 것으로, 역설적으로 이곳이 땅의 시작임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선착장 뒤로 안개가 자욱하다. 그렇지만 근경의 피어나는 녹음, 중경의 선착창, 원경의 안개 낀 섬 흑일도와 백일도가 너무 잘 어울린다. 한 마디로 최고의 뷰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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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섬 ⓒ 이상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안개 속에 땅끝 전망대가 보인다. 저곳을 올라가 보아야 하지만 뱃시간을 맞추는 게 우선이라 우리는 선착장으로 간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4시에 산양진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한다. 한 시간쯤 여유가 있으니 땅끝전망대에 올라갔다 올 수 있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안내원이 차를 세워놓고 가되, 3시40분까지는 와야 한다고 말한다. 배가 도착하는 대로 차량이 먼저 탑승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전망대까지 걸어갔다 올 수는 없다. 아내와 나는 별 수 없이 차를 세워놓고 선착장 주변 섬과 방풍림을 구경하기로 한다. 전망대에는 보길도에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착장 옆으로는 맴섬과 형제섬이 있다. 맴섬에는 소나무가 대여섯 그루 자라고 있어 멋이 있다. 2월과 10월에 보는 맴섬 일출이 장관이라고 한다. 형제섬은 해수에 침식된 두 개의 섬으로 형제처럼 마주보고 있다. 그 중 뭍에 가까이 있는 동생섬의 얼굴 윤곽이 더 뚜렷하다.

이들을 지나 방풍림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른다. 방풍림 안에 사각의 정자가 하나 있고, 그 너머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해안을 따라 모노레일 탑승장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갔던 길을 되돌아온다. 이곳 땅끝은 생각보다 마을이 번성하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오는 차도 많고, 배도 1시간 간격으로 노화도의 산양진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땅끝 마을이 번성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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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지도 ⓒ 이상기


번성한 이유가 뭔가 하고 생각해보니 바로 선착장 때문이다.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의 뱃길이 과거에는 완도항과 노화도의 이목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2008년 1월 노화도 북쪽에 산양진항이 완성되면서, 노화도 사람들이 가까운 땅끝 선착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땅끝선착장의 여객과 화물 운송이 많아졌고, 노화도 사람들의 생활권 역시 해남과 목포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해남에서 땅끝까지는 버스가 하루 35회 운행한다. 또 땅끝에서 서울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도 있다. 노화도 가는 배도 여객선이 매시간 운행되고, 중간 중간 조합원을 위한 배도 운행된다. 그러므로 땅끝선착장은 늘 붐빈다. 땅끝마을에는 현재 30개 정도의 숙박업소와 29개의 음식점이 있다. 상가도 10여 개에 이르며, 해양경찰서와 땅끝관광지 사무소도 있다. 그 외 편의시설로 관광안내소, 버스와 선박 매표소, 소공원과 주차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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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로 가는 장보고호 ⓒ 이상기


번성한 땅끝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방파제 쪽으로 가면 등대가 있다. 이곳에는 보길도로 가는 장보고호가 기다리고 있다. 보길도로는 하루 세 번 배가 운행한다. 등대로 가는 방파제에는 또 그물과 어구들이 널려 있다. 등대로 가는데, 바다 쪽에서 벌써 배가 들어온다. 산양진에서 오는 해광 페리다. 시간을 보니 3시40분이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간다.

이곳 땅끝에서 산양진항까지 요금은 승용차가 1만6000원(운전자 1인 포함), 여객 1인 요금이 5700원해서 모두 2만1700원이다. 나와 아내는 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고 기다린다. 내 차가 가장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한다. 차는 후진으로 들어가 세 줄로 세우게 되어 있다. 나는 가장자리로 들어가 배의 후미 끝에 있는 엔진실 바로 옆에 주차한다. 그리고는 2층의 객실로 올라간다.

배안에서 만난 노화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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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만난 노화도 주민들 ⓒ 이상기


차량과 사람들이 모두 타자 4시에 배가 출항한다. 떠나면서 땅끝마을을 돌아보니 뒷산이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 산 위의 땅끝전망대가 안개에 가렸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바다로 나가니 5월의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시원한 편이다. 배가 바다로 나가면서 주변의 시야가 썩 좋지를 않아 나는 다시 객실로 들어간다. 이날이 마침 일요일인지라 뭍에서 노화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남녀 모두 양복, 양장에 옷을 아주 깨끗하게 차려 입었다. 학생이나 어린이들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그 외 우리 같은 관광객이 몇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에게 절편과 약식을 권하는 것이다. 웬 떡인가 해서 물어보니 뭍에서 결혼식이 있어 나왔다 들어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옷을 잘 차려입기도 했지만, 그들의 표정 역시 아주 밝았다. 대화를 나눠 보니 노화도가 아주 부자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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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 이상기


옛날부터 김과 톳 같은 해조류로 돈을 벌었고, 최근에는 전복으로 아주 큰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완도하면 전복인데, 완도 전복의 70%를 이곳 노화도에서 생산한다는 것이다. 또 차를 타고 노화도를 지나며 안 사실이지만, 노화도 한 가운데는 넓은 농토가 있어 옛날부터 쌀을 자급자족했다고 한다. 짧은 대화였지만 노화도 주민들의 대단한 경제력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배안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뱃사람들이 쓰는 달력이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달력에 사리와 조금이 표시되어 있었다. 1물에서 12물까지 간 다음 아침조금이 있다. 그리고 열네 번째 날이 조금이 된다. 그 다음날이 '무쉬'고, 그 다음날부터 1물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리는 6물이나 7물에 오게 된다. 사리와 조금은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큰 때와 작은 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무쉬'는 처음 보는 말이다. 그 의미를 물어보니 조석간만의 차가 커지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말해준다.

보길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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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진항에 도착하는 페리 ⓒ 이상기


배는 40분쯤 달려 우리를 노화도 북쪽 산양진항에 내려준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노화도를 관통해 보길도로 향해 달려간다. 길은 산과 마을을 지나 섬 남쪽의 이목항으로 이어진다. 이목항은 노화읍 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아주 번성하다. 이목항을 이루는 이목 1, 2구에만 약 500가구가 있다. 노화라는 이름은 갯벌에 갈대가 서식하고 갈대꽃이 만발해서 붙었다고 한다.

이목항에서 보길도로 가려면 두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노화도와 장재도 사이에 있는 노화보길 연도교를 지나야 하고, 장재도와 보길도 사이에 있는 보길대교를 건너야 한다. 보길대교를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면소재지가 나온다. 보길도는 1986년 노화읍으로부터 분면되었으며, 청산도와 함께 다도해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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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리 갯돌 해변 ⓒ 이상기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역사문화유적이 많다. 고산 윤선도의 혼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가사문학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빼어난 풍광과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해수욕장이 있다. 예송리, 통리, 중리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보길도 사람들은 예송리를 갯돌, 중리를 솔밭, 통리를 은모래 해변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다도해 청정해역에서 생산되는 전복, 톳, 다시마가 유명하다.

보길도(甫吉島)라는 기록은 세종 때부터 나온다. 1448년(세종 30년) 8월27일 '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해 소나무에 관한 감독 관리에 대해 임금에게 상신한다.' 이곳에 보면 병선을 만드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명을 내리는데 그곳에 영암(靈巖)의 보길도가 들어 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1484년)에도 보길도가 나타난다. 전라도 영암군 산천(山川)조에 보면, '보길도(甫吉島) 주위가 63리다'라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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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원림 ⓒ 이상기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보길도의 어원을 바구리에서 찾고 있다. 바구리는 바구니의 전라도 사투리다. 실제로 보길도는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백도 쪽을 제외하면 바구니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바구리의 옛말이 보구리고, 그것을 한자로 옮기다 보니 보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길도로 들어선 아내와 나는 서둘러 명승 제34호인 윤선도 원림(園林)을 찾아간다. 이곳은 우리에게 고산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산 윤선도(1587~1671)가 병자호란이 끝난 후 은거하며 시문을 벗 삼아 말년을 보내던 곳이다. 부황천을 따라 이루어진 자연풍경에 정원을 만들어 인공미를 가미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원림이다. 이곳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시간이 별로 없다. 부황리 200번지에 있는 세연정으로 들어간 때가 오후 5시다. 이제 1시간 정도 세연정이 있는 원림을 둘러볼 수 있다.
#땅끝마을 #노화도 #산양진항 #보길도 #윤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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