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19세기가 낳은 서양미술의 혁명

'2011 오르세미술관전'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9월 25일까지

등록 2011.06.26 14:33수정 2011.06.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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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코즈발(Guy Cogeval) 오르세미술관 관장, 그는 오르세 소장품 중 수준급 작품이 이렇게 많이 서울에 와 있는 것에 대해 놀랐다고 인사말을 했다 ⓒ 김형순


2011 오르세미술관-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전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이번 3번째 오르세미술관 서울전이 그 이전보다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풍성한 건 지금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의 반이 공사 중이라 반출하는데 유리해서다.

이번 오르세미술관 서울전은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등 19세기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앵그르, 쿠르베, 밀레, 고흐, 모네, 고갱, 르누아르, 세잔, 앙리 루소, 보나르의 회화 73점 등 데생 24점 사진 37점 총 134점을 선보인다.


산업화의 정점에서 서양미술 황금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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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1830-1903) I '루앙항구 생 세베' 캔버스에 유채 65.5×92cm 1896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화와 민주화와 함께 서양미술도 황금기를 맞는다. 이런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인상주의가 등장하여 형태보다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채를 중시하며  거기서 받은 인상을 강렬한 원색과 빠른 붓질로 그려나갔다. 피사로의 '루앙항구'를 통해 우리는 당대사회를 인상주의 화풍은 어떻게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사건은 통일독일을 이루려는 비스마르크와 프랑스의 나폴레옹3세와 정책충돌로 터진 '프랑스-프로이센(보불)전쟁'과 1871년 세계 최초로 노동자치정부를 세우려 정부군과 맞서 싸운 '파리코뮌'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그 당시가 얼마나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인상주의, 아카데미즘 대변하는 살롱전과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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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로 카바넬(A. Cabanel 1823-1889) I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에 유채 130×225cm 1863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19세기는 이렇게 격변기였지만 사회의 모든 분야가 다 급속하게 변화한 건 아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그리스로마의 신화나 성서 속 인물로 가득한 아카데미즘이 주류였다. 설사 여신의 누드화를 그린다고 해도 신화 속 인물로 포장해 그 논란을 피한다.


위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바로 그런 신고전주의에 충실한 작품이다. 비너스 위에 천사처럼 보이는 건 5명의 에로스로 이 작품의 현란함과 화려함을 드높인다. 당시 나폴레옹 3세가 이 작품에 반해 직접 구입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데미즘을 대변하는 이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는 떨어진다.

당시 파리의 살롱전(le Salon de Paris)에는 아카데미즘 경향의 작품만 선호했다. 반면 비주류인 인상주의작품은 외면당했다. 이를 개혁하려 한 사람이 바로 마네다. 후에 카바넬의 '비너스'와 마네의 '올랭피아(아래)'는 고전과 현대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현실의 여인'이 '삼미신'의 모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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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 1841-1916) I '양상을 쓴 세여인(일명 삼미신)' 캔버스에 유채 139×89cm 1880년경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19세기에 들어와서 미술의 관심은 신화적인데서 일상적인 것으로 돌아간다. 브라크몽가 그린 '삼미신(三美神)'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 속 주인공 삼미신은 현실 속의 여인들이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고대신화 속에 나오는 이상화된 삼미신만 그렸다.

인상주의화가들은 이렇게 가까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재발견함으로써 모더니티를 획득한다. 당시에는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런 그림에 손가락질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미의식은 이렇듯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진다.

근대화 속 부를 축적한 중상류층의 여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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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1840-1926) I 보트들, 아르장퇴유의 보트경기 캔버스에 유채 60×100cm 1874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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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곤잘레스(1849-1883) I '극장 이탈리안의 특석' 캔버스에 유채 98×130cm 1875-1878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이렇게 근대화로 통해 부를 축적한 프랑스사회는 중상류층이 생기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여가문화를 즐긴다. 교통의 발달로 그림배경도 정원만 아니라 경마장, 야유회, 보트장, 유원지, 야외연주장, 극장 등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개인의 취향도 다양해진다.

에바 곤잘레스의 '극장 이탈리아의 특석'은 그녀의 스승 마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명암대비가 뚜렷하다. 가운데 여주인공이 망원경을 자랑하듯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오페라극장에서 이런 특석에 앉아보는 것이 꿈이었나보다. 같은 제목의 르누아르, 코테, 보나르 작품도 이번 전에서 볼 수 있다.

선진화의 그늘 속 농민과 노동자의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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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트 메소니에(E. Meissonier 1815-1891) I '파리점령(1870-1871)' 캔버스에 유채 53.5×70.5cm 1884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반면 당시 중상류층이 여가를 즐기는 동안 농민은 가난했고 노동자는 고단했고 하층민의 삶은 비참했다. 밀레는 전례 없이 농민을 그림의 주체로 그렸고, 쿠르베는 당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노동자를 그려 넣었다. 변혁파인 쿠르베는 파리코뮌에 가담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신세가 되었고 스위스로 망명해 결국 거기서 숨을 거두고 만다.

'파리점령'은 바로 파리코뮌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연상되기도 한다. 가운데 '파리여신'은 사자가죽 망토를 쓰고 프랑스삼색기를 꽉 붙잡고 폭풍의 잔해와 그 뒤로 기근에 찌든 시위대 앞에 우뚝 서 있다. 당시 극도로 지친 시위대의 처참한 상황을 리얼하게 그렸다.

혼돈과 악몽 그 자체인 전쟁의 비참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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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I '전쟁(La Guerre)' 캔버스에 유채 114×195cm 1894년경.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이번엔 그림의 분위기를 바꿔 앙리 루소의 그림을 감상해보자. 그는 독학으로 화가가 된 세관원출신의 인물이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원초적 세계를 그려 프랑스미술사에 큰 획을 남긴다. 이번 전을 위해 내한한 기 코즈발 오르세미술관 관장과 카롤린 마티외 수석학예실장의 그에 대한 존경심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의 화풍은 원래 유쾌하고 기발하고 천진난만하다. 그래서 사람들 입가에 웃음 짓게 한다. 그렇다고 전쟁의 주제까지 그렇지는 않다. 그는 혼돈과 악몽의 전투장면을 사실적 묘사보단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런 기법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강렬한 주관을 표출하는 진정한 화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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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1853-1890) I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캔버스에 유채 72.5×92cm 1889-1889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흐의 '별밤'을 보자. 같은 제목의 고흐 작품 세 점은 파리, 뉴욕, 암스테르담에 있다. 이번에 서울에 온 건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것이다. 올 6월부터 9월까지 '별밤'은 서울에서만 볼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니 흥분된다.

고흐는 살아생전 작품이 딱 한 점 팔렸다. 이는 그가 관객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처절하리만치 자신의 주관적 감정과 경향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는 뜻이 된다. 과거 왕이나 귀족에 지원을 받아 그리는 화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진정한 화가였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북두칠성이 보이는 고흐의 '별밤'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건 궁핍 속에서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정신분열이 올 정도로 사투를 벌리며 색채에 미쳐 그렸기 때문이리라. 이런 절대 환희의 순간이 화폭에 옮겨져 오늘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의 색채를 선물한 것 아닌가.

20세기 추상과 입체주의를 연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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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1839-1906) I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47.5×57cm 1890-95년경 ⓒ Photo RMN/Musee d'Orsay-GNC media 2011 ⓒ 오르세미술관


끝으로 20세기 근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의 작품을 보자. 그는 사물을 원뿔, 원통, 원구로 단순화시켜 보려 했다. 이것이 나중에 입체주의를 낳는다. 자연을 쉼 없이 관찰하면서 그 표면에 숨겨져 있는 내적 생명력을 찾아가며 그만의 독자성을 개척했다.

시골 아저씨 같은 세잔은 검소했고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구도자적이었다. 위 작품은 고향에서 보는 카드 놀이하는 사람을 그린 것인데, 유럽에서는 이런 그림이 17세기부터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세잔의 것은 다르다. 입체적 효과를 내는 중량감이 확 느껴진다.

추사도 진정한 창조자는 법을 지키면서도 그 법을 깨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세잔도 마찬가지다. 그는 니콜라 푸생이 추구한 고전주의를 좋아하면서도 새로운 미술을 열기 위해 그런 법칙도 깨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마지막 고전주의이자 최초의 현대화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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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열리는 '근현대미술의 창시자'라고 적힌 마네전 도록 표지. 마네의 '올랭피아(1863) ⓒ 김형순


이번 오르세미술관 서울전에 마네의 작품이 오지 않은 이유는 현대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근현대미술의 창시자'라는 제목으로 마네특별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전에 취재 갔다가 우연히 올리비에 시마(Olivier Simmat) 오르세미술관 국제협력국장을 만나 '마네전' 도록을 받게 되었다.

도록 제목이 '근현대미술의 창시자 마네'다. 근현대미술의 창시자가 세잔이나 마네냐 하는 논쟁이 있어 그를 만난 김에 근현대미술의 창시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시마 국제협력국장은 현대미술의 창시자는 마네라고 대답한다. 같은 질문을 옆에 있던 카롤린 마티외 오르세미술관 수석학예실장에게도 했더니 그녀는 세잔이란다.

각각 이유를 물었더니 시마씨는 마네가 역시 회화에 모더니티를 제일 먼저 적용시켰기 때문이라 하고, 마티외 씨는 세잔이 결국 20세기 미술을 열었다고 말한다.

마네는 파리상류층 출신으로 보들레르처럼 댄디였고, 모던한 감각과 시적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9세기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에 응답하는 예술을 하여 근현대서양미술의 분수령이 되었다.

반면 세잔은 법대를 중단한 시골사람으로 철학자를 연상시킨다. 미술의 본질을 선, 점, 원, 기둥 등으로 봤다. 원근법을 해체하고 다초점을 발견한다. 그는 20세기 미술의 두 거장 피카소와 마티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하여간 두 사람은 근현대서양미술의 선구자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 www.orsay2011.co.kr 입장료: 어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초등학생 8,000원. 오디오비디오 애플리케이션도 출시(유료) 전시문의: 02)325-1077,1078 전시기간: 2011년 9월25일까지 휴관일 3일(6월27일, 7월25일, 8월29일)


덧붙이는 글 전시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 www.orsay2011.co.kr 입장료: 어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초등학생 8,000원. 오디오비디오 애플리케이션도 출시(유료) 전시문의: 02)325-1077,1078 전시기간: 2011년 9월25일까지 휴관일 3일(6월27일, 7월25일, 8월29일)
#오르세미술관 서울전 #인상주의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전 #폴 세잔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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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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