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에 멍드는 학교보건 정책

경기, 보건 인턴 교사 쫓겨날 위기

등록 2011.07.08 18:29수정 2011.07.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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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학교보건법이 개정되어, 2009년 3월 1일부터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보건교사에게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담당하는 보건교사의 직무, 배치 등을 포함하는 학교보건법 시행령은 4년째 개정되지 않고 있다. 보통 법률 개정 후 6개월 이내에 시행령이 개정되는 일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43학급 이상에는 교감도 2인을 배치하고 있는데, 보건교사는 학급의 규모와 관계없이 무조건 1인 배치만을 규정하고 있어, 보건교사 1인이 학생 건강관리와 보건교육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판단, 자체적으로 30학급 또는 36학급 이상에는 보건 인턴 교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의 시대를 맞아 학교보건정책이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신종 플루 대유행, 보건교육 강화 요구 등과 더불어 2010년 국정감사 및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 등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과대 학교에 보건 인턴 교사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보건 인턴 교사의 급여는 교과부가 40%, 도교육청이 60% 부담하기로 했다.

그런데 올 초, 학교보건 인턴 수요조사, 홈페이지 인턴 교사 공고, 학교보건 인턴 교사 채용가이드 등을 통해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 채용기간을 명시하였던 경기도교육청이,  급작스럽게 지난 5월 2일 '2011년도 학교보건 인턴 교사 인건비 지급 등 사업 추진 관련 알림'공문을 각급 학교에 전달, 과대학교 2학기 학교보건 인턴 교사의 사실상 사업 중단을 예고하였다.

더구나 경기도교육청은 2011년 채용된 보건 인턴 교사의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급기야는 비정규직인 보건 인턴 교사의 사실상 해고까지 선언한 것. 경기도교육청은 2학기 보건 인턴 교사의 급여는 교육청 대신 학교에서 충당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예산 조기 집행의 기조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교육청에서, 2학기에는 학교의 예산이 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건인턴교사의 계약 이행 책임을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기도교육청의 부당행위에 대하여, 경기도 보건교사회, 보건교육포럼 경기지부, 전교조 경기지부 보건위원회, 보건인턴교사 모임 등이 비상대책협의회를 구성하였고, 5월 18일부터 현재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하는 동시에, 3회에 걸쳐 과대학교 학생 건강권 위협 학교보건보건 인턴 교사 사업 중단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가지면서, 교육감 및 교육청 관계자 면담을 통해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답보 상태다.

비상대책협의회에 따르면, 2학기 추경 예산 6억이면, 약 30,000여명이 학생들이 적절한 보건교육과 건강관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한 해 총 예산이 9조인 점을 감안하면, 학교보건 인턴 사업은 예산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 가치와 철학의 부재라는 게 옳은 표현인 것 같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은 교육청 정책의 우선 순위 변경으로 인하여 보건 인턴 교사 사업이 부득이하게 중단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근로계약서상의 해지 사유나 근로기준법상 근로 계약을 계속시킬 수 없는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근로기준법 제 23조의 정당한 이유 있는 해고도 아니라는 데 그 문제성이 더 심각하다.


경기 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애초에 보건 인턴 담당 부서와 예산 관련 부서의 소통의 부재가 결국 보건 인턴 교사의 대량 해고 사태로 번졌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자기 부서 업무에만 신경 쓰다가 보건 인턴 교사의 추경 예산 확보를 놓쳤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어려워지자 인턴 교사 중 유일하게 보건 인턴 교사 사업 중단을 선언하게 되었다는 것. 관료들의 실수는 아무런 반성 없이 곧장 비정규직 보건 인턴 교사의 해고로 이어질 태세다.

거기다가 경기도교육청이 농어촌 보건교사 미배치교에 2014년까지 보건교사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소규모 학교 보건교사 배치는 이미 지속적으로 교육청이 공언해오던 사업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보건 인턴 교사 사업을 더 추진하지 못하는 사유가 마치 소규모학교 보건교사 배치 때문이라는 식으로 물타기가 됐다.  


국회에서 국민의 뜻을 모아 법률을 개정해도, 실제 정책의 줏대가 되는 시행령, 시행규칙의 개정 권한을 가진 관료가 움직이지 않으면,  유려한 법률이 살아 있는 정책이 되지 못한 채, 법전의 활자로만 기록된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하나라도 창출하여 서민의 막힌 가슴을 풀어야할 관료들이 서로 업무 떠넘기기를 하다가 노동권과 건강권을 유린해도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변명할 사유가 너무 많은 형국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공정한 사회, 진보하는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편에서는 공정을 표방하고, 또 한쪽에서는 진보를 이야기하면서도, 관료주의 때문에 학교보건정책이 속수무책으로 멍들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교사와 아이들이 떠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 인턴 교사 #경기도교육청 #학교보건 #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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