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단일정당이 왜 정치적 공격 대상인가

[주장] 진보신당 당기위 제소, 부당하다

등록 2011.05.24 14:55수정 2011.05.24 15:15
0
원고료로 응원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가 23일 당기위원회에 제소됐다. 복지국가단일정당을 주장하며 당내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라는 의견그룹을 만들었으며, '복지국가만들기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한 것이 당론 위배활동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부대표는 <오마이뉴스>에 반론 성격의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a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대통령실 김덕룡 국민통합특보, 한나라당 김태호, 김정권 의원 등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대통령실 김덕룡 국민통합특보, 한나라당 김태호, 김정권 의원 등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유성호

# 장면1.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다

 

23일 나는 비 내리는 봉하마을에 있었다. 빗속에 흐느끼는 민심을 보았고, 비를 타고 뭉쳐지는 다짐을 보았다. 2004년 여름부터 2007년 겨울 대선까지, 당시 민주노동당 대변인이었던 나는 노무현 정권에게 참 모진 말을 쏟아내야 했다. 참여정부 실정을 잘 포착하고 날을 제대로 세워야 진보집권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 대선에서 흐릿하게 나마 제시되던 대선후보 단일화 주장에 대해 진보정당의 싹을 자르려는 위험한 태도라고 규정했고, 심지어 '국민의 역량을 믿어라!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 한들 무슨 큰 문제이겠느냐!'는 입장까지 피력했었다. 

 

추도식 내내 불편했다. 부엉이 바위가 보이는 추도식장 한켠에 서서 내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쏟아냈던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불편하고 힘들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권시절 실수와 오류를 하나하나 성찰하고 반성했던 노 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진보정치세력은 여전히 자기주장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아픈 생각이 빗방울처럼 나를 때렸다.

 

# 장면 2. 김포공항에서 당기위원회 제소장을 받다

 

봉하에서 돌아오는 김포공항. 나는 내가 부대표로 있는 진보신당 당기위원회에 제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를 제소한 두 명의 당원은 제소장을 통해 내가 '복지국가단일정당'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라는 당내 의견그룹을 조직했으며 '복지국가만들기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한 것은 당론위배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주장이 왜 당론위배인지 따지기 전에 나는 내가 그런 이유로 당기위원회에 제소됐다는 사실이 슬펐다. 1997년 대선으로부터 13년, 학생운동시절까지 합치면 20년간 진보정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헌신의 결과가 이것인가 아쉬웠다. 

 

그 뒤로 곰곰이 생각해봤다. 당기위에 제소된 것은 단일정당 주장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단일정당을 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진보신당에서는 정치적 공격의 포인트가 된 것이다. 민주당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이 주장은 진보신당에서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인 것인가. 야당이 가치를 중심으로 질서재편을 하자는 주장이 왜 당기위원회에 제소돼야 할 위험한 주장일까. 왜 이것이 정치적 공격과 배척의 대상이 돼야만 하는 것일까.  

 

진보적 자유주의, 즉 개혁적 과제를 분명히 내건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 세력까지 단일정당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나의 주장이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위협하는 것일까. 그것이 진보정치 소멸의 길을 의미하는 것일까. 

 

# 장면3. 진보정치 현장에서 복지국가를 고민하다

 

a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 남소연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 남소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진보정치 세력은 지난 20년간 수많은 노력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의미있는 정치세력을 형성했고 진보적 가치와 의제를 현실적으로 실현할 힘도 없지 않다.

 

이제 진보정치는 20년간 쌓아온 성벽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인데, 마치 물을 끓이는 것이 부엌에 들어간 이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계속 물을 끓이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일부 진보정치세력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복지국가 건설은 시대의 과제이고, 진보의 담론이다. 진보신당은 어느 정치세력보다 적극적으로 복지국가 담론을 마련하고 전파하는데 앞장서왔다. 따라서 일자리 불안, 노후불안, 교육-보육 불안, 주거불안, 건강 및 의료 불안 등 대한민국의 5대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 복지국가 건설을 시대의 화두로 걸고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정당이다. 복지국가 건설이 현 단계 진보의 담론이라고 인정한다면 진보신당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밀어부쳐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현 단계 진보신당이 해야 할 것은 진보적 가치와 의제에 대한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실현해내기 위한 구체적 실천을 해야 한다. 복지국가 실현과 동떨어진 주장으로 실천을 대신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그간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감수했던 '소수파 전략'에서 벗어나 집권을 위한 '다수파 전략'으로 과감하게 전략적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보적 과제에 동의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함께 해야 한다. 민주당이든 국민참여당이든 가치와 과제에 동의한다면 더 이상 그들이 배제와 경쟁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보수야당, 즉 낡은 자유주의 세력에게 잡아먹히고 소멸될 것을 두려워해 담장만 높이 쌓는 것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담장을 허물고 과감하게 넓은 광장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보정당 10년의 활동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현실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진보정치 세력은 스스로 제시해온 시대의 과제도 실현하지 못한 채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출현 뒤 노동자와 서민이 겪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야권의 정치세력은 없다.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라!'고 주장만 해야 하나. 아니면 이것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하나. 어느 것이 진보정치의 책임인가. 

 

'파견법을 폐지하라!'고 외치기만 해야 하나. 아니면 원내 다수파를 구성해 법안 폐지를 현실로 만들어야 하나. 진보정치가 만들고 제시해 온 정책과 대안을 잘 다듬어서 쇼윈도우 안에 진열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나.

 

# 장면 4. 20년 뒤에 결혼하자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듯이 

 

당기위원회에 나를 고발한 제소장을 보면, 지난 12일 <복지국가만들기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나온 내 연설을 문제 삼았다. 그것이 당론 위반혐의라는 것이다. 잠깐 다시 보자.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10년을 기다려 주십시오. 20년 후에 결혼합시다. 이렇게 말하는 건사랑이 아니듯이, 진보정치가 독자적으로 집권할 때까지 노동자 서민들에게 고통을 참고 10년, 20년을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길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도 과감하게 나설테니 당신도 나에게 힘을 주고 나의 손을 잡고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이 제소대상이고 처벌받아야 할 이유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노동자 서민에게 약속했던 세상을 바꾸겠다는 내 주장과 약속은 바꾸지 않겠다. 또 나를 고발한 이들과도 기꺼이 토론하겠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과제를 짚어보고 돌아오는 길에 받아든 제소장은 어쩌면 나와 진보신당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큰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책임 앞에 등 돌리고 도망칠 생각은 없다.

2011.05.24 14:55 ⓒ 2011 OhmyNews
#복지국가 단일정당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딸이 바꿔 놓은 우리 가족의 운명... 이보다 좋을 수 없다
  2. 2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3. 3 카자흐스탄 언론 "김 여사 동안 외모 비결은 성형"
  4. 4 '헌법 84조' 띄운 한동훈, 오판했다
  5. 5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