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4위인 한국 경제, 금융은 왜 이렇게 후질까?

[김상조 교수의 종횡무진 한국경제 ⑦] 금융의 쟁점과 현안 분석

등록 2011.07.03 17:21수정 2011.07.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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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종횡무진 한국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종횡무진 한국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세계적으로 금융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 다른 하나는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입니다. 두 가지 제도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한국 금융의 특징은 이 두 가지 제도의 단점만 나타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는 세계 14위  권이지만 잘 나가는 금융회사는 전무하지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6월 14일과 21일, 두 번에 걸쳐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 - 금융의 쟁점과 현안 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김 교수는 "한국 금융 실태를 보면 시장 중심이냐 은행 중심이냐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조차도 사치"라며 "한국은 시장 중심제도와 은행 중심제도의 단점만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참담한 현실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금산분리 실현 방법이 지분 소유의 규제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며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는 보다 효율적인 규제를 위해 다양한 금융법상의 규제와 소송체계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근 벌어진 저축은행권 부실 사태에 대해 "저축은행이 서민 금융을 담당하는 제 역할을 찾게 하려면 충분한 공적자금을 통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느린 구조조정, 불안정한 자금공급 = 한국식 금융?

각국의 금융제도는 그 나라의 경제발전 단계 및 경로 등의 경제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김 교수는 "금융제도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시장 중심 금융제도와 은행 중심 금융제도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사회에 있는 희소한 가치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금융입니다.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는 일회성 거래가 특징입니다. 거래를 할 때마다 거래조건에 따라 거래 상대방을 변경하는 데 제약이 없지요. 반면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는 장기 지속적 거래관계가 특징입니다. 그래서 두 금융제도는 명확한 장점과 단점을 가집니다. 시장 중심 금융제도 아래에 있는 금융기관은 자금 공급은 안정적이지 않지만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한 반면, 은행 중심 금융제도에서는 자금 공급은 안정적이지만 신속한 구조조정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두 금융제도의 성격일 뿐, 어느 쪽이 우월한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 중심의 금융제도는 주로 영·미권에서, 은행 중심 금융제도는 독일이나 일본의 은행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형태에 가까울까. 김 교수는 "두 가지 제도의 단점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금융제도는 은행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제도는 절대 시장 중심이 아닙니다. 두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두 금융 시스템의 단점만 나타나는 금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거래회전율이 경제위기 이후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점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이 자본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지만 자본 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정보생산 및 감시 기능을 주도해야 할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위상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김 교수는 금융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당장의 즉각적인 문제해결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간에 뭔가 만들겠다는 사고방식으로 금융에 접근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발생 한다"며 "전통형 제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은행 중심형 제도가 더 좋은데 한국도 중소기업과 은행이 장기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맺어가는 방향의 금융 발전을 기획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이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고민해야"

a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이날 김 교수는 금산분리의 세계적인 추세와 한국에서의 실현 방법에 대해서도 강의했다.

김 교수는 "세계 100대 은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개별 산업자본의 수는 총 292개 인데 이 중 산업자본 지분이 전혀 없는 은행이 32개이고 산업자본 전체의 지분율을 모두 합쳐도 10% 미만"이라며 "법률적으로도 관행적으로 금산분리 원칙은 확립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금산분리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사례에서 이색적인 것은 지분율 소유규제가 없다고 해서 산업자본이 반드시 주요 금융회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지분율 소유 규제가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맞지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다"라며 "금융 선진국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 지분율을 규제하는 방법 이외에도 금산분리를 실현하는 수단이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란 말 그대로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심사해서 자격미달인 경우 대주주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이 심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은 은행뿐이고 증권이나 보험회사 쪽에는 아직 일부만 도입되어있습니다. 한국의 재벌 회장들이 전과가 많은데 증권이나 보험회사 쪽에 은행 수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도입하면 한국 재벌들은 금융회사를 다 팔아야합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소유규제가 특히 선호되는 이유는 다른 수단이 효과적으로 발동할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며 "자산운용규제 등의 금융법상의 규제나 일반 회사법상의 규율체계, 이에 대한 소송체계까지 넓게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산업과 금융을 분리하는 방법으로서 가장 효율적인 규제가 무엇인지 넓은 시야에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보험회사가 다른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보험회사의 대주주와 주요거래를 하려면 30일 전에 감독당국에게 신고하게끔 되어있지요. 법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하지 말라는 애깁니다. 증권쪽은 이러한 규제도 전혀 없습니다. 감독당국이 직접 나서지 않지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밀착해서 누군가의 권익을 침해하고 해를 끼치는 사안이 발생하면 바로 회사가 망할 정도의 소송이 발생하게 되지요. 미국은 법률과 정부의 감독, 민간 소송을 적절히 배합해서 금산분리에 제한을 거는 셈입니다."

"저축은행권 부실, 공적자금 투입 필요해"

최근 한국 금융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저축은행업권의 총체적인 부실사태다. 지난 2월 17일, 제2 금융권에서 최고의 여신율을 자랑하던 부산저축은행이 영업 정지되며 총 3만143명의 일반 예금자들에게 2882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난 부실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법대출, 불법운영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은 직접 차명으로 특수목적법인 120개를 운영하며 약 7조 원의 전체여신 중 5조 원 이상을 불법으로 끌어다 썼다. 금융사가 고객들이 예금한 돈을 끌어 건설사 노릇을 한 셈이다. 여기에는 전·현직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의 비리가 깊숙히 연루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김 교수는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 감독체계의 총체적 부실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며 감독당국을 비판하는 한편 "전반적인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금융의 체질을 다잡아야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붕괴 상태에 이른 저축은행업권의 부실 문제가 단지 정부의 감독 실패 때문만은 아니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1998년 말, 저축은행의 숫자는 211개였습니다. 그 중 작년 말까지 살아남은 저축은행은 105개 사입니다. 이는 전체적으로 저축은행업권이 부실하고 수익기반이 취약한 구조라는 얘깁니다. 서민 금융을 주무로 하는 저축은행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근본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시장 원리에 입각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부실한 저축은행을 인수한 민간 업체들은 고위험, 고수익 방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민간에 부실을 떠넘기는 구조조정 방식이 오늘날 저축은행을 부동산 금융기관으로 변질시킨 셈이지요."

김 교수는 최근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 역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지주회사의 부실 저축은행 인수나 은행들이 출자한 민간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부실 PF대출채권 처리 등의 '부실 떠넘기기'식 방안으로는 또 다시 저축은행의 부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2012년에 두 개의 큰 선거가 있어서 저축은행 부실을 정부 주도로 해결하기란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겠지만 지금은 필요한 곳에 충분한 양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발생한 좋은 예가 7년을 끌어온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문제와 최근의 저축은행 대란"이라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다. 
#김상조 #금융 #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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