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파업에 직장폐쇄...꿈에도 생각못해"

[인터뷰] 조계사에서 단식농성 중인 이구영 유성기업 노조 영동지회장

등록 2011.07.06 14:15수정 2011.07.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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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2일 경찰과의 충돌 이후 '수배' 중인 유성기업 노조간부 2명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6월 22일 경찰과의 충돌 이후 '수배' 중인 유성기업 노조간부 2명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홍현진

파란 천막 안은 뜨거웠다. 스티로폼 위로 은박 돗자리까지 깔았지만 달궈질 대로 달궈진 땅의 열기는 피할 수 없었다. 유성기업 사측의 직장폐쇄 철회와 노조 조합원 전원 일괄복귀를 요구하며 조계사 한 켠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7일째 되는 지난 5일. 마침 공양시간이라 천막 안으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천막 밖은 목탁 두드리는 소리, 불경 외는 소리, 신도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 등으로 분주했다.

이구영(41) 유성기업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 영동지회장과 엄기한(43) 아산부지회장. 두 노조간부는 현재 수배 중이다. 지난 6월 22일 노조가 공장 정문 앞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은 이후, 경찰 측은 이 영동지회장과 엄 아산부지회장을 비롯한 유성기업 노조 관계자 총 5명의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에 나섰다.

지난 6월 30일에는 앞서 법원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 2명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여 이들을 구속했다. 지난달 22일 충돌로 발생한 경찰 측 부상자는 100여 명. 경찰은 수사를 통해 드러난 불법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노사를 불문하고 끝까지 추적해 단호하게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두 노조간부가 아산공장을 떠나 지난 6월 29일 조계사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은 '피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유성기업 사태를 보다 중앙에서 알리기 위해서기도 하다. 이 지회장은 "어제도 밤 늦게까지 인터뷰를 하고, 연대하러 온 시민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배고프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견딜 만하다"고 대답했던 이 지회장은 조금 있다가 "먹고 싶은 게 많다, 누워 있으면 음식 생각이 난다"며 웃었다. 엄 지회장은 연신 물을 들이켰다.

지난 5월 18일 유성기업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한 지 50여 일. 이날 천막 농성장에는 이 지회장과 엄 부지회장 외에도 이들을 '수행'하는 두 명의 조합원이 함께 있었다. 사복경찰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도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단다.

"'진정성'없다고 일괄복귀 안 돼? 노조 없애려는 것" 

 이구영 유성기업 노조 영동지회장.
이구영 유성기업 노조 영동지회장. 홍현진
현재 사측은 충청남도 노·사·민·정 협의회에도 불참하는 등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앞서 5월 24일 공권력 투입 이후 노조는 지난 6월 14일 일괄업무복귀를 선언했지만, 사측은 "진정성이 의심 된다"며 개별복귀를 요구했다.


이 지회장에 따르면, 57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현장에 개별복귀한 조합원은 200여 명. 나머지 조합원들은 유성기업 충남 아산 공장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거점으로 농성 중이다.

이 지회장은 "경찰이 집회를 아예 불허하는 등 회사 근처에 아예 못 가게 한다"면서 "목사님들, 신부님들 오셔서 기도회할 때만 정문 앞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측은 공장 정문 앞을 컨테이너 박스로 막아 놓았다.


이 지회장은 사측이 일괄복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노조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회사는 진정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또 다시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하고, 물량을 못 맞추게 할 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재점거하려고 했다면 5월 24일 공권력 들어왔을 때 더 강하게 저항했을 거다. 우리는 이 공장에 다시 돌아와 일해야 했기 때문에, 점거농성하면서도 (공장) 쓸고 닦고 다 했고 경찰들이 헬기로 떨어뜨린 전단지까지 다 청소했다. 그런데 '재점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괄복귀 안 된다'?. 결국은 선별복귀 시켜서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데리고 일하고 노동조합은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

노조의 요구는 (공장)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생산하면서 주간 연속 2교대 문제나 이런 것들은 대화로 풀어가자는 거다. 주간 연속 2교대, 회사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를 하고 회사가 주장하는 하는 징계문제, 단체협약에 준해서 할 수도 있다 이거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1994년 입사했다는 엄기한 아산 부지회장은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공장에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투쟁을 열심히 했겠나. 회사에서는 뻔히 보이겠지. 노조 없애고 비정규직 뽑으면 더 이익이니까."

"2시간 파업했다고 직장폐쇄 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해"

 유성기업 사측의 직장폐쇄 철회와 노조 조합원 전원 일괄복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엄기한 아산부지회장(좌)과 이구영 영동지회장(우).
유성기업 사측의 직장폐쇄 철회와 노조 조합원 전원 일괄복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엄기한 아산부지회장(좌)과 이구영 영동지회장(우).홍현진


유성기업에서 일한 지 16년이 됐다는 이구영 지회장의 연봉은 4300~4400만 원 정도. 잔업과 특근 수당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이 지회장은 "연봉 7000만 원씩 받으면 우리 조합원들 아무도 힘들다는 사람 없을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야간 근무를 할 때면 속이 쓰려서 식사도 못하고 아침에 퇴근하고 나서는 잠이 안 오니까 잠들려고 아침부터 술 마시는 조합원들도 있었다"면서 "밤에 잠 좀 자자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것도 2009년에 사측과 이미 합의한 상황을 이행하라는 건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2011년 1월 1일부터 야간 노동을 철폐하고 주간 연속 2교대(오전 8시~오후 4시, 오후 4시~12시)와 월급제를 시행하기로 2009년 합의했지만 사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건 너무 하는 거다. 12차에 걸쳐 교섭하는 동안 사측은 어떠한 안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고, '조정중지' 결정을 얻었다. 이후 조합원 찬반투표를 해서 파업을 결의했다. 우리가 파업을 오래 해서 회사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5월 18일 오후 1시 반부터 3시 반까지 겨우 2시간 부분파업하고, 이후에 정상적으로 작업하고 퇴근했다. 2시간도 아산만 파업했고 영동은 안 했다. 그런데 그 2시간 파업했다고 직장폐쇄 내릴 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 못했다. 누가 봐도 불법적인 것 아닌가."

이 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5월 18일 '부분파업'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사측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올 줄도, 사태가 이토록 장기화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파업 일주일 전부터 사측이 미리 직장폐쇄를 준비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유성기업 쟁의 행위 대응요령' 문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 지회장은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비춰봤을 때 사측이 이런 식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저었다.

"용역만 비호하는 경찰, 진짜 많이 상처 받았다"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헬멧, 방패, 몽둥이, 가슴 팔 보호대 등으로 완전무장해 마치 진압경찰로 보이는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6월 22일 오전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헬멧, 방패, 몽둥이, 가슴 팔 보호대 등으로 완전무장해 마치 진압경찰로 보이는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금속노조 제공

경찰에도 분노가 크다. 이 지회장은 "공안탄압이 너무 심하다"면서 "용역들만 비호하는 경찰들 때문에 조합원들이 진짜 많이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6월 22일에도 경찰들 100명 다쳤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정도 다쳤다. 타박상이나 찢어지고 이런 건 병원도 안 갔다. 인터넷 보시면 아시겠지만 두개골 함몰되고, 재수술해야 하고… 22일 날도 우리 조합원들이 용역들한테 아침부터 무차별적으로 많이 맞았다. 그런데 경찰이 용역들이 뭔가 일을 벌일 때는 싹 빠지고 없다가, 일 벌어지고 나면 와서 우리는 밀어내고 얘네 들은 보호한다. 우리가 전화로 경찰에 신고해서 '쟤네들 잡아라'고 하는데도 소용없다. 우리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건가. 

용역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충돌이 크게 일어나지도 않았다. 내 공장에 용역깡패들이 들어가 있는 것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와서 때려버리니… 그런데 경찰들 때문에 제대로 충돌하지도 못했다. 엄청 억울한 거다. 당하기만 하고. (충돌을) 원인제공하고 실질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용역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용역들이 대포차로 조합원들 향해서 돌진했던 것만 해도 그렇다. 죽이려고 한 것 아닌가. 이런 건 다 묻어버리고 언론에서는 계속 충돌, 충돌 그런다."

그럼에도 이 지회장은 이번 싸움이 장기화 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일부 조합원들이 개별복귀를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과반수의 조합원이 회사 근처에 거점을 잡아서 집결해 있고, 일괄적으로 복귀하겠다는 공식선언도 했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 이 지회장의 생각이다. 이 지회장은 "투쟁수위를 높여서라도 사측을 계속 압박하겠다"면서 "우리가 이 싸움을 승리로 만들어내서 심야노동 철폐가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단식 농성 가운데 진행된 1시간여의 인터뷰, 미안한 마음을 누르며 끝으로 이 지회장에게 물었다. 최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사태가 첨예화 되면서 상대적으로 유성기업 사태가 언론과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난 것이 사실. 이에 대해 못내 서운한 마음은 없을까.

이 지회장은 "1순위가 한진이고 2순위가 유성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피해를 본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같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쌍용자동차 해고자 분들이 비닐하우스 오셔서 경험담도 들려주시고 교육도 해주시고, 각 지역에서 연대하러 오시거나 후원해주시는 시민들도 많다"면서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들 역시 오는 9일 '2차 희망버스'에 몸을 싣는다.
#유성기업 #이구영 #유성기업 노조 #야간노동 #엄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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