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후배교사가 교무실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슨 중대 발표라도 하는 양 사뭇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교사들 중 97%가 문제 학생을 보면 일부러 피한다고 여론조사에서 나왔대요."
나는 책상에 앉아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가 등 너머로 들은 97%라는 수치가 전혀 믿기지 않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에이, 설마? 97%는 너무했다."
"여론조사에서 그렇게 나왔다니까요? 한 번 인터넷 검색해 봐요. 제 말이 틀린 지."
후배교사는 정색하며 자기주장을 꺾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럴 것 없이 여기 선생님들 열 분 정도 계시니까 한 번 물어보자고. 우선 자네부터 말해봐. 자네는 수업 중에 문제 학생을 보면 피하나?"
"저야 안 피하죠."
"나도 그래. 나도 수업 중에 문제 학생을 보면 당연히 지도할 거야. 열 명 중에 벌써 두 명이야. 그럼 다른 선생님들은 어떨까?"
"그거야 뭐."
"아니, 보라고. 저기 이 선생님이나 유 선생님이 그럴 분이야? 문제 학생을 보면 피할 분이냐고?"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죠. 그래도 여론조사에는 그렇게 나왔다는데…"
"그럼 우리 학교만 그렇고 다른 학교는 안 그럴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삼천 명 이상 여론조사를 한 것 같던데 10명보다는 4천명을 여론 조사한 결과가 더 신빙성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거짓말로 응답을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럴까? 나도 수업 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보면 피하고 싶을 때가 있어. 실제로 피한 적도 있었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이럴 경우에 여론조사에 어떻게 응답해야겠어? 당연히 '피하지 않는다.' 라고 해야 맞는 거잖아. 피하지 않을 때가 월등하게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한 번이라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 사람은 '피한다.'라고 응답하기가 쉬운 거지.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의 함정이야. 그런 함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
그날 퇴근길이었다. 교무실에서 나와 학교교정을 걸어가는데 작년에 담임을 맡은 원희(가명)가 나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원희구나. 너희들 기말고사 끝나면 취업 나간다며? 넌 안 가니?"
"전 진학하려고요."
"그래. 미술 쪽으로 갈 거야?"
"아니요. 치위생과로 가기로 했어요."
"아, 그래? 그래도 그림은 계속 그릴 거지?"
"그럼요. 취업해서 돈 벌면 그림 공부도 계속 할 거예요."
"그래? 그래야지."
원희는 그림을 잘 그렸다. 나는 작년에도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시를 써주곤 했는데 시 뒷면에는 원희가 그려준 그림과 학급아이들의 생일축하 글들을 함께 배치했다. 나는 매번 원희가 그려준 그림을 보고 그 빛나는 아이디어에 놀라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생일시를 써주기 위해 그림을 부탁할 때마다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순순히 그림을 그려주는 아이의 태도에 감동을 받곤 했었다.
작년 가을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원희였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하기도 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정공법으로 일을 해결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고 원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지금 어디야?"
"예. 친구 만나러 시내 나왔어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응. 네가 며칠 전에 선생님한데 일촌 신청했잖아. 응답만 해놓고 바빠서 못 들어갔다가 오늘 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어."
"예. 그러셨어요?"
"그런데 너 우리 반 수업하는 장면 찍어서 동영상 올려놨더구나."
"아, 그거…보셨어요? 지운다는 것이 깜빡했네요."
"그 동영상 보고 좀 놀랐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그거 그냥 장난으로 찍은 거예요."
"장난이었다고? 네가 찍은 동영상을 볼 때도 화는 나긴 했지만 충격까진 아니었어. 그런데 그 아래 써놓은 글 너 기억하니?"
"…"
"너 선생님을 악마라고 표현했던데 그것도 장난이었니? 아니면 내가 너에게 악마라는 말을 들을 만한 짓을 거야?"
"죄송해요."
"아니, 죄송한 게 아니고 왜 악마라고 했는지 말해보란 말이야. 나를 인중인격자라고도 했던데 그럴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런 표현을 썼을 거 아니야."
"솔직히…"
"그래 솔직히"
"선생님 처음에는 저희들에게 잘 해주셔서 우리 반 애들이 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화도 자주 내시고 그래서…."
"뭐? 화를 냈다고 나를 악마라고 했단 말이야? 넌 그런 경우에 악마란 말을 사용하니? 그리고 내가 왜 화를 낸 건데? 그거 다 너희들 잘못 아니야?"
"그런 점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저희들에게 못해주셨으면 그런 생각 안 들었을 텐데 잘해주시다가 그러시니까…"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희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처음부터 못해주란 말이야? 나도 알아. 너희들 아직 철이 없어서 잘 대해주면 올라타려고 한다는 거. 그거 다 알면서도 잘 해준 거야. 당연히 그래야하니까. 그런데 이제는 철이 들겠지 하는데 계속 떠들고 너희들만 생각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낼 수 있어? 그리고 다른 애들이 그랬다면 덜 충격적이었을 거야. 넌 누구보다도 선생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어.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어."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그날 나는 아이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준 뒤에 전화를 끊기 전에 이번 일을 머리에서 지우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게 되면서 결국 그 약속을 어긴 셈이 되어 마음이 여간 찜찜하지 않다. 내가 오늘 아침 포털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한 다음 기사가 유죄다.
"본지가 한국교총에 의뢰해 지난 21~22일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 30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교사의 96.9%가 '수업 중 문제 학생을 발견해도 일부러 회피하고 무시한다'고 답했다. 강원도의 고교 교사는 '때리면 신고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학생 앞에서 내가 왜 교사가 됐나하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조선일보)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교권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분명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정당한 이유로 도전하고, 더러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도전하기도 한다. 정당한 도전은 마땅히 받아들이면 될 일이고, 터무니없는 경우는 바르게 지도하면 될 일이다.
나는 요즘 웬만해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낼만한 상황에서도 애써 여유를 갖거나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법으로 어려운 상황을 그럭저럭 잘 해쳐나간다. 요즘 내가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희가 내게 준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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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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