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노주,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보물 제22호 금산사 노주, 실체는 무엇인가?

등록 2011.06.01 14:24수정 2011.06.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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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 김제 금산사 경내에 소재한 보물 제22호 금산사 노주 ⓒ 하주성

▲ 노주 김제 금산사 경내에 소재한 보물 제22호 금산사 노주 ⓒ 하주성

금산사는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600년대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인 776년에 진표율사가 다시 고쳐 세우면서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산사는 고려 935년에는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금산사 경내에는 보물 제22호로 지정된 '노주'가 있다.

 

이 금산사에 있는 석조물은 그 이름을 노주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꼭대기에 놓인 꽃봉오리모양의 조각만 없으면 불상을 얹는 사각형의 대좌처럼도 보인다. 이 석조물은 석등과 대좌, 불탑의 부분을 모아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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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부 마치 장고통처럼 생겨, 석증의 간주석과 같은 모습인 상륜부. 한편이 깨어져 있다 ⓒ 하주성

▲ 상륜부 마치 장고통처럼 생겨, 석증의 간주석과 같은 모습인 상륜부. 한편이 깨어져 있다 ⓒ 하주성

석등롱일까? 노주일까? 아리송한 형태

 

이 노주라 명칭을 붙인 석조물은 대적광전 오른쪽 앞에 있는 석련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노주가 본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노주는 미륵전 정중에 있었는데, 1922년에 대장전의 이전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노주는 <금산사지(金山寺誌)>에는 '석등롱(石燈籠)'이라는 설명되어 있다.

 

이 서책을 보면 노주와 석등롱은 별개의 것이라고 한다. 노주는 불전의 정면 양우에 서 있는 2개의 번간(속칭 갯대)으로써 탑상찰간의 전명이다. 탑상찰간은 '구륜지간'이라 하여 줄여서 윤간이라고도 하고 '노반지주(露盤之柱)'라 하여 노주라고도 약칭하였다. 구륜이란 불탑 꼭대기의 수연 바로 밑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아홉 층의 원륜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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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석 커다란 복련이 새겨진 노주의 상대석 ⓒ 하주성

▲ 상대석 커다란 복련이 새겨진 노주의 상대석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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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석 양편에 우주를 새겨넣은 중대석. 탑의 몸돌과 같은 형태이다 ⓒ 하주성

▲ 중대석 양편에 우주를 새겨넣은 중대석. 탑의 몸돌과 같은 형태이다 ⓒ 하주성

한편 석등롱은 노주의 상대물로써 미륵전의 불상에 공양하던 것이며, 그러한 이유로 속칭 '광명대'라고도 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현재 노주라고 하는 석조물은 제 형태를 완전히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상과 복련의 조각이 일품

 

이 석조물은 땅 위에 지대석인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상·중·하로 나누어 받침돌을 순서대로 얹어놓았다. 지대석은 4각형으로써 하나의 석재에 2단으로 조각되었는데, 아랫단의 1변의 길이는 121㎝이다. 각 단의 높이는 아랫단이 13㎝, 위단이 9㎝ 정도이다. 하대석은 위의 모서리 부분을 약간 둥글게 다듬어 16변의 복연을 조각하였고, 각 면의 수직 부분에는 2개의 안상을 선각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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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석 두개의 안상을 새긴 사이에는 그둥을 새겨넣었다. 위편으로는 앙련을 새겼다. 이런 조각의 형태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하주성

▲ 하대석 두개의 안상을 새긴 사이에는 그둥을 새겨넣었다. 위편으로는 앙련을 새겼다. 이런 조각의 형태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하주성

이런 조각의 형태로 볼 때 이 석조물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다고 하나, 그 여러 가지 조각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석에는 특별한 문양 없이 다만 우주만을 양각해 놓았다. 상대석에는 16변의 커다란 앙연이 조각되어 있다. 1변의 길이는 94㎝이고, 높이는 37㎝이다.

 

제일 위에 얹혀 있는 석조물도 하나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그 형태는 탑의 상륜부에 올리는 보륜과 흡사하다. 이 석조물은 한쪽 부분이 파손되어 있다. 상륜부에 놓인 보주만 없으면 방형의 대좌와 흡사한 형태의 금산사 노주. 과연 그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처음 그 형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는 그 형태가, 오늘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6.01 14:24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주 #금산사 #보물 #고려 초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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