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의대생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한 고대 안암캠퍼스를 찾았다.
홍현진
'출교가 답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15일 오후 고대 백주년기념 앞 계단.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노어노문학과 10학번 학생은 "'창피해', '출교시켜'라는 여론이 많은데 걔네만 나가면 되나"라고 반문했다. 성추행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대 여학생 위원회 유진주씨의 생각도 같았다. 유씨는 이날 기자와 만나 "출교는 과정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학내여론은 성폭행이 문제이기 때문에 출교를 시켜야한다기 보다는 '이상한 애들'이랑 같이 있기 싫기 때문에 낙인을 찍고 추방시키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유씨는 여기에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여학생 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내 반성폭력 운동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고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붙이기도 했다. 제목은 '그 괴물을 키운 것은 우리 모두다'.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범죄자들에 대해 관대하게 대하며, 남자라면 한번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부추긴 것은 누구였습니까. 남성의 성욕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그들의 욕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여성의 탓이라고 암묵적으로 주장해온 것은 누구였습니까. 결국,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진 것은 그들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괴물을 만든 것은 우리 모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변종'으로 취급하며 잘라내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중략)...이것은 우리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입니다." 현재 학교의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고려대 의과대학 관계자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계속 회의 중이고, 아직까지 결정 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사과문 게재 역시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했다.
'고대녀' 김지윤 "출교생은 그렇게 신속하게 징계하더니" 이와 관련, 지난 2006년 4월 '총장실 점거' 보름 만에 '출교' 조치를 당했던 '고대녀' 김지윤 문과대 학생회장은 "당시 시위를 했던 게 4월 5일이고, 징계 발표가 난 게 4월 19일이었다"면서 "그렇게 신속하게 징계했던 것과 비교할 때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관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 했다.
이어 김씨는 "특히, 피해 여학생이 학교를 온전하게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격리조치 조차 하고 있지 않다"면서 "최소한 그 여학생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다 졸업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우리 고대 총학생회장은 "아무래도 출교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출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면서 "현재 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징계위원회가 꾸려진 걸로 알고 있는데 학교에서 상당히 쉬쉬한다"고 전했다.
현재 학교 측에 면담을 신청해놓은 상태라는 조 학생회장은 "아무래도 학생회 측에서 학생을 출교시켜달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학교 측의 징계 수위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2신 : 15일 오후 2시 34분] "'고대'화 하지 말았으면...걔네는 연대 갔어도 성추행 했다"
"출교 조치는 심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 성추행을 하지를 말든가. 당연히 출교시켜야 한다." 15일 오전, 고려대 교정을 돌면서 만난 학생들 십수 명의 반응은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하나같이 강경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황에서 출교 1인 시위를 할 경우 동정여론이 일지 않겠느냐는 박지현씨의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교는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총학생회와 동아리 방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 건물 입구에서 만난 세 명의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11학번인 이들은 오전에 시험 하나를 치고 나왔다고 했다.
기자가 "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자, 셋 중 한 학생이 "당연히 집어넣어야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학생은 "(가해자를) 옹호하기 힘들다"면서도 "바로 출교하는 건 그렇고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정당한 절차를 밟았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학생은 "빨리 징계를 해서 더 이상 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고대라 그러면 택시 아저씨도 성추행 이야기 물어보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학생도 "맞아,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모임 나갔는데 고대라니까 '아, 거기, 의대 성추행'이라기에 민망했다, 우린 안 그러는데"라며 맞장구를 쳤다.
지금 고대는 한창 중간고사 기간이라, 중앙도서관 근처에서 세 명의 11학번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두 학생은 "바로 출교조치 해야 한다고 본다"며 언성을 높였다.
기자가 '학교 측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난도 있다'고 묻자, 이 중 한 학생이 옆구리를 찌르며 "그 루머 이야기 줘라"고 말했다. 가해자 학생의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날 학생들과 만나면서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가해자 학생의 부모가 변호사, 의사라서 학교에서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는 '루머'를 여러 차례들을 수 있었다.
두 학생이 '출교' 이야기를 하자 옆에 있던 또 다른 학생이 "어차피 법적 처벌 받을 건데 학교에서 징계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고대화'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걔네가 이상한 애들인 거예요. 걔네가 연대(연세대) 갔어도 이런 일 일어났을 걸요. 고대라고 하면 '의대', '성추행' 할 때마다 '우리랑은 상관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고대에 선량한 학생들도 많아요." [1신 : 15일 오전 9시 3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