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우 작가대화 도중 잠시 말을 멈추고 홍차의 향기에 흠뻑 젖어 있다
이혜경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여성이 왜 결혼하지 않고 있을까? 나의 질문은 이렇게 상투적이고 구태의연하게 시작되었다.
"네 저도 파업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재촉할 만한 이유가 없는 상태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무조건 싫다는 결혼혐오주의는 아니라서 파업이면서 태업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 결혼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결혼하지 않는 상태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별로 불행하지도 않아요.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보니 결혼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됩니다."
작가는 스스로 '자발적' 파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비자발적' 결혼 파업이란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본인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러 가지 여건상 못하는 경우이죠.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못하는 커플이 많습니다. 사귀는 사람도 있고 결혼도 약속했는데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집값이나,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경우 결혼해서 또 다른 가정을 꾸리는 일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경우는 비자발적 파업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여성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결혼 파업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전에는 결혼이 하나의 통과의례였습니다. 아흔이 다 되어 가시는 저희 할머니께서 지금 태어났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때는 안 하면 안 되니까 했다고 하세요. 이전 세대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시선마저 있었지만, 현재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왜 안 하느냐는 잔소리는 가끔 들어도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상황까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안에 개인적인 행복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파업을 하게 됩니다."
결혼 안에 행복에 대한 정답이 없다- 결혼 안에 행복에 대한 정답이 없다! 이 말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집니다. (웃음)"이전 세대의 여성들은 행복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성년이 되면 해야 할 의무 또는 과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에게는 생존 또는 생활의 조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30대인 여성들은 1970년대의 고도성장의 혜택을 누린 세대입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구호 아래 한두 명의 자녀로 자랐습니다. 시대적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누렸고, 교육의 혜택도 아들과 다름없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어머니 세대들이 딸들이 자신들과는 다르게 살아주기를 원하면서 결혼에 대한 로망보다 사회생활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독립적인 개체로서 살아주기를 은연중에 세뇌시킨 세대이기도 합니다. 현재 30대 여성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등교육을 통해 그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 생존을 위해 결혼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예전처럼 닦달질을 받지도 않습니다. 결혼의 당위성이 떨어지고 동력도 사라졌고 이제 결혼은 선택 사항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생각할 만한 진지한 상대를 만났을 때도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것인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결혼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까? "행복하기에는 결혼 앞에 놓인 바리케이드가 너무 많습니다. 주택 가격의 급등과 양육을 포함한 교육비의 상승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는 비자발적인 싱글을 만들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남성들은 함께 한다가 아니라 도와준다는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출산 후 직업과 가정 경영을 둘 다 제대로 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혼파업에서 벗어난 커플들의 경우는 출산파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여전한 부계혈통 중심의 불평등한 가족제도가 문제입니다. 가정 내에서 딸의 지위는 상승했지만 결혼한 이후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여성은 여전히 불리한 지위에 있습니다.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불리함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여성의 결혼은 '남성 가족에의 편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결혼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상황입니다. 여성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일생이 걸린 선택입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가족 관계 속으로 여성들은 편입하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미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은 존재하지만..."- 이전 세대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편견 및 불이익을 많이 느끼지 않습니까?"많이 느낍니다. 미혼으로 있는 것이 어떤 개인적인 결함이라도 있는 양 또는 사회의 부적응자처럼 몰고 가려는 경향이 아직도 있습니다. 사회적 제도에서도 철저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독신세'를 거두겠다는 말이 나온 것은 우리나라의 미혼에 대한 통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지 사태 파악을 하려고 하지 않고 사회적 소외와 억압을 통해 결혼을 추진하려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구태의 정책입니다.
미혼인 경우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아기를 가지면 산모가 보건소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출산한 경우 미혼모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생명의 존엄성도 이 순간에는 없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고민하면서 저출산이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왜 쉽게 결혼 속으로 진입하지 않는지 정말 이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야기 중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로맨틱 코미디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드라마는 28살의 미혼의 아가씨가 '너가 그러니 결혼도 못하지' 하는 말이 듣기 싫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했다고 말하고 다니다 생기는 많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단순히 코미디물로 지나칠 수도 있지만 거짓말을 해서라도 미혼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인 현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비해 미혼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개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로 남아 있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 이런 사회적인 편견과 불이익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미혼들이 사회나 정부를 향해 이런 불이익을 시정 조치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요구하는 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결혼인 경우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이익단체가 아니다 보니…(웃음) 현재는 결혼파업 중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를 고착화된 영구불변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해야지라거나 언제든 결혼할 수 있지 하며 결혼을 유예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목소리를 높여 미혼자들이 사회에서 기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신의 지분을 요구하려면 전사(戰士)가 되어야 하는데 전사의 삶이 고달프기에 그냥 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그런 전사의 삶을 선택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비혼(非婚) 그룹니다. 이들 중에서 결혼이란 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싫지만 가정은 이루고 싶어 하는 경우가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미혼의 증가는 막지 못할 대세- 집값이 내려가고 양육과 교육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미혼의 문제도 해결될까요?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유럽 선진국을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결혼이란 제도를 기피하는 문화는 하나의 흐름입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양육이나 보육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비자발적인 미혼들의 경우에는 결혼 제도 안으로 편입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혼이라 불리기를 원하는 자발적 미혼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다수의 미혼들이 예전처럼 결혼을 의무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30대 여성은 결혼파업의 첫 세대가 되고, 그들 중 다수는 평생을 홀로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더 높아져 갈 것이고 결혼을 통해 자신들의 이상적인 인생을 즐길 수 없다면 굳이 그 결혼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미혼율 증가는 막지 못할 대세가 될 것이며 우리의 숙제는 이들이 사회적 소수자로 배제되지 않은 채 사회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오후 8시에 시작된 인터뷰가 오후 11시 다방문(카페 이름이 '사루비아 다방'이다)을 닫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고 제안했다. 작가는 동의하였다. 6월 18일 토요일 오후3시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강당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이제 미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