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 고추밭. 장마가 끝난 뒤 망가지기 시작하였다.
전갑남
그런데 여느 해와 달리 고추밭이 순식간에 망가졌다. 장마가 끝난 뒤, 건강하게 잘 자라던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할 즈음 역병이 들었다. 까닭 없이 고춧대가 시들시들 말라죽었다. 수도 없이 고추는 달렸는데, 고춧대가 죽어나다니! 한번 병든 고추는 아무리 손을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수확량도 떨어지고 상품의 질도 엉망이 되었다. 그간 들인 공이 얼마인데 어떻게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사실 고추 재배는 손이 많이 간다. 고추는 밭이랑에 비닐 피복을 하여 심는다. 비닐을 씌워 재배하면 잡초발생도 억제하고, 수분증발을 막아 가뭄도 덜 타게 된다. 또, 지온을 높여 고추가 잘 자라게 된다.
옮겨 심은 고추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곁순을 질러준다. 그리고선 말짱을 박아 자라는 것을 봐가며 고춧대를 네댓 차례 붙잡아준다. 그래야 비바람에 고춧대가 쓰러지지 않는다. 밭고랑에 자란 풀을 잡는 것도 큰일이다. 제초제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서너 차례 이랑을 일궈줘야 풀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고추에는 진딧물도 끼고, 여타 해충들도 많이 달려든다. 거기다 탄저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들기도 한다. 적기에 소독하여 예방하지 않으면 상품가치를 떨어뜨린다. 작년 우리처럼 역병이 돌기도 하는데, 다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어 농사는 한순간에 망치게 된다.
고추농사는 수확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한여름에 첫물을 따기 시작하면 한 열흘 간격으로 대여섯 번에 나눠 딴다. 따고 난 물고추를 말리는 일도 만만찮다. 태양초를 만들려면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 건조장에 넣어 말리는 것도 깨끗이 씻어 말려야 위생적이다.
그래도 올해 또 도전해본다우리 고추농사는 아마추어일뿐이다. 가꾸는 기쁨과 친지나 이웃들과 나누는 재미로 농사를 짓는다. 아무리 아마추어 농사라도 저절로 크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없다. 정성을 기울여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움이다. 그런데 애쓴 보람도 없이 농사를 그르칠 땐 김이 빠진다.
아내는 작년 역병에 영금 본 게 생각 나 올핸 한사코 풋고추나 따먹을 요량으로 심자고 한다. 200여 주만 가꾸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도 나는 고추모를 600여 주 사왔다. 실패를 거울삼아 잘해볼 연구를 해야지, 뒤로 물러서면 되냐고 아내 입을 막았다.
고추 심던 날, 고추 심을 자리에 구멍을 뚫고 있는데 이웃집 어르신 두 분이 오셨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옆집 아저씨와 새집 할아버지는 일에 쫒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다. 올해도 밭이랑 비닐 씌울 때나 감자 심을 때도 당신들 일처럼 도와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