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는 지금도 재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다.
송지혜
민간연구기관인 한국도시연구소의 김윤이 연구원은 "우리나라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해당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매우 낮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재개발사업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평균 34%다. 서울의 경우 재정착률이 더 낮아서, 입주가 마무리된 서울 길음뉴타운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이 17%에 불과하다. 재정착의 의미는 원래 살던 곳에서 거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개발 이후에 되돌아와 사는 것이다. 개발 이후에도 재정착이 가능할 때 비로소 원주민들의 주거권이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김 연구원은 "원주민의 재정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소형 평형과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고, 소득규모별로 주택 임대료를 차등 지원하며, 순환재개발이나 단계적 개발 등을 통해 이주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을 민간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이 사업을 추진하거나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특히 "재정착하고자 하는 거주민이 임시주거대책을 필요로 하는 경우, 사업시행자나 정부가 의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소득수준을 반영하지 않은 임대료 부과체계 역시 저소득층의 재정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공공 임대주택의 임대료는 소득수준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소득이 너무 적어 주거비 부담이 과도한 가구에 대해서는 일정 금액의 임대료를 보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미류 활동가는 재개발을 민간 영역에 맡기는 조합개발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비사업을 통한 대규모 개발이 필요한 곳에 대해서는 공공 재정을 투입해 주거권 실현 차원에서 체계적인 개발을 추진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성실하게 협의하는 등의 절차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 역시 "개발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역의 종합적인 재생이라면, 사업은 공공기관이 직접 추진하거나 공공기관과 주민의 참여를 통해 구성된 조합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정보의 불평등을 막기 위해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개발사업지원 전문가단을 조직해 재개발사업 구역별로 파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세입자나 비동의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익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월세인상률 제한제 등 선진국형 임대차보호 제도 도입 필요최근의 전세난이 악화하면서 월세 방식의 임대차가 급속히 늘고 있다. 월세의 증가는 저소득계층의 생활에 더 큰 압박이 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저소득계층은 수입의 거의 절반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4년간 저소득층은 '자기 집에서 전세, 전세에서 월세로 내려가는 주거 하향 이동'이 뚜렷하다는 게 이 조사의 내용이다.
세종대 김수현 교수(부동산학과)는 "우리나라 임대차제도는 월세에 대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며 "임대차보호법이 기본적으로 전세금 반환에 중점을 둔 제도이기 때문에 월세 인상을 억제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월세를 낮출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누가 누구에게 월세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따라서 전월세 인상률 제한제와 자동계약갱신제 등 선진국형 임대차보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월세인상률 제한제는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를 연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자동계약갱신제는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원할 경우 일정한 사유가 없으면 1회에 한해 반드시 재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집주인이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명시해서 이런 조건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가급적 임대차 계약을 지속시킨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또 본격적인 월세 시대를 앞두고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래 된 다세대, 다가구 주택을 정부가 매입하고 손질해서 임대 용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재개발, 뉴타운 사업은 서민용의 저렴한 주거 공급을 늘리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부채 때문에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를 빨리 정상화시켜 저소득층 지역의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