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나 홀로 분향소' 이렇게 탄생했다

2년 전 오늘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 한 조각을 떠올려봅니다

등록 2011.05.23 13:51수정 2011.05.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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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길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추슬러보니 뜻밖에 기억의 조각들이 몇 개 안 된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확실치 않다는 속보가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순간 내 정신은 그저 멍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돼 있던 내 일과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헷갈려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2년 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졌을 때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건만, 그래서 평소 여러 죽음에 의연한 편이었건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는,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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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 하병주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 하병주

나는 이날, 계획했던 일 한 가지는 했다. 젊은 직장인들이 주말을 맞아 보호시설에 있는 노인들을 주기적으로 목욕시킨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당시 개운하게 몸을 씻은 한 영감님이 이런 말을 남겼었다.

 

"정작 가야 할 사람은 우린데, 너무 빨리 가삔네."

 

이날 오후에는 체육행사 등 몇 가지 다른 일이 있었는데, 생략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지인들과 조금 이른 술자리에 앉았다. 어느 술자리보다 무거웠고, 대화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전화로 분위기를 알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기는 좀 그렇다.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분향소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맘 같은 사람이 분명 또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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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준 씨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노 대통령 추모 분향소를 만드는 모습. ⓒ 하병주

임병준 씨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노 대통령 추모 분향소를 만드는 모습. ⓒ 하병주

이 말을 한 이는 임병준씨로, 그이는 분향하고 술 한 잔 따르고픈 이가 꼭 있을 거라며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사천읍내에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는 여고오거리에 다시 나타났다.

 

낡은 자신의 승용차를 빈터에 세우고, 이를 배경으로 해 노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태극기를 갖다 놓았다. 그 아래에는 향로와 촛대를 차렸다. 흰 국화 한 송이까지···. 노 대통령을 위한 '나 홀로 분향소'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사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처음 마음먹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결말을 보는 법이다. 이 분향소도 그랬다. 출발은 한 사람으로 했으나 곧 여러 사람이 붙었다.

 

먼저 힘을 보탠 쪽은 조금 전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다. 제상이 없음에 안타까워한 이는 상을 준비했고, 상이 준비되니 누군가 제물을 차렸다. 곧 조문객들에게 술 한 잔 권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리까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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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준 씨가 마련한 임시분향소에 시민들이 조문하는 모습. ⓒ 하병주

임병준 씨가 마련한 임시분향소에 시민들이 조문하는 모습. ⓒ 하병주

그다음부터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흰 국화다발이 도착했고, 막걸리도 쌓였다. 분향소를 지키는 시민들이 점점 늘었다.

 

이 분향소는 자정을 넘기자 치워졌다. 그리고 일요일인 이튿날 저녁에 이어 서거 사흘째 되던 날 저녁에도 같은 장소에 '나 홀로 분향소'가 차려졌다.

 

그런데 이때쯤 큰 변화가 생겼다.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정식 시민분향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 높아졌고, 이에 따른 사천지역추모위원회가 구성됐다. 형식을 더 갖춘 시민분향소가 그럴 듯하게 차려지면서, '나 홀로 분향소'는 그 역할을 다했다.

 

이 시민분향소는 노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줄곧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많은 시민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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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분향소' 운영 사흘만에 사천지역추모위원회 이름의 공식 분향소가 만들어졌다. 사진은 임씨가 만든 분향소를 옮기고 있는 모습 ⓒ 하병주

'나 홀로 분향소' 운영 사흘만에 사천지역추모위원회 이름의 공식 분향소가 만들어졌다. 사진은 임씨가 만든 분향소를 옮기고 있는 모습 ⓒ 하병주

어떤 이는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받고, 어떤 이는 이들에게 음식을 차려 냈다. 어떤 이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했고, 어떤 이는 현금을, 어떤 이는 물품을 지원했다.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문화예술인은 또 그들대로 참여 속에 힘을 보탰다. 고인이 그렇게 강조했던 '참여'와 '소통'이 그제야 빛났음이다.

 

한 사람의 결심과 실천이 만들어 냈던 '나 홀로 분향소'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떠올리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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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씨의 '나 홀로 분향소'가 사흘만에 정식 분향소로 거듭나는 모습. ⓒ 하병주

임 씨의 '나 홀로 분향소'가 사흘만에 정식 분향소로 거듭나는 모습. ⓒ 하병주

2011.05.23 13:51 ⓒ 2011 OhmyNews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 홀로 분향소 #사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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