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효자리 '묘엄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보물 제379호 묘엄사지 삼층석탑을 돌아보다

등록 2011.06.23 10:38수정 2011.06.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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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묘엄사지에 서 있는 보물 제379호 삼층석탑 ⓒ 하주성

▲ 삼층석탑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묘엄사지에 서 있는 보물 제379호 삼층석탑 ⓒ 하주성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447-1번지 옛 절터에는, 고려시대의 석탑 한 기가 남아있다. 이 석탑은 2단의 기단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으로, 기단은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해 상, 하로 구분되어 있다. 현재 보물 제379호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晉州 妙嚴寺址 三層石塔)'으로 불린다. 이 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이다.

 

지난 6월 11일에 찾아간 진주 수곡면 효자리. 마을을 돌다가 만난 묘엄사지 삼층석탑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높이 4.6m의 삼층석탑이다. 이 탑이 세워져 있는 곳을 '탑골'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이 탑 외에 또 다른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 주위에는 주춧돌과 석주, 부도의 덮개돌 등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발견이 된 것으로 보아, 당시 묘엄사는 상당히 번성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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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석탑의 위 부분.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삼층 덮개석도 한편이 떨어져 나갔다 ⓒ 하주성

▲ 석탑 석탑의 위 부분.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삼층 덮개석도 한편이 떨어져 나갔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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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돌 몸돌과 덮개석은 각각 한 장의 돌로 조성을 하였으며, 몸돌에는 양 우주가 새겨져 있다 ⓒ 하주성

▲ 몸돌 몸돌과 덮개석은 각각 한 장의 돌로 조성을 하였으며, 몸돌에는 양 우주가 새겨져 있다 ⓒ 하주성

 

묘엄사 '명' 기와편이 발견돼 

 

현재 삼층석탑이 서 있는 주변정비를 하던 2008년에, 이곳에서 묘엄사 '명' 기와편이 발견이 되어 이곳의 절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탑 맞은편에도 불상과 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이탑 형식의 큰 절이었을 것이다. 이 묘엄사지 삼층석탑의 위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폭이 넓은 양우주와 탱주의 기둥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기단의 덮개돌을 얹었으며, 한가운데 2단의 고임을 깎아내 탑신을 받치게 하였다.

 

상층기단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양우주와 가운데 탱주가 조각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층마다 각각 한 장의 돌로 조성을 하였는데, 1층의 몸돌은 지나치게 높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어 균형과 안정감을 잃었다. 몸돌인 탑신에는 기단에서와 같이 양편에 폭이 넓은 모서리기둥인 우주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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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기단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다 ⓒ 하주성

▲ 상층기단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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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기단 하층기단도 여러 장의 석재를 이용하였으며 위로 괴임을 조각하였다 ⓒ 하주성

▲ 하층기단 하층기단도 여러 장의 석재를 이용하였으며 위로 괴임을 조각하였다 ⓒ 하주성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석탑

 

이 묘엄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탑에는 1층의 서쪽 면에 창살이 있는 두 짝의 문 모양과 고리가 얇게 새겨져 있을 뿐 아무런 조각도 없다. 지붕돌인 옥개석은 넓이에 비하여 두꺼운 편이며, 밑면받침은 1층과 2층이 4단씩이고 3층은 3단으로 줄어든다.

 

지붕돌은 두껍고 낙수면의 경사가 급해 보이며, 처마의 선은 위아래가 모두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 끝에서 위로 완만하게 솟아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상하의 균형을 잃어 거친 느낌이 들며, 각 부의 짜임새나 제작수법도 둔화되었다. 하지만 탑의 형태로 보아 제작시기 등을 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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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 묘엄사지 주변 정비를 마치고 한 옆에 모아놓은 석물들 ⓒ 하주성

▲ 석물 묘엄사지 주변 정비를 마치고 한 옆에 모아놓은 석물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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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돌 아마도 석등의 받침인 듯하다. ⓒ 하주성

▲ 받침돌 아마도 석등의 받침인 듯하다. ⓒ 하주성

 

나뒹굴고 있는 보물 안내 표지석

 

탑을 돌아보고 난 뒤 곁에 쌓여진 석물을 돌아본다. 석등의 받침석과 간주석, 덮개석과 같은 석재들이 놓여있다. 그 상태로 보아 화사석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삼층석탑 옆에 세워둘만한 훌륭한 석조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뒤편에 대리석으로 조형이 된 석재 하나가 보인다. 이런 곳에 웬 대리석 석재인가 싶어 다가가보니 글이 새겨져 있다.

 

글씨는 '보물 제379호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이라고 한문으로 적혀있다. 석탑 앞에 세웠던 안내표지석이다. 이곳을 정비했다고 적혀있는데, 정작 안내를 하는 표지석은 그대로 뽑아내 석물들과 함께 한 옆에 쌓아놓았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물론 안내판이 있으니 보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인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내표지석이 한 옆에 나뒹굴고 있다는 것이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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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주석 석등의 간주석으로 보인다 ⓒ 하주성

▲ 간주석 석등의 간주석으로 보인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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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한 옆에 쌓아놓은 석재 안에 누워있는 보물 안내표지석 ⓒ 하주성

▲ 표지석 한 옆에 쌓아놓은 석재 안에 누워있는 보물 안내표지석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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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묘엄사지 삼층석탑은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하주성

▲ 삼층석탑 묘엄사지 삼층석탑은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하주성

 

묘엄사가 언제 세워진 절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이 탑이 서 있는 인근에서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고, 돌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아 아마도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삼층석탑 한 기와 몇 개의 석물만 그 자리에 남겨놓고 있는 묘엄사. 과연 언제 적 누구에 의해 창건이 되었으며, 언제 사라진 것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답답한 일을 당할 때마다 한숨만 터져 나온다.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의 훼손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묘엄사지 #삼층석탑 #보물 #진주 #고려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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