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종교, 심층을 보다〉
현암사
모든 종교에는 표층과 심층이 있다고 한다. 표층이란 내가 복을 많이 받아 이 땅에 보란 듯 잘 살고 영생 복락을 누리는 데 집중한다면, 심층이란 내 욕심을 줄일 뿐만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남을 위한 이타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더욱이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에 갇힌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지만, 심층종교는 문자주의를 넘어 그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은 대부분 표층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면 종교를 병이나 고치고, 돈이나 벌게 하는 미숙한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오히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심층 차원의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영적인 눈이 열리는 세계관으로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의 <종교, 심층을 보다>도 그런 눈을 트여준다. 이 책은 표층과 심층의 차이를 알려주고, 각 종교가 지닌 심층 차원을 깊이 들여다볼 수 돕는다. 이는 각 종교가 치중하고 있는 외형과 기복에서 벗어나 진정어린 종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취지도 담겨 있다. 아울러 폴 틸리히가 이야기한 바 있듯이, 각 종교의 전도 차원보다도 대화의 장을 넓히고자 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그가 종교의 심층을 들여다보게 하는 차원은 남다르다. 여러 종교들을 에둘러 보는 게 아니라 철학자들과 많은 사상가들을 통해 그 속내를 알게 해 준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에서부터 모세와 에리히 프롬과 같은 유대교의 지도자들, 바울과 도마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선각자들, 무함마드와 루미와 같은 이슬람교의 성인들, 노자 장자와 같은 동아시아의 선각자들, 마하트마 간디와 마하비라 같은 인도의 영성가들, 그리고 류영모와 함석헌 등 한국의 스승들을 통해 그 깊이를 일깨워주는 게 그것이다.
물론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나름대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정 종교에 심취한 상태에서, 다른 종교를 파악하는 게 그것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책을 통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얻는 간접 경험에 해당된다. 자신의 종교를 벗어난 타종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개론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열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인이나, 인도의 영성가들, 그리고 불교의 선지자들에 관한 내용도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신선한 내용도 없지는 않다. 극단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닌 이상 모세를 실제 역사적 인물로 보는 이가 거의 없다는 지적, 유대인 사상가 에리히 프롬과 아브라함 헤셸이 현대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안식일 준수의 의미를 밝혀냈다는 것, 기독교인들이 표층적 문자적 의미에 집중하는 경우 천국은 하늘 어디에 붕 떠 있는 '장소'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 아울러 <도마복음>도 '참나'를 아는 '깨달음'을 강조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그것이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 그 경지는 종교의 특수성을 관통한 영적 자유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인간 실존의 궁극 의미를 표현한 다른 표현들 속에 나타난 영적 현존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선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학자 폴 틸리히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다. 오강남 교수가 종교의 심층을 강조한 것도 모두 그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지 싶다. 물론 그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도마복음>의 영향력도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마는<도마복음>에서 제자들 중 가장 위대한 제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마를 특별히 '인류의 스승' 반열에까지 올리는 것은 그가 전해주는 <도마복음>이 그리스도교는 주로 현교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에게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심층적 기별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도마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잃어버리거나 등한시되던 심층적 가르침을 되살리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준 그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을 대하는 나는 사실 기독교인에 속한다. 오강남 교수에게는 어느 종교에 속한다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 그에게 모든 종교의 심층은 하나의 통섭을 이루고, 같은 근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붓다와 예수와 공자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하는 종교인들에게는 모두가 오십보 백보다. 그런 통섭도 실은 각 종교의 경전 속에 들어 있는 문자주의의 유사성에 매달릴 때 갖게 되는 시각일 수 있다. 각 종교의 경전을 '통'으로 깨우치는 이들은, 문자주의의 유사성을 넘어 더 깊은 심층의 이면을 깨닫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오강남 교수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
현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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