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난 반댈세

[서평] 열심히 사는 청춘들의 진짜 이야기 <레알 청춘>

등록 2011.07.03 17:22수정 2011.07.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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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레알 청춘> 표지

<레알 청춘> 표지 ⓒ 삶이보이는창

<레알청춘>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한국장학재단 박아무개에게 전화가 왔다. 나를 '고객님'이라 지칭하는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가 불편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국가에 천여 만 원의 빚을 지고 사랑하는 '고객님'이 되었다. 되는 일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일이고 글이고 마감이고 나발이고 다 '쌩'까고 홍대 나가서 '죠스떡볶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름이다. 요새 대책 없이 먹다보니 몸이 좀 무겁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비키니 입고 동네 약수터라도 거닐어야 한다는 마음에 떡볶이도 포기해 버렸다. 여전히, 슬픈 마음은 감출 길 없다. 게다가 창문 열고 에어컨 틀었다고 팀장님께 혼도 났다. 에이! 되는 거 하나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스물여섯의 여름이 이럴 줄은 몰랐다.


원래부터 청춘이 낭만과 자유로만 가득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하면서 이렇게 돼 버린 것인지 알 길 없다. 기록되지 않은 청춘의 실제는 현재 청춘을 살고 있는 내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입사한 지 3년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 회사에서 막내다. 다들 "내가 네 나이 정도만 됐어도!"라며 나의 '청춘'을 과히 평가한다. 그러나 열몇 살 당시 20대의 자유를 갈망했던 나는 어느새 30대의 안정감을 바라고 있다. "저는 제 나이가 부담스러운데요. 눈 감았다 뜨면 얼른 서른이 돼서 통장에 잔고도 좀 있고 차도 있고, 전세일지라도 내 집이 있고,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으면 좋겠는데요"라고 말하고 싶다.

'가여운' 청춘을 말하는 수많은 책들... 지겨웠다

청년유니온에서 <레알청춘>을 냈다는 소식을 일찍이 들은 터였다. 사실 반갑지 않았다. '88만원세대론' 이후 20대를 타깃으로 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다(20대를 타깃으로 했으나 20대들은 책을 사지 않았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냐'고 묻는 이가 있었고, '아프니까 청춘'이라 답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요새 젊은 것들'에게 '딴지'를 거는 이도 있었고,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설명'해준다는 이 시대의 멘토도 있었다.

심성이 오질나게 꼬여버린 나는 세대론이 결국 출판계 콘텐츠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해졌다.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지겨웠다. 뭐여 이게.


2010년 나는 단아무개, 박아무개와 함께 <요새 젊은것들>이란 인터뷰집을 낸 적 있다. 기본적인 모토는 스펙경쟁, 학점싸움 하지 않아도 저 하고 싶은 일 하며 잘 사는 '요새 젊은 것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것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책이 나오고 블로그에 하나둘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데, 대개 "먹고살 만한 놈들이니까 가능하다", "서울에 사니까 가능하다", "서울대, 연대, 고대, 그 외 서울에 있는 사립대를 나왔으니 가능한 일 아니었나"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제야 무턱대고 대책 없이 "꼴리는 대로 살자!"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느꼈다. 중요한 지점을 우리가 짚지 못하고 넘어갔단 죄책감마저 들 정도였다.


사실 나는 소위 88만원세대의 문제라 일컬어지는 모든 현상들이 거론되는 것이 불편하다. 청년들이 대학등록금에, 학자금대출에, 신용불량에, 취업난에 '고통'받고 '오열'한다는 과잉된 상태의 단어들로 언급되는 것이 오금 저리게 싫다(그래서 조금 더 '세련'되게 상황을 책에 담아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문제를 누군가 계속 건드리는 것이 숨이 막혔다. 나름 서울에서 대학물도 먹고, 대학 신문사에서 청년실업문제니, 대학 등록금 문제를 진절머리가 날 만큼 다뤘다.

대학을 벗어나 사회에 나와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내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활동가들입네 하는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세상은 조금 더 바뀔 것임을 믿지 않게 됐다. 사회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겠는데, 곧 등록금문제와 학자금대출 문제, 청년실업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믿는 활동가들에 대한 증오도 있었다.

이것은 한때 청년유니온에 대한 이유 없는 조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갚아야 할 학자금대출과 그 이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고 나는 한 달에 몇 번 한국장학재단 박아무개에게 "사랑하는 고객님" 소리를 들어가며 통화를 해야 했다.

내게 결핍된 것들을, 내 가난을 수치와 서류로 확인하면 할수록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책을 내고, 앞서 설명한 비판을 받고, 다시 그런 비슷한 류의 책들이 출판되고, 기특한 것들, 발랄하고 예의바른 20대들에게 희망을 갖는다는 둥의 서평들을 읽으며 그 자괴감과, 증오와, 비관과 뭐 등등의 어려운 감정들이 쌓여가던 참이었다.

a  6월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청년유니온 주최로 열린' 반값등록금 시행을 촉구하는 등록금 빚쟁이 기자회견'.

6월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청년유니온 주최로 열린' 반값등록금 시행을 촉구하는 등록금 빚쟁이 기자회견'. ⓒ 유성호


고통스럽고 외롭지만 우리, 치졸해지지 말자

<레알 청춘>을 읽고 잠시 먹먹함을 느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이런 책이 팔릴 거라고 생각하나?"라고 건방떨었다. 물론 많이 팔려서 청년유니온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만, 실은 '이런 책'은 출간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은 생각만큼 신나지 않고 퍽 고되고 외로운 기간임을 기록한 것이다. 300페이지가 채되지 않는 작은 책은 새삼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는 말을 곱씹게 한다.

종합격투기선수가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고, 선생님이 되고 싶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고, 한편으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부당한 대우받지 않으며 살고 싶고, 생활이 가능한 돈을 받으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함마저 '젊어 고생'이라 굳이 치부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젊어 고생'하신 분들에게 묻고 싶다.

열정과 체력, 건강과 젊음을 실컷 빨아먹고 서른만 넘으면, 결혼만 하면, 애만 낳으면 갖다 버리고 알아서 살라고 하는 것이 일부러 사서 고생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고생 안 할란다. 내 주변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살지 말자고 말해보고 싶다. <레알 청춘>은 말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야 누구나 고통스럽고, 외롭고, 치열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밥 굶으며 살지 말자고, 치졸해지지 말자고.

출근길 버스 안에서 책을 읽고, 이 느낌을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버스에서는 마침 "요즘 청년들이 조건 보고 돈 보느라 중소기업에 취직을 안 한대요. 그래서 중소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더군요!", "어머 정말 요즘 젊은 사람들 문제 있네요!"라며 주거니 받거니 북치고 장구치는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가 거짓말처럼 흘러나왔다(극적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이런 말이 나왔다).

정말 모든 '어른'들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느리게 변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멋부리지 않고 기록한 이들의 이야기가 출간된 것이다. 제목이 <레알 청춘>이라서 우리 회사 어르신들은 "레알 마드리드 이야기냐?"라고 물어보셨지만 뭐 어쩄거나.

<레알 청춘>을 '레알' 응원한다. 덧붙여 그동안 청년유니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거리낌 없이 내보였던 나를 그대들에게 레알 사과한다. 우리, 레알 열심히 살아보자. 열심히, 잘 살다보면 세상 좋아질 날 오겠지. 그게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밝히는 유일한 증거 아니겠나.

덧붙이는 글 | <레알 청춘>(청년유니온 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11년, 13000원)


덧붙이는 글 <레알 청춘>(청년유니온 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11년, 13000원)

레알 청춘 -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의 고군분투 생존기

청년유니온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11


#레알청춘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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