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빙자해 해군 몸불리기... 못난 군대"

[인터뷰]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단식까지 하며 해군기지 반대하는 까닭

등록 2011.05.31 19:49수정 2011.06.0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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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교 후배인 양윤모 감독 단식 풀게 하겠다며 연계단식 들어갔다가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그는 "제주 해군기지는 안보사업이 아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고교 후배인 양윤모 감독 단식 풀게 하겠다며 연계단식 들어갔다가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그는 "제주 해군기지는 안보사업이 아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 이주빈

고교 후배인 양윤모 감독 단식 풀게 하겠다며 연계단식 들어갔다가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그는 "제주 해군기지는 안보사업이 아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 이주빈

의외였다. 제주도지사까지 지낸 이가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주장하며 단식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히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무관' 출신이다. '안보'라면 깜빡 죽는 보수적 인사일 것 같은 전 제주지사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1995년 지방선거 때 당시 여당인 민자당 후보였던 우근민 현 지사를 물리치고 첫 민선 제주도지사에 올랐던 이다. 이후 축협 중앙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고향 제주에서 '제주생태도시연구소'를 운영하며 친환경 농산물 교육 등을 하고 있다. 신 전 지사는 창조한국당 고문을 맡고 있다.

 

31일 오후 제주시내 한 사무실에서 신 전 지사를 만났다. 인터뷰는 인사와 동시에 시작됐다.

 

신 전 지사는 "제주 해군기지는 안보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미군과의 연계작전 계획도 없고, 해군이 내세우는 기지 운영목적도 해경이 하는 배타적 경제수역 보호여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안보사업이 아닌 해군의 몸 불리기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해군기지 입지를 선정한 김태환 전 지사에게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 입지선정을 했는지 이제라도 진실을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근민 현 지사에게는 "민선지사답게 입지 재선정과 공사 중단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신 전 지사는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도저히 해선 안 될 침묵을 했다"며 "총선 때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야5당으로 구성된 국회진상조사단이 우선 공사 중단을 관철시키고, 정기국회에서 해군기지 건설 관련 예산을 제로베이스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 대안으로 유엔 평화대학, 세계 섬 문화 중심지 등을 거론하며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도를 '숙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위무했다.

 

다음은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와 나눈 일문일답.

 

"해군이 건설하겠다는 강정기지는 미군과의 연계작전 계획 없는 기지"

 

- 제주도지사까지 지낸 보수적인 분이 단식까지 하며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놀랐다.

"내가 보수적이라고? 그것은 만들어진 이미지다. 나의 사회정치적 성향은 '개혁'이다. 그래서 도지사할 때 도민들로부터 환영 못 받았다, 개혁적이라고. 고교 후배인 양윤모 감독이 단식에 들어가자 저 후배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단식을 했다. 양 감독은 '강정바다가 해군기지로 매립되면 난 강정바다에 빠져 죽을 사람'이라고 하더라. 나는 나이도 들고 했으니 단식은 내가 할 테니 너는 풀어라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 강정마을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데 강정주민들과 생명평화결사 도법 스님이 '네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도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손잡고 하자'고 날 설득했다. 그래서 열흘 만에 단식을 풀었다."

 

- 지금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지만 예전엔 찬성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난 원래 해군기지 찬성론자였다. 1994년 정부가 항만기본법을 근거로 제주 화순을 군항으로 결정할 때 동의했던 도지사다. 나는 육사를 다녔다. 국가안보에 필요한 시설이라면 건설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살던 이다. 그래서 왜 당초 계획대로 해군기지 건설을 화순에 하지 않고 강정에 하려고 하나 정도의 문제의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단식 3일 만에 평생 품고 살아온 생각이 바뀌었다. 강정마을에서 단식을 하며 해군기지와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뒤늦게 모든 자료를 검토한 나의 결론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안보사업이 아니다'는 것이다. 나는 일체의 군사기지가 강정마을은 물론 제주도에 어디에 들어서는 것도 반대한다."

 

a  신구범 전 제주지사.

신구범 전 제주지사. ⓒ 이주빈

신구범 전 제주지사. ⓒ 이주빈

- 국방부는 해군기지 건설은 안보사업이라 한다. 아니라는 근거는?

"첫째 해군이 건설하겠다는 강정기지는 미군과의 연계작전 계획이 없는 기지다. 이는 해군이 해군은 공식문서를 통해 '미군과 연계한 작전활동을 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해준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해군이 강정마을 기지에 '구축함을 포함 해군 전투함과 전단을 배치하는 이유'에 있다. 해군은 그 이유를 '제주해역 남방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해양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국제법상 해양경찰 외엔 못 가게 돼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을 해경이 아닌 군대가 간다고? 어로분쟁뿐만 아니라 학술조사를 할 때도 보호는 해군의 몫이 아니라 해경의 몫이다. 이 때문에 해경이 화순항에 해경 전용부두를 짓겠다는 근거로 EEZ 지키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세 번째 이것이 안보사업이 아니라는 결정적 이유는 입지선정에만 5년이 넘게 걸렸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화순에서 시작해서 주민반대로 3년 보내고, 또 위미로 2년 걸리고 강정마을까지 오는 데 5년 걸렸다. 어느 군사기지가 입지선정 하는 데 5년이나 걸리나? 기가 막힌 것은 국책사업=안보사업이라면서 입지선정은 도지사가 했다. 국책사업이면 당연히 국방부가 했어야 한다. 결론은 하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안보사업이 아닌 안보를 빙자해 해군이 군 내부의 자기세력을 키우기 위한 '몸 불리기 사업'이다."

 

- 그래도 해군 측은 사업을 강행하겠다며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국책사업이라면 급하게 할 일이 아니다. 강정마을에서 단식하고 있을 때 찾아온 해군 대령에게 '3년 연기하면 무슨 문제 있나' 물어보니 대령이 대답을 못하더라. <오마이뉴스> 기사 봤는데 군대가 민간과 싸우겠다는 것인가. 정말 못난 군대다. 그리고 공유수면 매립 점용허가는 매립 준공돼야 행사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만약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다면 시장이 철거명령 내리면 된다. 군이 직접 나서는 것은 불법 소지가 있질 않나."

 

- 주민들의 반대는 거센데 도지사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김태환 전 지사는 서둘러 입지선정을 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 입지선정을 했는지 이제라도 진실을 해명해야 한다. 우근민 지사는 민선지사답게 입지 재선정과 공사 중단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 관철시켜야 한다. 이재오 특임장관을 만나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따졌더니 '제주지역 국회의원 입장은 뭐냐'고 되레 묻더라. 차마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전혀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여당 소속이면 정부 눈치나 본다고 이해하지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다. 도저히 해선 안 될 침묵을 했다. 총선 때 대가를 치를 것이다."

 

-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낼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급히 할 일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야5당으로 구성된 국회 진상조사단이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기국회에서 해군기지 예산을 제로베이스 시켜야 한다. 예산이 없으면 공사는 당연히 중단되는 것이다. 아울러 대정부 질의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해군기지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대양 해군정책을 폐기한 만큼 그 정책을 기본으로 시작한 해군기지 건설은 당연히 재검토되어야 하고 공사는 중지해야 한다."

 

"평화가 가장 선명한 대안... 주민들, 이 싸움 반드시 이겼으면 좋겠다"

 

- 그럼 대안은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하면서 실천적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것이 해군기지인가? 생태와 자연경관은 해군기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해군기지를 만들 예정이었던 강정마을에 유엔 평화대학을 세우고, 세계 섬 문화 중심지로 강정을 만들면  해군기지와는 비교 안 되는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또한 평화 그 자체가 가장 선명한 대안이다. 한반도가 제주 해군기지로 국제적 분쟁지역이 되고 미국과 중국의 분쟁 한가운데 설 필요가 없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동북아 전쟁을 자초하는 꼴이다. 4·3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는 이 땅에 전쟁과 희생이 있어선 안 된다."

 

-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군기지 문제가 왜 강정문젠가. 도민 문제다. 왜 제주의 자존이 걸린 문제를 강정주민들에게만 다 맡겨놓고 있나. 도민들에게 해군기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체념과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고 하면 하나도 얘기를 못한다. 이것이 4년 동안 논란이 돼온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우선 도민들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찬반을 떠나 강정을 한번 가봐라. 그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다.

 

강정주민들에게 특별하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은 4년 동안 이 싸움을 하고 있다. 위대한 주민이다. 여러분은 제주도를 '숙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 몽골 백년 지배, 일제 지배, 4·3의 그늘에 숨은 미군의 지배…. 사실 이번도 숨은 미군과의 싸움인지 모른다. 이것이 제주도의 숙명이다. 이 싸움을 통해 해군기지를 막아낸다면 제주도는 이 질긴 '숙명의 굴레'로 벗어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강대국 세력도 제주도를 전쟁의 거점으로 쓸 수 없는 '평화의 섬'을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주민들의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겼으면 좋겠다. 그 길에 함께하겠다."

 

a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대안으로 유엔 평화대학과 세계 섬문화 중심마을 등을 검토해볼만하다고 말하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대안으로 유엔 평화대학과 세계 섬문화 중심마을 등을 검토해볼만하다고 말하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 이주빈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대안으로 유엔 평화대학과 세계 섬문화 중심마을 등을 검토해볼만하다고 말하는 신구범 전 제주지사. ⓒ 이주빈
#제주 해군기지 #신구범 #강정마을 #제주도 #우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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