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어치 고기가 어쩌다가 10만원으로?

카드 영수증 다시 한번 확인 합시다

등록 2011.06.01 11:17수정 2011.06.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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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5년째다. 처음 이메일이 생길때 만해도 메일함이 이렇게 스팸메일과 각종 청구서들로 가득해지리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바빠서 미처 쓰지 못했던 편지를 편하게 쓸 수 있게 됐다는 반가움 때문에 처음 이메일을 만들었을 때는 여동생과 친구들에게 가끔씩 짧은 쪽지 같은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메일함은 온갖 청구서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긴 전화요금이나 전기료 등이 이메일로 날아오니 편리하고 좋은 점이 많긴 하다. 일단 종이를 아낄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집안에 쓰레기를 줄이는데도 한몫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다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는데 며칠 전 이메일로 날아온 카드이용대금 명세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우리 집은 모계좌 하나를 가지고 온 가족이 한 가지 카드를 쓰고 있다. 대략 한 달에 60건 정도의 카드결제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한 계좌를 이용해 모두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사용건수가 많아진 것이다. 한 달에 한번 날아오는 카드 내역서 점검은 내 담당이다. 뭐 담당이라고 해 봤자 영수증을 모아서 카드내역서와 동일한지 대조해 보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안하고 있으니 담당이라고까지 할 수도 없다. 안 하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다.

영수증을 모으는 일도 귀찮은 일이거니와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쓰고 있는 카드인데 일일이 영수증을 챙기는 일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이메일로 날아오는 청구서 사용내역을 클릭해서 한번 죽 훑어보고 거기에 맞는 금액을 통장에 넣어 결제하는 걸로 내 임무 끝이다.

며칠 전, 5월 한 달 동안에 사용한 카드내역을 쭉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주말농장을 다녀오다가 각화동 농산물시장 근처 고기 직매장에서 고기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그 액수가 무려 10만원이었다. 뭐, 마트 같은 곳에서 물건을 구입한 대금이 10만원이었다면 두 번 생각도 안 했겠지만 도대체 고기를 10만원 어치나 산다는 건 내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딸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고기를 사는 일도 두어 달에 한번 정도다.  더구나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일은 많아야 서너 달에 한 번도 안 된다. 구입한 날짜를 보니 5월 첫째 주 일요일이었다.

묵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주말농장에서 상추를 첫 수확한 날이었다.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기직매장이 있는 덕분에 한 5년 정도를 단골삼아 다니는 집이었다. 단골이라고 해봤자 순전히 나 혼자 생각이고 그 고기집 사람들은 특별히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 뭔가 일이 잘못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만 원 어치를 산 기억이 분명한데 10만원으로 둔갑한 이유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엎치락뒤치락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마음이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마침 집에서 쉬는 토요일이라 딸아이들이 있어서 카드대금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우리 집 큰딸은 그건 순전히 영수증 확인 안 한 엄마 잘못이니 잊어버리라고 했다. 정 억울한 생각이 들면 돼지고기 목살을 먹은 게 아니고 한우등심으로 10만 원 어치를 먹은 셈 치라는 거였다.


우리 집 터프가이 둘째딸은 영수증 금액 확인 안 한 엄마보다 애초에 카드단말기에 금액을 잘못 찍은 매장 직원 잘못이니까 당당하게 찾아가서 일을 제대로 바로 잡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카드 사건으로 우리 집의 그날 밤은 꽤나 시끄러웠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너무 머리가 아파서 결국은 까짓, 뭐 9만원 없었던 셈 치지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카드사용명세서를 인쇄해서 차에 싣고 주말농장엘 갔다. 일주일 동안 몰라보게 변해 있는 작물들을 살펴보는데도 다른 날과는 다르게 마음 속이 편하질 않았다.

농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만치 고기 직매장이 보이는데 어쩐 일인지 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나를 정신 나간 여자 취급이라도 하면 그 민망함을 어떻게 하고 고기 집을 나와야 되는지 걱정이 앞섰다.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가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그냥 고기 집 가지 말고 집으로 갈까?"
"뭐, 헛일삼아 물어나 보고 가지 뭐, 어차피 당신이 영수증 확인 안 한 거니까 당신 잘못이 크지만."
"그건 그렇지만 원인 제공은 그 사람들이 했잖아. 애초에 금액을 잘 입력 했으면 이런 일이 왜 생겨?"
"그러니까, 일단 가 보기나 하자고."

차를 주차하고 카드 명세서 복사본을 들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마침 내가 고기를 살 때 카드결제를 했던 젊은 총각이 서 있었다.

"저기요, 제가요."

여차저차 설명을 했다. 설명을 다 들은 총각이 피식 웃더니 한마디 한다.

"저는 어제 일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거의 한달 전 일이잖아요, 이런 일은 영수증 가지고 일주일 안에 오셔야지요."
"영수증도 없고 그때 고기사고 나오면서도 영수증 확인 안 해서 몰랐어요."
"그러니까 일주일 안에 오셔야 한다고요."
"카드 명세서가 어제 날아와서 확인하다가 발견해서 온 건데요."

그곳 매장 책임자인 듯 한 나이든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카드 사용날자를 확인하고 컴퓨터 단말기에서 자료를 뽑아보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카드를 결제하던 날의 매출현황을 쭉 훑어보더니 다행히 10만 원짜리 매출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선선하게 통장계좌번호를 적어달라며 입금해 주겠단다.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매장을 나서려는데 그 여직원이 한 마디 덧붙인다.

"손님, 동네 마트나 다른 고기 집에서 이런 일 있었으면 이렇게 잘 해결하기 힘드셨을 거에요. 다행히 우리 매장은 하루하루 매출을 다 단말기에 기록을 해둬서 확인이 쉬웠던 겁니다."
"아, 예, 정말 고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들한테 엄마 고기값 환불 받게 됐다고 하니까 큰딸아이가 정말? 그러면서 반색을 한다. 거기서 제대로 해결 안 됐으면 우리 엄마 오늘밤  기분이 별로였을 건데 기분이 좋아보여서 다행이라고 둘째딸도 한 마디 거든다.

이튿날 아침, 일요일이라고 늦은 아침을 차리고 있는데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확인해 보니 고기직매장에서 9만원 입금을 했다는 안내 메시지다. 일요일인데도 입금을 해준 그 고기직매장 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와, 정말 돈이 들어왔네."

내가 기분이 좋아 한마디 했더니 남편이 그런다.

"당신 돈 제대로 돌려 받으면서 그렇게 좋아?"

이런 일을 계기로 내게는 새로운 버릇하나가 생겼다. 결제한 금액은 그 자리에서 꼭 확인하기! 그리고 우리 집 카드 사용 영수증은 보관함을 따로 만들어 모아 두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의 하찮은 실수가 바른 습관 하나를 만들어 준 셈이다.
#카드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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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이자 직장인 입니다. 주변의 이야기나 일하면서 느끼는 일들을 써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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