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아쉬움은 남지만...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이상과 목표

등록 2011.06.21 14:18수정 2011.06.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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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새벽녘에 일어나 어머니 댁에 마늘을 뽑으로 갔습니다. 마늘을 다 뽑고 동생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데 "노무현 대통령 입원" 자막이 떠드니 얼마 후 "서거"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텔레비전 앞에 담담히 섰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하략)"라며 약 1분 동안 6문장을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는 "노무현 친구 문재인" 아니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으로 불렸던 노무현 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주군' 죽음을 어떻게 저토록 냉정하고 담담하게 전할 수 있는지 감복했습니다. 모두가 울었지만 그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는 울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상주'로서 울 시간이 없었다고 했고 때때로 울었다고 했습니다.


문 이사장이 지난 16일 <문재인의 운명>을 펴냈습니다. 나온 지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인터넷 서점은 책을 구하기 힘들 정도라니 가히 '대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의 운명>은 첫 부분부터 2년 전 울었고, 울었던 그 충격 속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가 보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모습은 다시 독자들을 분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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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 가교출판

병원에 도착했다. 마중 나와 있는 문용욱 비서관의 표정이 참담했다.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대통령님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특실에 모셔져 있었다. 얼마나 안 좋은 상태인지 눈으로 봐야 했다. 병실에 들어섰다. 눈을 감고 말았다.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 의료진들이 사실대로 알려줬다. 인공심장박동으로 연명하고 있어 신호가 잡히는 것이라 했다. 장치만 제거하면 신호는 바로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문재인의 운명> 18쪽)

이 부분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고, 특히 권양숙 여사가 "무너져 내렸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아려 페이지를 더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 아리고 아린,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2008년 촛불'과 '참여정부 인사들 뒷조사' 그리고 대통령기록물로 정치보복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태광실업 세무조사, 노건평씨 구속, 검찰의 피의사실 공포와 "사생활을 지켜주십시오"라고 호소한 것처럼 언론의 무차별 보도에 이어 결국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대통령 대검출두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문 이사장은 이날을 "치욕스런 날"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언론이 집중 보도했던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을 이렇게 평합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대통령의 절제력이 놀라웠다.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403쪽)


물론 이 전 중수부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언론과 인터뷰에서 "예의를 다했다"며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어 주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거만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같은 책 한 문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권력에 취하면 소신도 잊어버리기 십상인 것이 사람이다. 민정수석실 업무내용 때문에 법조 출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찰을 장악할래야 할 수 없는 비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고자 한 것이 대통령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나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검찰을 장악할 의사가 없다는 대통령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자 한 것이다.(199쪽)


즉,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했던 검찰과 이명박 정부가 생각했던 검찰의 결정적이 차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할 의사가 없어서 문재인을 민정수석에 앉혔습니다. 노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을 비롯한 참여정부는 "검찰 개혁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 곧 '정치검찰로 부터 독립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하려고 했고, 일부 정치검찰은 '충견'으로 자기 역할에 충실했으며 목표는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니 자기는 비록 서 있었지만 앞에 앉아 있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에게 '예의'가 아닌 '거만'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뒷배가 살아있는 권력이니 오만함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자기는 "예의"를 차렸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검찰을 장악할 마음이 없으면서 개혁하지 못했까? 검찰을 장악하는 것과 검찰 개혁은 별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문 이사장은 2005년 10월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인터넷 매체에서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의 조국통일 해방전쟁"이라는 주장을 편 후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되자,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바람에 엄청난 논란이 일었고 결국 "검찰조직과 융화하지 못했고, 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수사권 지휘로 인해 치른 희생이 너무 컸다"(317쪽)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소탐대실'이라고 하나요. 사실 수사지휘권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비일비재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검찰은 충견이 되어 수사지휘를 받은 것은 숨긴 채 천 장관이 정작 공개적으로 수사 지휘를 하자 미친듯이 날뛰었습니다. 법과 정의는 온데간데 없는 추악한 본성을 드려냈고, 그 추악한 본성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이끄는 데 단단히 한몫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무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 육신은 더 이상 우리와 만남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 길을 가면 됩니다. 그 길은 무엇일까요?

<문재인의 운명>에서 눈에 띈 글은 대학 진학 후 독재자 박정희 자행한 '10월유신'을 계기로 시국에 대하 치열한 논쟁을 하고 특히 지난해 말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두려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실을 억누리는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이다"(131쪽)고 한 부분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기 딱 10년 전이었습니다.

문재인 이사장 글을 보면서 문득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출정식 연설이 생각납니다. 노 대통령은 2001년 12월 10일 서울힐튼 호텔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며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고 통탄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지만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노 대통령 명연설로 꼽히는 동영상은 여기가면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지금 들어도 전열이 느껴집니다. (http://webzine.knowhow.or.kr/2th/#/page/27)

이처럼 문재인과 노무현은 생각과 행동이 참 닮았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허위와 진실을 억누르는 것을 폭로하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였던 문재인 이사장이 무조건 잘하지 않았습니다. 대북송금특검과 이라크 파병은 해명과 대통령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아직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대연정은 노 전 대통령도 생전에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밝혔지만 그 선택이 우리 사회 특히 진보개혁진영 분열에 영향을 미친 것에 비해 통렬한 반성이 부족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한미FTA 재협상도 문제지만 그 씨앗은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한미FTA 협상임을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 화두인 반값등록금 역시 이명박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때 더 많이 올랐는데 이런 언급이 없음은 아쉽습니다. 

이런 아쉬움도 있지만 노무현-문재인 두 사람이 던진 민주주의와 정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화두는 우리가 가야 할 사명임은 분명합니다. <문재인의 운명>을 덮으면서 머리에 남은 것 하나는 각성하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는 우리가 가야 할 이상과 목표입니다. 이 목표가 이 땅에 실현되는 첫 관문은 내년 총선과 대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에 실렸습니다.

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가교(가교출판), 2011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문재인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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