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6.22 13:27수정 2011.06.22 13:27
방학이 되자 나는 가분단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미순이한테서 벗어나야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미리 받아 온 교과서를 모두 외우기로 했습니다. 사회과목이며 자연과목이든 국어든 외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산수는 오빠한테 배웠지만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산수과목에만 들어서면 나는 주눅이 들었고 눈을 가늘게 뜨고 안 보이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행동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오빠는 답답하다는 듯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글씨가 안보인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오빠는 내게 산수 가르치기를 포기했습니다.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과목은 외울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 덕분이었을까요?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시험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산수만 빼고 모든 과목이 90점대 이상이 나온 것입니다.
"이학현 수분단..."
나는 갑자기 가분단에서 수분단으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아이들은 경탄의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고 미순이는 나한테 꼼짝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미순이하고 놀지 않았습니다. 수분단 아이들하고 놀기 시작했고 수분단 아이들은 나하고 처지가 달랐습니다. 노는 것도 가분단 아이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때는 서너명의 아이들이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척을 했고 나는 한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너 남자 친구 있어?"
"아니 없어."
"그럼 우리가 소개시켜 줄께"
갑자기 운동장으로 그 아이들이 나를 몰고 나갔습니다. 운동장에는 또 다른 서너명의 남자 아이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전교회장도 끼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멋져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한 아이가 전교회장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너 얘 어때? 예쁘지 사귀어 볼래?"
"에에... 키가 너무 작아."
"그래도 예쁘잖아."
"에에..키가 너무 작아."
그랬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 중에서 제일 작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청소년 오빠 언니들 틈에 끼어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의 일은 하나의 작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너명 중에 한 아이가 전교회장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를 이용해서 그 아이들을 만나려고 한 시도였던 것입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되도록 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은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교실 복도에는 방학숙제 중 여러 가지 잘한 작품(그림, 시 등등)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내 일기도 그 중한 곳에 진열이 되어 있었고 나는 '일기상'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곧 이어 교내 우수상도 받았습니다. 우수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상장, 이 사람은 9월에 실시한 교내 학력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기에 이 상장을 주어 칭찬함.'
오빠는 내가 내민 상장을 보고 몹시 기뻐했고 가족들 모두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학기 학기말 고사에서 나는 놀라운 것을 목격햇습니다. 그때는 시험을 볼 때 가방으로 한 가운데를 가리고 시험을 쳤는데 내 짝이 책을 모두 책상서랍 속에 넣는 것입니다.
"네 가방 올려 놔."
나는 그 아이가 시키는 대로 내 가방을 책상 한 가운데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내 짝이 책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 놓더니 책을 보고 답을 베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수분단 아이들이 컨닝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수분단 쪽은 왔다갔다 할 생각도 없이 앞 부분에서 지휘봉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에 내 짝은 책상에 바짝 엎드린채 너무도 태연하게 책을 보고 계속 답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 아이는 게속 수분단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순간 책을 꺼내놓고 쓸까 하는 고민에 빠졌지만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커닝을 해서 수분단에 앉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일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5학년 말에는 다시 미분단에 배치가 되었고 아이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수군거렸습니다. 내가 커닝을 해서 수분단으로 가게 되었는데 결국 수분단에서 미끄러져 내렸다고 말이지요. 그래도 수분단의 혜리는 내게 친한 친구로 남게 되어 친하게 지냈는데 혜리네 집은 대방동 쪽이어서 학교에서 제법 멀어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혜리가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학현아 너 우리 차비 절약해서 저금하지 않을래?"
나는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 차비를 절약해서 저금을 하면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하고 말입니다 혜리랑 나는 걸어서 혜리네 집으로 놀러 갔습니다. 혜리네 집은 아주부자는 아니지만 우리집 보다는 훨씬 부자처럼 보였습니다. 텔레비전이 있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전화나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귀했습니다. 그런데 그 텔레비전을 옷장 속에 숨겨놓고 옷으로 덮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왜 텔레비전이 옷장 속에 있어?"
"오늘 세금 받으러 오는 날인가봐."
그때는 텔레비전 수신료를 일일이 받으러 다니던 때였고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을 옷장 속에 숨겨 둔 것입니다.
나는 어쨌든 그 아이 집에서 잠깐 놀고 무작정 집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노량진에서 대방동은 걸을만한 거리였지만 노량진에서 오류동은 그래도 꽤 멀고 먼 거리였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오류동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밤이 아주 깊어지고 나는 화물선로에 도착했습니다. 오빠와 언니는 걱정이 되어선지 화물선로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고 나는 잔뜩 혼이 났지만 나는 이상한 성취감에 빠졌습니다. 내 자신을 이겨냈다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 알았습니다. 겉보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수분단 아이들은 컨닝을 하고 비록 텔레비전이 있지만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을 숨겨놓고 보고 있는 있다라는 것도 내 눈에는 올바른 것으로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날 내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하늘 한 가운데를 나르는 새처럼 가볍고 자유로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2011.06.22 13:27 | ⓒ 2011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