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동성애자야"... 미치겠습니다

[레인보우 상담실 ⑪] 직장동료와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려면

등록 2011.06.29 12:04수정 2011.06.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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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안녕하세요. 20대 동성애자입니다. 커밍아웃이 고민돼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다수의 성소수자들이 그렇듯 10대에는 남과 다른 성정체성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20대 중반이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나 자신을 숨기고 사는 게 힘듭니다. 더불어 회사에서 받는 애인과 관계된 질문들이 불편하기도 하고요. "여자친구 있냐", "남자친구 있냐"라는 질문이 첫인사처럼 돼버린 한국 사회에서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에 그런 질문들이 이어지는 거죠. 제 성정체성을 아는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주변 사례들을 들며 "회사에서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부모님에 대한 커밍아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받으실 충격을 생각하면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으면서도 부모님께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확히 알려야 할 것 같기도 해서 고민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 하니 마냥 미룰 수도 없을 것 같고요. 이것저것 고민이 많습니다. 조언부탁드립니다.

4명 게이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영화에 나오는 장병권은 동성 애인을 직장동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소개하고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 시네마 달


직장과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는 것을 고민하시는군요. 커밍아웃은 동성애자의 삶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입니다. 제가 터닝포인트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커밍아웃이 어떤 점에서는 고비일 수도 있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저는 제 주위 친구들과 가족 중 형제에게 커밍아웃 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했고 형제에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지 분들은 아직 모릅니다.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일하기 때문에 직장동료에게 커밍아웃해야 할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없지요. 하지만 친구사이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과 관련하여 많은 이성애자 분들과 만나죠. 명함을 내미는 순간이 커밍아웃이고, 전화 통화 속에 제 활동 단체를 밝히면서 커밍아웃 합니다.

여러 신문과 방송 등에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커밍아웃을 합니다. 또 제가 일하는 직장 주변 사무실, 상가, 식당들, 자주 가는 술집 또는 주로 거래하는 거래처들에서도 저를 게이로 알고 있습니다. 생활 속의 커밍아웃이죠. 혹시라도 부모님께 알려질까 걱정스럽지 않느냐고요? 그런 걱정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고, 부모님께서도 이러한 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다만 이런 것들을 잘 알릴 수 있는 시기를 지금은 기다리고 있어요.

커밍아웃을 하면 자신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자신감, 안도감 그리고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가질 수 있고, 커밍아웃한 사람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수반하는 역할에 대한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운 누군가가 커밍아웃 한다면 많이 당황해하고 혼란을 느낄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방은 커밍아웃한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도 있고요. 또는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 차별 등을 당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줄일 수 있는지를 말씀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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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종로의 기적> 포스터 ⓒ 시네마달


성공하는 커밍아웃을 위해선 다양한 준비가 필요해요. 모두가 같은 상황과 조건에서 커밍아웃 하진 않습니다. 님처럼 주위 친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한 경험이 있는 분도 있지만 아직 자신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받아들이지 못한 분은 자기 자신에게도 커밍아웃 하지 않은 것이죠. 그만큼 저마다 상황도 다르고 조건도 다르지요. 님 같은 경우 직장에서라면 직장 규모나 성격, 분위기에 따라서 다양한 인간관계와 환경이 있기 때문에 직장 내 커밍아웃은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말할 때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업무 과정에서도 신뢰가 잘 쌓인 동료부터 시작합니다.

직장 내에 당신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 하나둘 씩 만들어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직장 내에서 알릴 때에는 님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직장 생활이나 업무에 부정적 영향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합니다.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직장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해요. 혹시라도 커밍아웃으로 인해 부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동법, 국가인권위원회법, 직장 내의 상벌 규정, 단체 협약, 근로 계약서 등과 같은 것들을 미리 확인해 보면 좋습니다. 예상 가능한 불리한 처우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조항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형제, 자매, 부모님은 님처럼 가족 중 한 명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 하면 자신과 직결되는 직접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이 어려울 수 있지만, 아주 큰 지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바로 이들이죠. 우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형제, 자매 중에서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커밍아웃 한 다음 지지자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할 때도 동성애자라는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나 여자/남자를 좋아해" , "나 여자/남자에게 더 끌려" 와 같은 표현이 좋을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 부모 모두 처음 반응은 분노부터 이미 짐작했다는 태도까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강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요. 혹시라도 부모님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죄책감을 가진다면 이는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며 동성애자가 불행하거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부모님은 많이 실망하고 힘들어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에 그 시간을 충분히 드려야 합니다. 그럴수록 동성애자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부모님은 걱정들을 조금씩 덜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커밍아웃을 말리는 경우는 아무래도 이로 인해 직장내에서 부당한 처우을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너무 실망하여 가슴 아픈 시간이 지속되는 상황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는 커밍아웃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나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커밍아웃 이후에 생기는 문제는 그만큼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또 만에 하나 커밍아웃으로 인해 동성애자 차별이 생긴다면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우리 사회의 부당함을 알려야 하죠. 여러 번의 커밍아웃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용기와 인내심이라면 어떠한 장애물도 넘어설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커밍아웃으로 인생에 다가오는 수많은 장애물들과 맞설 수 있는 용기와 긍정의 힘을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커밍아웃은 힘들더라도 꾸준하게 지속해야 할 우리 동성애자들의 삶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입니다. 함께 커밍아웃 해요. ^^

[상담가]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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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07 펴낸 <커밍아웃 가이드>의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가이드는 http://chingusai.net/bbs/zboard.php?id=library&no=26 에서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07 펴낸 <커밍아웃 가이드>의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가이드는 http://chingusai.net/bbs/zboard.php?id=library&no=26 에서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게이 #레즈비언 #동성애자 #커밍아웃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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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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