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구 서이면사무소 여행

도심 속 한옥, 일제시대 들여다보기

등록 2011.06.20 15:09수정 2011.06.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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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이면 사무소 전경 안양 1번가에서 바라보는 구 서이면 사무소 전경입니다. ⓒ 송은정


안양에서 여행을 마치고 안양역과 가까운 안양 1번가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길 한가운데서 한옥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한옥의 건물에는 '서이면사무소'라는 간판이 뚜렷하더군요. 평소, 한옥에 대한 관심 그리고 최근에 들었던 유홍준 선생님의 강의가 겹쳐 저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한옥 안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그러시더군요. 유럽에 가면 가장 부러운 것이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고풍스러운 건물과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저 또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유럽의 곳곳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실제 주민이 그대로 거주하고 있는 몇 백년된 건물들을 보며 전쟁과 일제강점기, 근대화로 무너진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쓸쓸해 하지 않는 바 아니니까요. 이 건물 또한 안양 1번가의 유흥가 속에 외로이 그리고 동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서 문 안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인데요. 아주 깨끗하게 청소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전통스러운 담장을 설치해 놓은 센스에 하나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읍면. 그 중 면사무소는 일제 시대 효율적인 행정을 위한 도구이기도 했답니다. 1917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한 건물을 안양시에서 2000년 10월에 매입, 복원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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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이면 사무소 마당 조명시설 정말 조명을 비추면 한옥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일까? ⓒ 송은정


밤에는 조명을 트는 걸까요? 몇 일전 어느 분이 문화재에 조명을 설치하면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답니다. 여튼, 자그마한 담장 아래 조명 시설이 있답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박한 풍경. 바닥에는 슬리퍼를 놓아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불이며, 옛 다다미며, 아궁이며, 화장실을 보다보면 지금과는 다른 그 모습에 정감이 가기도 하고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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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이면 사무소 실내 모습 일제시대 역사와 사료가 전시된 실내 모습 ⓒ 송은정


작은 박물관으로도 쓰이고 있는 면사무소 안의 모습입니다. 다소 누추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속에서 안양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작은 공간이 아니던가요? 우리에게 옛 역사는 낡고 외롭고 쓸쓸하고 뭔가 어디 지방에 내려가서야 보는 유적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양 구 서이면 사무소는 현대의 공간 속에 옛 공간을 복원해 놓아 보다 가깝게 사람들이 무료로 드나들 수 있게 한 점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면의 우두머리뿐만 아니라 숙직실도 복원해 놓았답니다. 아주 작은 방인데요. 보통 숙직실 학교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요? 기록에 따르면 서이면사무소는 평균 4명의 직원이 근무한 아주 작은 사무소였답니다. 1930년대 이후에는 6-7명의 직원이 행정업무를 담당했다고 하는군요. 아주 낡은 라디오 하나와 큰 가방, 서류함 모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누가 훔쳐 가지나 않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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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실 책상 면장실 책상의 모습 ⓒ 송은정


면장님의 방에 있는 옛 서류들의 모습. 지금도 면장님이 책상에 앉아 헛기침을 하면서 여기 저기 쾅쾅쾅 도장을 찍을 것만 같은 모습들. 옛날 등사기의 모습입니다. 지금과 같이 복사기가 없던 시절에는 직접 잉크를 묻혀 종이를 한 장 한 장 찍어 내었지요. 일제 시대, 한창 우리가 독립을 외치던 즈음에 각종 문서와 방을 붙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등사기 덕분이랍니다.   밖에는 다른 현대식 건물이 있어 차마 복원하지 못하고 이렇게 담장 표시를 그려 놓았네요. 안양의 항일투쟁과 독립투쟁을 한 분들의 기록을 판넬로도 볼 수 있고 일제 시대 신문인 대한매일신보의 구절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간에 굵은 글씨로 휴간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그 당시의 독립 운동의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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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지사 상해 한국소년동맹단원으로 활동하던 사진 ⓒ 송은정


역사 수업시간에 쓰면 좋을 것처럼 보이는 1905년 11월 22일 이등박문이 탄 열차에 돌을 던지는 기록화 안양지역의 독립운동가인 원태우 지사의 그림이라고 합니다(이등박문 =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에게 사살).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이재현 지사의 국가유공증의 모습도 보이네요. 월간지 새싹을 내기도 하고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을 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는 이재천 지사가 상해 한국소년동맹단원으로 활동하던 사진과 1935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던 당시의 사진도 보입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날의 시절과 감옥에서도 앙 다문 입술에서 왠지 결연한 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네요.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문 낭독을 하기도 하고 광복 후 소사공업고등학교, 부천공업전문대를 설립하기도 한 한흥이 지사의 국가유공자증과 1919년 3월 5일 학생독립운동에 참여 후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수감 자료도 보입니다. 두 학교 모두 제가 살고 있는 부천의 학교라 반가운 마음이 그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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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책꽂이와 주판 시원한 한옥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할까? ⓒ 송은정


우리의 토지를 빼앗은 토지조사사업과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을 맞아 우리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와 병사로 쓰기 위한 징용 관련 문서도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국민의 행정을 담당하면서도 일제의 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문서이지요. 성적을 보며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하는 통지표 가운데도 일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한 황국신민서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수익 증가를 위해 담배 경작에 관한 지침서를 내리기도 하고 뽕나무밭 품평회를 열어 2등으로 조선낫과 삽 한자루를 내렸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하네요. 3·1 운동 만세 시위의 기록과 1917년 건물의 상량문의 기록으로 도시의 옛 흔적을 엿보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 가운에 탁자에 앉아 주판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2시 55분 경에 멈춰 버린 옛 시계를 보면서 잠시 시간을 돌려 옛 한국에 있는 시간 또한 어지럽지 않는 좋은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한옥 건물 뒤로 보이는 여관의 모습 속에도 왠지 꿋꿋함을 잃지 않고 있는 안양 구 서이면 사무소의 모습이었습니다.
#안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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