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찌기, 솔찌기 우는 이 새를 어디서 보았던가
육이구, 속이구, 사기구가 있던 그땐가
……
분수처럼, 솔찌기새 소리처럼 솟구치는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었다, 내 속에, 그리고 네 속에
그러나 그런 너를, 그리고 나를 어디서 보았던가
일제와 광복과 사일구와 오일육과 오일팔과 육이구와
한 꿰미에 꿰어진 닭꼬치처럼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민주란 이름의
자본주의란 이름의 찌꺼기들
솔찌기새가 말한다, 솔찌기, 솔찌기, 솔찌기……
솔찌기새 곡소리 들었다
-'솔찌기새를 아는가' 몇 토막
시인 김이하는 이 팍팍하고 마구 뒤틀리기만 하는 세상을 향해 솔찌기, 솔찌기 우는 새가 못 견디게 그립다. 시인 홀로 아무리 솔찌기 솔찌기 울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일제와 광복이 마치 친한 벗처럼 악수하고 있고, 사일구와 오일육이 서로 '과거는 잊자'라며 살을 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일팔과 육이구도 일제와 광복, 오일육과 마구 뒤엉켜 있다. 어느 게 참다운 '민주'인지, 어느 게 압제와 군홧발, 더러운 자본주의인지 통 알 수가 없다. 마치 "한 꿰미에 꿰어진 닭꼬치"처럼 보인다. 솔찌기, 솔찌기 아무리 목청이 터져라 울어도 이제는 너무 끈끈하게 오래 뒤엉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시인이 솔찌기새가 되어 곡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집 제1부는 '그대' 혹은 '네'라는 여자를 향해 끙끙 앓고 있는 그리움이다. 그 여자는 한때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대'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이기도 하다. 제2부는 시인이 이 거칠고 힘든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삶, 그 삶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꽂히는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은 꾀꼬리가 되어 나선형으로 우짖고, 올챙이가 되어 시인 핏줄을 따라 헤엄치기도 한다.
제3부는 가족사다. 시인은 '제삿날', '아버지를 밀치다', '휴―', '갈대숲에는 아버지가 산다', '어머니의 달력' 등을 통해 피붙이들이 살아온 피멍든 삶에 스스로를 비춘다. 제4부는 시인이 바라보는 지금 세상이다. 그 세상은 '한 바보 가면 또 한 바보' 오듯이 희망조차 '바보'가 되는 세상이지만 시인은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저만치 희망은 다가온다
내가 배운 말이나 노래는
원래 새의 것이었다
혹은 바람의 것이었고, 시냇물의 것이었다
......
이제 다시 가마, 생명의 땅으로 가마
숲을 떠난 소리는 들을 게 없고
강을 떠난 노래는 부를 게 없다
파도에 따귀를 맞으면 또 어떠리
-'땅의 법열' 몇 토막
시인 정계영은 시인 김이하 시집에 대해 "내장 속 똥물 산수유 꽃망울로 터지고 핏속에 키우던 올챙이 떼들이 봄길 위를 간질이며 뛰쳐나온다"라며 "김이하 시인의 숨소리가 낮은 음조라서 더 그런가, 욱신거리는 아픔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이토록 먹먹한 것은, 투명한 그의 등뼈를 가만가만 두드려주고 싶다. 만화방창 흐드러지고 말 이봄 내내"라고 적었다.
소설가 최성배는 "바이칼 호수의 물을 다 마시고, 천 년 전 하늘하늘 밑으로 떨어져간 삭은 나뭇잎 하나는 그 아득했던 화엄계곡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던가. 글과 글, 도처에 쓸쓸한 바이러스가 잔뜩 묻어나는 어둡고 스산한 그대의 그림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더냐?"라며 "길고 긴 우리의 아픈 이야기들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단 몇 줄 속에 녹여버린 요절하지 못한 천재(코털)의 늠렬하고 뜨거운 10년 여정이 또 다시 부드러운 시어들로 파드득거린다"고 평했다.
시인 김이하 세 번째 시집 <춘정, 火(화)>는 시인이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그 '좋은 날' 찾기에 다름 아니다. 그는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까불든 말든 눈치 보지 않는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 배가 조금 고파도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저만치 다가오는 '희망'을 붙들어 매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시인 김이하는 1959년 전북 진안군 밧머우내에서 태어나 1989년 <동양문학> 여름호에 시 '월미도', '휘파람'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장을 맡아 일한 그는 펴낸 시집으로는 <내 가슴으로 날아간 UFO> <타박타박>이 있다. 공동시집으로 <사랑은 詩(시)가 되었다> <멀리 사라지는 등이 보인다> 등이 있으며, <옛멋전통과학> <세계의 신화전설>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 등을 펴냈다.
2011.07.07 15:01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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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 火 - 春情, 火
김이하 지음,
바보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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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향해 솔찌기, 솔찌기 우는 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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