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노동에 목숨 끊고, 퇴근 버스에서 죽고
"연봉 7100만원 귀족노조? 밤에 잠좀 자고 싶다"

[현장] '주간 연속 2교대' 요구하며 파업 중인 유성기업

등록 2011.05.24 08:20수정 2011.05.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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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전 충남 아산시 소재 유성기업에서 한 조합원이 공장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한뎃잠을 자고 있다.
24일 오전 충남 아산시 소재 유성기업에서 한 조합원이 공장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한뎃잠을 자고 있다.선대식

24일 오전 1시, 윤호진(가명·47)씨는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약지 첫 마디를 경계로 피부색이 달랐다. 안 그래도 검푸른 피부인데, 마디 위쪽은 더욱 어둡고 짙은 빛을 띠었다. 윤씨는 "예전에 손가락 마디가 잘렸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는 "봉합 수술을 했는데, 손톱 밑쪽은 살이 안 살아나 이식 수술을 했다"며 "현재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고 밝혔다. 윤씨는 "야간에는 몽롱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계에 손가락이 빨려들어갔다"며 "그제야 몽롱함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야간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업무 강도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다. 최근 1년 6개월 새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일하는 350여 명의 조합원 중 5명이 죽었다. "큰 사고 없이 59세에 정년을 맞이하는 이는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정년 후 3~4년 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윤씨는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야간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노동 강도 때문에 평균 수명이 크게 줄어든 것"이라며 "아프지 않고 남들처럼 살게 해달라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왜 파업을 벌이게 됐는지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다.

"1년 6개월 동안 야간 노동으로 5명 죽어"

오전 2시, 공장 내부는 여전히 밝았다. 불이 완전히 꺼진 가운데 경찰력이 투입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노조원들은 공장 바닥에 신문지나 종이 박스를 깔고 누워 한뎃잠을 잤다. 잠들지 못한 노조원도 상당수 있었다. 공장 천장에는 '야간 노동 철폐'라고 쓰인 펼침막이 나붙었다.

조합원 이기호(가명)씨는 "야간 근무하는 사람 중에 몸 성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유성기업 직원들은 보통 주야맞교대 근무를 한다. 격주로 주간조(오전 8시 30분~오후 7시 30분)와 야간조(오후 10시~오전 8시)에서 일한다. 그는 "야간조에서 일하게 되면, 생활 리듬이 깨져 낮에 3~4시간 밖에 못 자기 때문에 멍한 상태에서 일한다"며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마저도 각종 사고 탓에 노동 강도가 그 전보다 약화된 것이다. 지난 1999년 20년 근속한 40대 초반의 이아무개씨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버스에서 돌연사한 이후, 금~토요일 24시간 철야작업이 사라지고, 잔업·특근을 주 24시간 이내로 제한토록 했다. 하지만 사망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홍종인 유성기업 노조 아산지회 노동안전부장의 말이다.

"최근 1년 6개월 동안 5명이 죽었다. 일하다가 몸을 다친 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던 한 조합원은 '야간 작업을 못하겠다'며 목숨을 끊었다. 쉰 살의 한 조합원은 주야맞교대 근무로 인해 급성 폐혈증으로 죽었다. 몸이 약한 상태에서 야간 노동을 하다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다. 나머지 3명도 돌연사 등 야간 노동과 큰 관련이 있다."


 24일 오전 충남 아산시 소재 유성기업 공장 내부에는 '야간 노동 철폐'라고 쓰인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24일 오전 충남 아산시 소재 유성기업 공장 내부에는 '야간 노동 철폐'라고 쓰인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선대식

홍종인 부장은 "밤에 잠을 자겠다는 게 어떻게 부당한 요구냐"고 말했다. 노조는 2011년 1월 1일부터 야간 노동을 철폐하고 주간 연속 2교대(오전 8시~오후4시, 오후4시~12시 근무)와 월급제를 시행하기로 2009년 임금단체협상에서 사측과 합의했다. 노조는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작업 물량이 줄어들 경우, 물량을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교섭에서 사측은 노조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12번의 교섭에서 사측은 어떠한 진전된 수정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18일 노조가 부분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홍종인 부장은 "야간에 수면을 취해야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아직 주간 연속 2교대를 도입하지 않은 현대차 탓에 사측은 노동자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일 오전 용역직원으로 하여금 자동차로 조합원을 덮치게 하는 등 노조 파괴 공작만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봉 7100만 원 귀족노조? 노동 강도, 상상 초월"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현재 지탄의 대상이다. 이들의 파업으로 유성기업이 자동차 엔진의 중요 부품인 피스톤링을 생산하지 못해, 자동차 산업이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를 포함한 재계는 "늦기 전에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연봉 7100만 원을 받은 귀족노조의 불법 파업'이라는 일방적인 주장도 여과 없이 보도된다.

경찰은 이미 23일 여러 차례에 걸쳐 이날 자정까지 노조에 점거를 풀고 공장에서 나오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경고했다. 공장 북쪽에 설치된 펜스는 사측이 동원한 굴착기에 무너졌다. 경찰과 사측 직원들은 24일 새벽까지 공장 정문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대기했다.

유성기업 정문에 남은 사수대 노조원 30여 명은 날이 밝도록 자리를 지켰다. 이들에게서 우리 사회가 지닌 편견에 대한 강한 불신을 느낄 수 있었다. 입사 13년차인 진혁민(가명·38)씨의 지난해 연봉은 5600만 원이다. "7100만 원을 받는 게 아닐 뿐더러,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말했다.

진씨는 "매달 야간조만 3주씩 근무했다, 하루 3시간도 못자고 멍한 상태에서 일을 했고 위궤양과 식도염 등을 앓아 안 아픈 곳이 없다"고 전했다. 이정민(가명)씨는 "야간 근무를 하면서 물량을 맞추느라 서두르기 때문에 불량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주간 연속 2교대를 위한 우리의 파업은 오히려 자동차산업에 경쟁력을 가져다준다"고 강조했다.

박영준 가족대책위원장은 노조 사무실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그는 "법원은 남편들을 치고 도망간 용역 직원을 불구속 수사한다고 한다,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경찰력이 투입되면 우리들이 남편을 지키겠다"고 했다.

24일로 근속 28년을 맞은 최진호(가명)씨는 "특근하며 사흘 연속 잠 안자고 일하면서 자동차산업을 위해 평생을 일했는데, 공권력 투입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유성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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