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유해가 뿌려진 뉴욕 허드슨 강변 팰리사이드 인터스테이트 파크웨이 언덕에서 그의 명복을 빌다. 왼쪽 그의 장례를 주도한 이용호 목사, 오른쪽 기자.
이도영
이 소설에는 나와 친구, 그리고 이도영씨의 가슴 아픈 가족사와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한 친구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펼쳐지고 있다. 강원산골 외딴 아래채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썼다.
이 작품 <제비꽃>이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겨우 열흘이지만, 이즈음은 중견출판사도 퍽퍽 힘없이 도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십 년 전통의 원주 시내 한복판 서점(동아서관)마저 매장으로 쓰던 1, 2, 3층을 모두 병원과 이동통신대리점에게 내어 주고, 정작 서점은 지하로 옮겨가는 세태이기에 나는 마치 옛날 노부부가 늘그막에 주책없이 늦둥이를 본 심정이다.
불황이라 해도 다른 산업은 그런대로 해마다 조금씩 성장했지만 오직 출판계만이 몇 년째 뒷걸음질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에 인문이 죽어가고 있다. 인문이 죽은 세상은 '마사지 걸'을 지껄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하고, 마침내는 폭력과 독재가 난무하고 부정부패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 올 것이다.
참고로 <제비꽃> 책머리 말을 덧붙이면서 한 주책없는 늙은 아비의 하소연을 줄인다.
그의 빚을 갚는 헌사"젊은이들이 취직을 못해 아우성이에요. 이제 그만 후배를 위해 퇴직하세요."어느 날 저녁 아내가 불쑥 한마디 뱉고는 이튿날 강원도로 훌쩍 떠났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몸으로 바르게 가르치는 훈장이라기보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나 챙기는 샐러리맨이었다. 보충수업비, 야간자율학습지도비, 어쩌다 학부모가 떨어트린 촌지, 그런 가욋돈을 지갑 속에 꼬불치고는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나누거나 고스톱을 즐겼던 땟국에 찌든 교사였다.언제부터 아내는 그런 남편을 마냥 바라보고 살기에 진력이 났나 보다. 아내는 강원도 산골 외딴마을에 다 쓰러져가는 폐가 직전의 집을 거저 얻고는 둥지를 틀었다. 그래도 나는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고, 한 학기를 더 버티다가 마침내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는 앞으로 글이나 써야겠다며 아내가 마련한 둥지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글이 동네강아지 이름으로 그리 쉽게 쓰이겠는가.두어 해 동안 반거들충이 시골 농사꾼으로 지냈다. 산골 하루 일과 가운데 아침저녁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군불을 때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마른 장작들이 '딱 딱'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그리운 얼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어느 겨울날 장작 불꽃더미 속에서 불쑥 장지수가 나타났다. 나는 불타고 있는 장작들을 방고래 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는 아래채 내 글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그의 영혼이 나를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